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4‧27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남북 경제협력도 순차적으로 확대될 전망인 가운데, 효율적인 북한 경제 개방을 위해 평양증권거래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모습. (사진=연합뉴스)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 종전 논의를 타고 증권가에도 북한 바람이 불고 있다. 삼성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이 전담팀을 만들어 북한 증권거래소 개설 등에 대비하고 있다. 평양에서 ‘주식 거래’ 하는 날이 올까? (CNB=손정호 기자)
남북경협에 천문학적인 자금 투입
국내 여력으론 감당 못해 외자 절실
외자 유치 위해 ‘평양거래소’ 필요
증권업계 전담팀 만들어 적극 대응
증권가에도 북한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후 고조되고 있는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증권가로 번지고 있는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보장’ ‘관계 정상화’ 등에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기존 남북 경협 재개에 이어 경제특구 확대, 철도 연결, 도로 건설 등이 점차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이미 남북경협주가 상승 흐름을 타고 있는 가운데, 증권사들은 북한 전담팀을 만들어 청사진을 수립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삼성증권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7일 선임연구원 4명으로 리서치센터 안에 ‘북한투자전략팀’을 만들었다. 삼성증권은 먼저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사회주의 국가 중 중국의 중신증권, 베트남의 호치민증권을 통해 앞으로 진행될 북한 경제개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벌써부터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전망’ 등 다양한 대북 투자보고서를 발행했으며, 지난 18일에는 서울 콘래드호텔에서 ‘한반도의 변혁과 미래 제언’을 주제로 리서치포럼을 열었다. 다음달 2일에는 세계 3대 투자자인 짐 로저스 회장(로저스홀딩스)을 초청해 ‘큰 손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북한 시장에 대해 알릴 계획이다.
신한금융투자는 기업‧투자분석부 연구원 3명으로 ‘한반도신경제팀’을 구성했다. 이중 소철현 이사는 북한대학원대학교(서울 종로 소재)에서 북한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전문가다.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주식시장’ 등 관련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남북경협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전망) 수집과 분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메리츠종금증권, NH투자증권, SK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다른 증권사들은 남북경협에 대한 보고서와 세미나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이전보다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정무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은 12일 한국증권학회와 자본시장연구원 주최로 서울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혁신기업과 자본시장의 역할’ 정책세미나에서 평양증권거래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손정호 기자)
여권 “평양에 증권거래소 만들라” 주문
증권업계가 주로 남북경제협력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위주로 분석하고 있다면, 정치권은 한 발 더 나가 아예 평양에 증권거래소를 세우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 플랜이 주목되는 이유는 주식시장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증권거래소가 세워지고 증권사의 북한지사가 설립된다면, 북한은 중국과 베트남처럼 완전한 시장경제의 길을 걷게 되는 셈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최운열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평양 증권거래소’ 설립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최 의원은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증권거래소를 설립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추진한 경험이 있다”며 “북한에 금융이 필요하다. 평양증권거래소 TF를 만들고, 증권학회가 연구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자본시장연구원장, 한국증권연구원장, 한국금융학회장,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사외이사 등을 두루 지낸 금융계의 ‘큰 형님’으로 통한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과 경제민주화 태스크포스(TF) 위원장 등 여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바 있어 그의 주장은 상당한 파급력을 띨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세미나에는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고위 임원, 미래에셋대우 조웅기 대표 등 현재 우리나라 금융계를 이끄는 인물들이 다수 참석했는데, 금융권에서는 최 의원의 주장을 사실상 평양증권거래소 설립 계획을 만들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어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도 지난 14일 서울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자본시장 대토론회에서 ‘북한 자본시장 형성방안’ 중 하나로 북한 증권거래소 개설을 제안했다. 정치권과 금융권 모두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UN의 대북 제재 해제 후 북한 경제 개발을 위해서는 외자 유치와 기업의 주식, 채권 발행 등을 위해 평양증권거래소가 필요하다는 계획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13일 평양 지하철역에서 한 시민이 북미 정상회담을 보도한 북한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북한에 증권거래소 필요한 이유는?
이들이 평양증권거래소를 원하는 이유는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 철도도로 건설, 전기에너지 현대화 등 IOC분야에 소요되는 비용은 수백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한반도 통합철도망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북한 내 7개 철도노선의 개량·신설 및 유라시아 철도 연계에만 약 38조원이 소요된다.
이는 국내 자본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따라서 외자를 유치하려면 평양에 증권거래소 개설이 절실하다.
증권거래소는 기업이 발행한 주식과 채권을 증권을 매매하기 위하여 개설된 상설 유통시장을 이른다.
가령 북한 투자기업들이 평양증권거래소를 통해 상장하고 글로벌 기업들이 이 회사의 주식과 채권을 사들이는 식으로 재무적 투자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유입된 자금은 북한 자원개발 등에 투자되고, 이 과정에서 투자기업은 이윤을 챙길 수 있다.
실례로 북한 7대 SOC사업의 개발 독점권을 갖고 있는 현대아산은 자체 여력으로는 사업 수행이 힘든 상황이다. 이에 현대아산이 속해 있는 현대그룹은 원활한 대북사업 진행을 위해 대기업과 공기업, 국제기금 등이 참여하는 ‘글로벌 컨소시엄’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컨소시엄이 외자유치를 원활하게 하려면 평양 증권거래소가 구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승민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북한투자전략팀장)은 CNB에 “평양증권거래소가 만들어지면 북한 경제 개발을 위한 투자자금 조달이 쉬워진다”며 “은행에서 빌리는 자금은 원금 상환과 이자 등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지만, 증권거래소를 만들면 기업 발전 재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평양에서의 주식거래가 현실이 되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높다.
유 연구위원은 “북한은 금융 시스템이 굉장히 열악하다. 북한 조선중앙은행은 화폐 발행과 예금관리를 모두 전담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역할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증권업(증권거래소)까지 진출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