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분쟁이 심화되고, 안으로는 내수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올해는 재계에 어느 때보다 힘든 한해였다. 내년에도 글로벌 불확실성 때문에 앞날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연말인사는 ‘성과주의’ ‘선택과집중’ ‘혁신인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에 CNB는 재계 ‘얼굴 이동’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보는 <재계 연말 인사>를 연재하고 있다. 네 번째 편은 SK그룹이다. <편집자주>
[관련기사]
① 이재용式 옥석가리기…삼성 스마트폰 핸들은 누가 잡나
② LG號 선장 구광모의 ‘40대 기수론’…혁신은 계속된다
③ 추락하는 증시…증권업계 인사 키워드는 ‘투자은행(IB)’
인재 조기발탁으로 ‘딥 체인지’
작년보다 0.7세 젊어진 임원진
‘사상최대실적’도 못 피한 혁신
“미래 생존이 불확실한 ‘서든 데스(Sudden Death)’ 시대에서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뉴SK’의 원년을 선포하며 이 같이 말했다. 안주하지 않는 혁신으로 불확실한 시장 상황을 돌파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최태원 회장이 강조한 ‘딥 체인지’ 기조는 지난 6일 실시된 SK그룹 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우수한 실적을 달성해 유임이 예상되던 사업분야의 수장도 바꾸는 등 과감한 변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40대 젊은피 ‘전진배치’
2019년 SK그룹 정기임원인사의 화두는 젊은 조직이다. 이번 인사에서 총 151명이 승진했는데, 평균 나이가 48세다. 그중 절반 이상인 53%는 1970년대 출생자다. 신규 선임된 여성임원 8명의 평균연령은 더 낮은 45세에 불과하다. 전체적으로 지난해 신임 임원의 평균 연령(48.7세)보다 낮아졌다.
리더의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이번에 배출된 신임 CEO 4명의 평균 나이는 53.7세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53), 안재현 SK건설 사장(52), 윤병석 SK가스 사장(52),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54)이 주인공이다.
8년간 SK건설을 이끌어온 조기행 부회장(59)을 비롯한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60), 이재훈 SK가스 사장(57), 김형건 SK종합화학 사장(57)은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됐다.
현재와 미래, ‘두 마리 토끼’ 잡기
이는 현재의 성과와 미래먹거리를 두루 연두에 둔 인사라는 평가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그동안 미래기술연구원장, D램개발사업부문장 등을 거치며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을 얻었다. 회사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적임자로 꼽혀 이번 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안재현 SK건설 사장은 회사의 해외개발 사업 강화라는 중책을 맡을 예정이다. SK네트웍스, SK D&D 등에서 쌓은 풍부한 관계사 사업개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스·Global·발전사업에서 경력을 쌓은 윤병석 SK건설 사장은 LPG 시장 리더십 수성과 함께 전기신사업 기회 발굴 등 안정적인 성장 포트폴리오 구축을 추진한다. SK이노베이션을 에너지 중심에서 화학·배터리 중심으로 변화시킨 ‘기획통’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은 글로벌 포트폴리오 확장에 주력할 계획이다.
SK그룹은 “이번 정기인사는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딥 체인지 및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이끌 전문성과 실행력을 갖춘 인사를 발탁한 점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수장 깜짝 교체 “왜”
이번 인사 중 단연 ‘깜짝 인사’는 SK하이닉스의 수장 교체다. 당초에는 박성욱 부회장의 유임이 유력시 됐었다. 확실한 성과를 거둬왔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에 매출(11조4168억원), 영업이익(6조4724억원)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액은 40.9%, 영업이익은 73.2% 증가했고, 역대 최고 성적을 찍었던 전분기의 매출 10조3705억원, 영업이익 5조5739억원도 무난하게 뛰어넘었다. ‘성적표’만 보면 박 부회장이 떠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재계는 정상에서 용퇴를 결심한 박성욱 부회장의 행보를 ‘미래를 위한 길 터주기’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그룹의 의도가 반영됐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꽃길 걷던 반도체 시장이 내년에는 가시밭길로 접어들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일 한국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내년 실적이 올해보다 크게 감소할 것이란 분석을 내놔 주목된다.
이곳 유종우 연구원은 “메모리 수요 둔화가 예상보다 심해 SK하이닉스의 D램과 낸드 출하량이 당초 예상치보다 부진할 전망”이라며 “4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당초 추정 대비 각각 7%, 10% 낮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메모리 가격 하락 폭 확대를 반영해 내년 영업이익 추정치를 15조1000억원으로 당초 예상보다 하향 조정한다”면서 “이는 올해 추정치(21조9000억원)보다 31% 감소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룹 내부에 위기의식이 퍼지면서 전격적인 선장 교체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의사결정시스템은 기존 틀 유지
그룹 콘트롤타워인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약간의 변화만 있다.
먼저, 조대식 의장이 재선임 됐다. 조 의장은 2017년 선임된 이후 그룹을 성장 체제로 탈바꿈시키고, 최대 실적을 달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6일 열린 의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협의회 산하 위원장도 일부 바뀌었다. ICT위원장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Global성장위원장인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자리를 맞바꿨고, 사회공헌위원장에는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이 신임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SK그룹 관계자는 CNB에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경기전망 등을 고려해 예년 수준의 승진인사를 시행했다”며 “리더십 혁신을 위해 세대교체를 지속하고 유능한 인재의 조기 발탁 및 전진 배치를 통해 미래 리더의 육성을 가속화했다”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