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대기업들이 신년사를 통해 던진 화두는 ‘혁신과 도전’이었다. 미중 무역 분쟁과 신흥국 금융불안, 환율·금리·국제유가의 불확실성, 내수침체 등 나라 안팎으로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변화를 통해 위기를 정면 돌파하자는 것. 특히 올해는 세계경제의 중심축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마저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계는 ‘생존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이에 CNB는 기업·산업별로 신년사에 담긴 의미를 분석해 연재한다. 다섯 번째는 카드업계다. <편집자주>
[관련기사]
[재계 신년사 행간읽기①] 삼성·현대차·SK·LG…4대그룹 새해 화두는 ‘도전과 혁신’
[재계 신년사 행간읽기②] 신약 ‘대박’ 노리는 제약업계…새해 키워드는 ‘글로벌’
[재계 신년사 행간읽기③] 하나·신한·KB·우리·농협...5대 금융지주 키워드는 '고객'
[재계 신년사 행간읽기④] 위기의 증권업계 "살길은 혁신 뿐"
“위기를 기회로” 절박함 담겨
신사업·디지털혁신…변화 촉구
당장 올해 ‘보릿고개’ 못 피해
수수료율 추가 인하로 카드업계는 어느 때보다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 올해도 ‘봄날’을 기대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우선 다음 달부터 가맹점 수수료율이 더 내려간다. 기존 연매출 5억원 이하 가맹점에서 30억원 이하 가맹점으로 우대수수료가 확대 적용되며, 연매출 30~100억원, 100~500억원 구간의 카드 수수료도 하향 조정된다.
카드업계는 이미 지속적으로 수수료를 내려왔다. 이 여파로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BC·하나·우리·롯데카드)의 순이익이 내리막길인데, 올해는 경사가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심지어 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듯 시장점유율 1위인 신한카드는 올해 카드업계가 ‘전략적 변곡점’을 맞았다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카드결제시스템에 신기술을 도입하고, 수익사업을 다각화해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로 삼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임영진 신한카드 대표는 “근거리무선통신(NFC), 생체인증 등 빠르게 변하는 새로운 지불결제 시장에서 다양한 플레이어와 협업해 차별적인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며 “스마트폰 어플 ‘신한PayFAN’의 혜택과 편의성을 강화해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신규사업 추진도 강조했다. 수수료(Fee) 비즈니스, 이커머스 등 기존 부수사업의 성과를 확대하면서, 보유 회원과 데이터 등 강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동철 KB국민카드 대표는 장기적인 변화를 제안했다. 이 대표는 “고객의 접점을 유지하면서 종합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드라이븐 마케팅 컴퍼니(Data-driven Marketing Company)’로 변화해야 한다”며 “카드 거래 데이터와 다른 정보를 융합해 카드 주도의 KB금융 플랫폼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대표는 이런 변화를 위해 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늘리고, 다른 업종과의 데이터 융합을 위한 ‘데이터 오픈 랩’, ‘마이 데이터’ 사업 등 다양한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예 테크핀(Tech-Fin) 중심 기업으로 비즈니스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플랫폼 중심의 금융 업무방식을 혁신하고 인공지능(AI), 결제 프로세스의 슬림화 등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개방과 혁신의 디지털 컴퍼니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차세대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문환 BC카드(KT 계열사) 대표는 “올해 결제시장의 디지털화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QR코드 결제 등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더욱 확장해서 디지털 결제시장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디지털 플랫폼은 비용 효율화와 고객 중심 서비스를 바탕으로 가맹점과 상생할 수 있는 핵심역량이 될 것”이라며 “이런 다양한 노력은 본업의 수익성이 떨어질 경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사업 구조를 다각화한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롯데·삼성·하나카드 ‘각자도생’
회사 매각이 진행 중인 롯데카드는 우선 직원들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창권 롯데카드 대표는 “롯데그룹 지주사의 공정거래법 규제 준수를 위한 회사 지분 매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부문별 경영전략은 이미 구축돼 있다.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래를 위한 준비를 강조했다. 김 대표는 “기존 신용판매, 금융수익 모델을 넘어 새로운 시장과 비즈니스를 발굴하는 등 업무 특성에 맞게 전방위로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디지털 플랫폼 컴퍼니’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모든 업무 영역의 디지털화에 힘써 경쟁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수진 하나카드 대표는 “해외 지불결제 시장은 성장성이나 수익성 모두 국내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하나카드는 최근 글로벌성장본부를 신설했는데, 베트남 국책은행인 ‘BIDV(Bank for Investment and Development of Vietnam)’와 제휴하는 등 해외사업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원기찬 삼성카드 대표는 디지털과 빅데이터 분석 역량의 격차 확대, 신사업 육성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 안정적인 리스크 관리, 회원자산의 질적 향상 등을 올해 사업 추진방향으로 내세웠다. 영세, 중소가맹점, 고객과의 상생 마케팅 구축, 커뮤니티 서비스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이처럼 카드사 수장들의 신년사에는 절박함과 비장감이 묻어난다. 이들의 바람대로 신사업이 속도를 내더라도 당장은 ‘보릿고개’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빅데이터 등 카드사의 수익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제도 정비 등의 문제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SK증권 김선주 연구원은 CNB에 “카드업계는 올해 수수료 인하 부담이 더 가중되기 때문에 업황 전망이 밝지 않다”며 “부가서비스를 줄여서 비용을 줄인다고 해도 장기적인 수익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