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함영주 하나은행장, 이진국 하나금융투자 사장과 함께 평양에서 국제유소년 축구대회를 관람하고 돌아왔다. 하나금융의 대북 금융사업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하나금융투자 본사에 열린 ‘한반도 통일경제 포럼’ 모습. 이 포럼에서 하나금융은 ‘대북경협 실무협의체’ 사업 계획을 공개했다. (사진=손정호 기자)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체육교류 행사를 다녀오면서 금융사들의 북한 진출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다음달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라 이와 맞물려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CNB가 우선 밑그림이 드러난 하나금융의 북한 진출 가능성부터 살펴봤다. (CNB=손정호 기자)
김정태 하나 회장의 평양 방문 눈길
그룹차원의 ‘대북 실무협의체’ 가동
경협사업 파이낸싱 선점 경쟁 ‘꿈틀’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동북아시아 6개국(남북한·중국·일본·러시아·몽골)과 미국이 참여하는 ‘철도 공동체’와 남북 접경지역 통일경제특구를 제안한 가운데,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주목된다.
김 회장은 17~19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이진국 하나금융투자 사장 등과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제4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U-15) 축구대회’를 찾았다.
국제유소년축구대회는 남북체육교류협회와 북한 4·25체육단의 공동 주최로 지난 10~18일 9일간 평양에서 열렸다. 남북한 각각 2개 팀, 유럽 2개 팀,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각각 1개 팀 등 총 8개 팀이 평양 김일성종합경기장에서 함께 땀을 흘렸다.
하나금융은 오랫동안 대한축구협회를 후원해왔고, 그 인연으로 후원 요청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 등 임직원 10여명은 대회 후원사 자격으로 참여한 셈이다. 이들은 대회가 끝나고 하루 뒤에 남쪽으로 돌아왔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CNB에 “대북 금융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서도 “이번 방북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우선 구체적인 협의보다는 축구 경기를 보러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차원에서 대북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가벼운 첫걸음을 내딛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모습 (사진=하나금융)
하나금융, 단계별 대북 시나리오 마련
하나금융그룹(KEB하나은행)은 신한금융지주(신한은행), 우리은행, 농협금융지주(NH농협은행), KB금융지주(KB국민은행) 등 5대 금융사중 중 남북경협에 가장 적극적이다.
북미정상회담(6월12일) 직후 리서치센터에 ‘한반도 통일경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으며, 지난 7일에는 서울 여의도 하나금융투자 본사에서 ‘한반도 통일경제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하나금융투자 배기주 전무(IB그룹장)은 이날 포럼에서 그룹 차원의 대북 금융사업 청사진을 공개했다. KEB하나은행, 하나금융투자, 하나자산신탁,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등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참여하는 ‘대북경협 실무협의체’를 구성한다는 것.
배 전무는 “대북 제재가 아직 해제되지 않아서 먼저 북한에 대한 리서치와 조사를 하고 있다”며 “그룹 차원의 대북 협력사업을 통해 금융 조력자(Facilitator)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토연구원은 남북경협에 122조원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국제금융기구와 국내 은행뿐 아니라 글로벌 투자은행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대북 금융은 시기별로 3단계로 진행된다. 남북경협이 활성화되기 이전인 1단계에서는 대북 7대 사업 독점권을 보유한 현대아산과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는 것. 공기업(한국전력·가스공사·도로공사), 주요 건설사(현대건설·대림산업) 등과 사업타당성 조사, 금융조달 자문 등을 추진한다.
중국 중앙 또는 지방정부와 공동으로 조인트벤처협약(JVA)을 체결해, 북한의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의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후 2단계는 북한의 비핵화와 UN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해제돼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는 시기다. 하나금융은 이 시기에 북한 인프라 전용 투자를 목적으로 국내 정책금융기관과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투자자가 참여하는 펀드를 설립할 계획이다.
남북 경협이 고도화되는 3단계에서는 민관협력사업(Public-Private Partnership, PPP)이 증대될 전망이다. 3단계에서는 민간투자와 상업차관을 통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시기의 대북 금융 방법으로는 △BOT(Build-Operate-Transfer) △국제금융기구와의 협력을 꼽았다.
북한은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자금을 조달해 프로젝트를 건설하고 일정기간 운영한 수익으로 운영자금과 부채 상환, 배당 등을 실시하는 BOT방식이 적당하다는 것. 운영기간이 끝나면 시설은 정부 등 관련 기관에 양도하는 방식이다.
북한은 지난 2016년 원산-금강산 경제특구 내 풍력발전소 건설 사업에서 이미 이 방식을 제안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총 투자규모는 3250~3900만 달러였다. 원산시 중동토지종합 개발(1억9656만 달러 규모)에는 원산호텔, 금융종합청사 등의 건립을 BOT 방식으로 제안했다. 또 북한은 지난 6월 국가관광총국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조선관광’을 새롭게 꾸미고,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3단계에서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세계은행(WB) 등 국제금융기구가 북한 내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지린성 창춘과 쓰핑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ADB의 차관으로, 베트남은 지하철을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와 협력해 건설한 경험이 있다.
키움증권 서영수 연구원(은행업 담당)은 CNB에 “국내 경제의 성장동력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은행 뿐만 아니라 신한은행,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등도 대북 금융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북한이 경제를 개방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 건설사업이 많아질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신규 대출 등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UN과 북한의 대북 제재가 걸림돌로 꼽힌다. 남북경협이 추진된다고 해도, 과거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금강산 관광 중단 전례 등으로 볼 때 불확실성 리스크가 여전히 일정부분 상존하고 있다는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제약요소로 보인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