수소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훗날 인간, 기술, 자연 간 관계를 묻는 전시를 열어 눈길을 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을 비롯해 베이징, 모스크바에서 동시 진행 중인 ‘미래 인류-우리가 공유하는 행성’전이 던지는 화두는 공존. 명쾌한 해답보단 고민의 여지를 남기는 작품으로 채운 서울 전시장을 찾았다. (CNB=선명규 기자)
자율주행차 달리다 조우한 신세계
실제 조형물과 VR이 행성으로 인도
‘캐스트 어웨이’ 윌슨 같은 벗 될까
뿌옇던 시야가 개자 쭉 뻗은 도로가 나타난다. 잘 닦인 길 앞에서 자율주행차인 ‘나’는 서서히 요동치다 이내 예열된 듯 총총 달음질친다. 고공 다리를 가뿐히 건너고, 오르막길을 솟구쳤다가 내리막길은 쏜살같이 내달린다. 어둠이 짙게 깔린 굴곡진 길을 뚫고 마침내 당도한 곳은 새로운 시공간.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는 눅진한 땅위로는 찬란한 태양이 떠있다. 눈앞에서 빛나는 구(球)에 손바닥을 대자 또 다른 태양들이 승천한다. 두둥실 떠오른 강렬한 빛은 적갈색 땅에 생기를 불어 넣을까 아니면 말려버릴까? ‘기술’(자율주행차)을 타고 미래로 간 ‘인간’은 이 초자연적인 행성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전시장 가운데서 VR기기를 쓰고 체험한 5분짜리 영상은 이런 의문이 들면서 끝난다. 기기를 벗고 가상현실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벌집처럼 얽힌 거대한 금빛 둥근 고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까 본 태양이다. 방금 전처럼 구에 손을 대자 각 고리 안의 날개가 바람개비처럼 돌며 닫힌다. 이 고리의 이름은 윌슨.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척 놀랜드(톰 행크스)의 유일한 친구인 배구공과 동명(同名)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외로운 인간은 배구공에 윌슨이란 이름을 지어주며 자아를 부여한다. 그렇게 둘은 무인도에서 공동체를 이뤄 살아간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와 인간도 이들처럼 다가올 새시대에 어우러진 사회를 구축할지 돌연 궁금해지지만, 이번 전시에서 그 해답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미래는 그려나가는 것이기에, 올바른 쪽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는 데 의의가 있다.
서울·베이징·모스크바 동시 전시
지난해 말 한국(서울), 중국(베이징), 러시아(모스크바)에 있는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동시 개막한 ‘미래 인류-우리가 공유하는 행성(Future Humanity-Our Shared Planet)’전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 기관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의 협업으로 진행된다. ‘미래 사회를 전망하고 미래 인류와 미래 모빌리티(mobility·이동성)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장 마련’이 취지인 대규모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가 세 지역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 전시에 참여한 ‘윌슨’의 이장원 작가와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로써 신세계로 인도한 아티스트팀 ‘룸톤(roomtone)’,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를 포함해 세 전시장에 전세계 총 19명 작가들의 작품 25점이 내걸린다.
베이징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메모 아크텐의 ‘러닝 투 씨:헬로 월드!(Learning to see: Hello, World!)’. 미래 모빌리티에서 공연히 사용될 비전 기술을 활용해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미래 인류가 갖게 될 새로운 시각에 대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난해 11월 7일 현대모터스튜디오 베이징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참석해 관심을 나타냈다. 이 자리에는 정 부회장 외에도 코넬리아 슈나이더 현대자동차 스페이스 이노베이션 담당 상무, 마틴 혼직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디렉터, 치우 즈지에 중국 중앙미술학원 교수 등 업계 관계자 60여명이 모였다.
코넬리아 슈나이더 상무는 “현대자동차는 이번 전시에서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각종 첨단 기술 속에서 인류의 의미와 진정한 인류애의 중요성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다”며 “향후에도 자동차를 넘어 인간 중심의 가치를 전달하는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서울, 베이징, 모스크바 모두 오는 28일까지.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