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판문점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남북경협주’가 주목받고 있다. 남북 경협이 확대되면 범 현대가 등 우리나라 기업의 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외국인들은 주로 남북경협주를 매도하고, 개인과 기관이 매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증권시장에서 ‘남북경협주’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되레 남북경협주를 매도하고 있다. 이들이 던진 주식을 개미투자자들이 받아 안는 형국이 연출되고 있다. 이유가 뭘까. (CNB=손정호 기자)
외인들 범(凡)현대가 주식 쏟아내
경제협력 불확실성 여전하다 판단
은둔의 왕국? 과거 학습효과 작용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남북경협주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남북경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 한국 경제가 오는 2040년 영국, 프랑스, 독일을 추월하고, 2050년 미국에 이어 GDP 2위로 부상할 것으로 봤다.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 중국과 러시아로 이어지는 대륙 개발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다고 본 것이다.
이런 기대감을 실은 대표적인 남북경협주로는 건설과 제철업이 꼽힌다. 개성공단 재가동 등 남북의 협력이 확대되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과 건설 수요 증가로 한국 기업들의 이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종목으로는 현대건설, 현대로템,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제철 등 범(凡) 현대가(家) 기업들이 꼽힌다.
최초의 남북민간교류는 1998년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시작됐다. 정 회장이 이끌던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을 통해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했다. 현대아산이 대북사업에 투자한 자금은 지금까지 2조원에 이른다.
현대그룹이 2000년 3월 ‘왕자의 난’을 거치며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해상, 현대백화점그룹 등으로 분리되긴 했지만, 이런 점에서 여전히 대북사업의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현대아산은 과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등을 도맡은 ‘경협의 상징’이었다. 2000년 8월 북한 노동당 외곽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개성공업지구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 체결 등을 통해 개성공단 개발 사업권, 북한 7대 SOC사업 개발 독점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대아산은 지난 10년간 남북관계가 단절되면서 수천억원의 손실을 봤다.
따라서 현대아산이 정상화되면 현대그룹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아산은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지 않아, 현대그룹의 핵심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가 대신 주목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건설은 대북 경수로 건설과 ‘평양 유경 정주영 체육관’을 지은 경험을 갖고 있다. 건설사 중에서 유일하게 북한에 진출했었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의 경제기반시설 건립에 한 몫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로템은 철도전문기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판문점 선언을 통해 동해선(강릉·고성·제진·금강산) 및 경의선(서울·개성·평양·신의주) 철도를 연결하기로 약속했다.
현대차그룹의 현대제철도 철로의 재료인 철강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수혜주로 꼽힌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이 종목들을 외면하고 있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5월 들어 휴일을 제외한 11거래일(2‧3‧4‧8‧9‧10‧11‧14‧15‧16·17일) 동안 순매도 상위권에 남북경협주를 4개나 포함시켰다.
이 시기 외국인은 현대건설(3182억원)을 가장 많이 순매도했다. 현대로템(2474억원)이 뒤를 이었다. 현대제철(564억원), 현대엘리베이터(530억원)도 외국인 순매도 11위와 12위에 각각 올랐다.
반면에 같은 기간 개인은 현대건설(362억원)을 두 번째로 많이 순매수했다. 현대로템(2491억원)과 현대엘리베이터(546억원)도 각각 순매수 순위 3위와 16위에 올랐다.
기관도 남북경협주를 많이 순매수했다. 이 기간 현대제철(1356억원)은 기관이 세 번째로 많이 순매수한 종목이었다.
결과적으로 외국인이 내다 판 남북경협주를 개인과 기관이 사들인 모양새가 됐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서 외국인들이 남북경협주를 외면하는 이유로 여전한 한반도 리스크가 꼽히고 있다. 아직 남북 경협은 기대감 수준으로, 기업의 실질적 이득으로 연결되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는 것. 판문점 인근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모습. (사진=연합뉴스)
남북경협 여전히 기대감 수준
외국인들은 왜 남북경협주를 외면하고 있을까.
우선 한반도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방세계의 시각에서 보면 북한은 아직도 ‘은둔의 왕국’ ‘반인권 국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에도 북한이 대화 국면 속에서 이를 뒤엎거나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학습효과도 있다.
실제 북한은 지난 16일 새벽 한미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맥스 선더(Max Thunder)’를 이유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한 발 더 나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이 일방적인 핵 포기를 강요할 경우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 이날 증권시장은 급랭했다. 현대로템(-15.69%), 현대엘리베이터(-10.33%), 현대건설(-6.35%), 한전KPS(-3.29%) 등은 전일 대비 폭락했다. 남북경협과 관련된 중소형주 중에서는 좋은사람들(-16.24%), 삼표시멘트(-13.58%), 고려시멘트(-12.68%) 등이 급락했다.
남북경협이 실질적인 기업실적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점도 외국인들이 외면하는 이유다. 이제 겨우 정상회담을 통해 경협 확대를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을 뿐이라는 것. 2016년 2월 폐쇄된 개성공단을 재개하는데도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고, UN과 미국,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북 제재 완화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CNB에 “현재 남북경협 기업에 대한 기대감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며 “전력 공급과 철도, 도로, 건물, 기계설비 등 수혜를 받는 기업이 비상장사일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국인과 기관, 개인의 투자 패턴은 다를 수 있다”며 “외국인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외 변동성이 높은 남북경협주 투자에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섣부른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나금융투자 김상한 연구원은 “남북이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기 때문에 합치는데도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며 “경제협력도 위탁가공, 투자 확대, 전면적 자유교역 등으로 단계를 밟아가면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CNB=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