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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현장] 전시로 만나는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 “섬의 자생을 그리다”

목표 없는 6년의 실험…조용한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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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18.11.24 08:33:08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진행 중인 '가파도 프로젝트' 전시장 전경 (사진=선명규 기자)

 

CNB는 지난 6월23일자 기사에서 제주도 인근 작은 섬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키 작은 섬 들썩이다,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현대카드, 제주특별자치도, 건축가 최욱의 원오원 아키텍츠가 의기투합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였다. 이들은 섬이 항구적으로 자생할 수 있게 기존 건물을 재건해 창작공간, 터미널, 게스트하우스 등을 만들었고, 예술인들을 들여 섬에 문화의 숨결이 흐르게 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6년. 그들의 실험을 점검하는 전시가 서울에서 이달 초 개막했다. CNB가 그곳에 다녀왔다. (CNB=선명규 기자)

생태·경제·문화 어우러진 섬
6년 된 프로젝트 중간 점검
현대카드 스토리지서 이달 개막
그간의 실험·변화 상세히 소개


기록적 폭염이 시작되기 전인 올해 6월 중순. 제주도 운진항에서 배를 타고 청청한 바닷길을 10여분 가로질러가자 가파도가 눈앞에 가까워졌다. 어디가 지평선이고 수평선인지 모를 정도로 납작한 섬. 해발고도가 20m밖에 안 되는 바다 위 평평한 땅. 그곳에 소박하게 비죽 솟은 ‘가파도 AIR(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보고 생각했다. 자연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 건물은 섬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걸까. 땅에 파묻힌 저 구조물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달 1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개막한 ‘가파도 프로젝트’ 전시장에서 그 궁금증이 풀렸다. ‘가파도 AIR’의 1/15 축소 모형을 보고 나서다. 대지에 숨어든 잠수함처럼 잠망경 같은 탑만이 지상에 솟아있어 대부분이 지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이 구조물의 단면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1990년대 리조트 개발이 무산되면서 버려진 것이다. 레지던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을 해치지 않기 위해 기존 공간을 무리하게 증축하지 않았다. 조화롭지 않게 꾸미거나 키우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소외됐던 터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인이 상주하며 창작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가파도 AIR’를 1/15로 축소한 모형 (사진=선명규 기자)

 

레지던스뿐 아니다. 상동포구, 마을과 농경지, 하동포구로 섬을 세분화한 모형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가파도 전체가 전시장에 들어온 것이다. 직접 가보지 않았어도 ‘키 작은 섬’의 형태를 생생히 확인 할 수 있다.

이 전시는 가감 없이 솔직하다. 초기답사 스케치자료부터 건물설계도, 시공계획서까지 공개해 놨다. 프로젝트 논의가 시작된 2012년부터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도 연대기별로 점찍듯 펼쳐 놨다.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 과정, 자연 훼손 없이 어떻게 건물을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등이 당시의 사진과 함께 나열돼 있다.

전시장 한 쪽 벽에는 ‘가파도 보물지도’가 숨어 있다. 가파초등학교 전교생 11명과 입주 작가인 페루의 엘리아나 오따 빌도소가 함께 그린 벽화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가파도의 보물’을 지도 위에 표시해 완성됐다. 발전소, 교회, 보건 진료소 등이 지목된 가운데, 비뚤배뚤하지만 귀여운 필체와 그림이 눈길을 끈다. 이 벽화를 보고 있으면 몰래 간직했던 비밀을 장난스레 꺼내는 아이들의 해사한 얼굴이 떠오른다.

 

섬에 머문 작가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레지던스에 입주했던 작가 정소영과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의 드로잉과 영상 작품이 내걸렸다. 머무는 동안, 주변에서 길어 올린 소재가 작품이 됐다.

양아치 작가는 가파도 바닷속 여러 모습을 영상에 담아 보여준다. 달리는 배에서 카메라를 바다 아래로 들이밀자 노란 이끼와 누런 해초가 하늘하늘 살랑인다. 카메라를 발견한 게들이 바위 사이에서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정 작가 또한 섬의 지형과 바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그린 드로잉 작품 17점을 선보인다.

 

가파초등학교 학생들과 페루 작가 엘리아나 오따 빌도소가 그린 '가파도의 보물 지도' (사진=선명규 기자)


일상의 풍경 옮긴 지하 전시장

이번 전시의 백미는 지하 3층 전시장에 있다. 네 개의 스크린으로 극장처럼 꾸민 공간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가파도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스피커에서는 철썩철썩하는 파도소리, 나지막이 우는 귀뚜라미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중 가장 큰 가로 약 30미터짜리 화면에서는 해가 뜨고 질 때까지의 가파도가 그려진다. 둘레가 4.5km에 불과한 이 작은 섬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이렇다.

파랗던 하늘이 곧 붉어진다. 실낱같은 구름이 상공을 배회한다. 점차 밝아지면서 해무도 걷힌다. 생명체들이 바다와 하늘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루의 시작이다. 파도가 바위를 치자 하얀 파동이 공중에 흩어진다. 이제껏 잔잔했던 파도는 돌변해 잔뜩 성이 난다. 어느새 비까지 내려 화면 위아래로 물이 가득하다. 구름이 왔던 길로 돌아가자 다시 모든 것이 고요하다. 물고기떼가 줄지어 간다. 마을에는 단층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섬 가운데에는 청보리밭이 연둣빛을 뽐내며 자리 잡고 있다. 노을이 진다. 등대는 불 밝힐 준비를 한다. 태양이 서서히 소멸한다.

어업이 주업인 주민들의 일과를 소개하는 영상도 있다.

새벽녘, 배가 부두를 떠난다. 지정된 포인트에 도착하자 어부들이 그물을 걷어 올린다. 생선들이 딸려온다. 이제 배는 만선이다. 주름진 손들이 장비를 점검한다. 날 밝은 바다의 주인은 이제 해녀들이다. 검은 옷을 입은 해녀들이 해초를 집어 들고 수경을 닦는다. 이내 작심한듯 바다에 몸을 던진다. 목표지점으로 헤엄쳐 가 잠수를 시작한다. 올라왔다 내려가기를 수차례. 테왁도 만선이 됐다. 해녀의 집에는 물질하는 장비가 널려있고 물먹은 해녀복은 빨랫줄에 걸려 있다. 그날 잡은 해산물이 도마에 오른다. 전복이 적당한 크기로 썰린다. 냄비에서 소라가 보글보글 끓는다.

 

지하 3층 전시장에서는 가파도의 풍경(사진 위)과 주민들의 일상, 건축가 최욱의 인터뷰 등을 스크린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사진=선명규 기자)


가파도는 ‘시나리오 플랜’

현대카드 측은 ‘가파도 프로젝트’를 ‘마라톤’에 비유했다. 이번 전시가 프로젝트의 끝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의구심에 대한 답변이었다. 가파도 AIR, 가파도 하우스(게스트 하우스), 스낵바 등 당초 건축 관련 계획이 현실화됐기 때문에 ‘목표 달성’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경제·생태·문화 분야에서 더 진행할 일들이 있다고 한다. ‘가파도 프로젝트’는 과정과 결과를 정해놓고 하는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수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시나리오플랜’이라는 설명과 함께. 지난 6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뜻이다. 전시는 내년 2월28일까지.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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