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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취업시즌에 불어닥친 찬바람 ‘채용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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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18.04.19 11:21:35

▲지난 15일 서울 단대부고에서 열린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에서 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고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중학교 이상 다니던 사람은 손들어봐”

한국전쟁에 통역장교로 참전한 고 리영희 선생은 전장으로 향하던 신병들의 행렬을 보고 소리쳤다. 대대적인 공격작전에 투입될 병력이었다. 격전지인 고지로 올라가면 대부분 죽을게 뻔했다. 물음에 백 중 셋 정도만이 손을 올렸다. “모두 투박하고 땡볕에 그을린 얼굴이었다. 노동자인지 농민인지 하여간 힘없는 사람의 아들들임이 분명했다”<역정_창비>고 리영희 선생은 생각했다. 힘 있는 자들의 자식은 쏙빠진 상황을 개탄했다. 리영희 선생은 “건빵봉지라도 줄 생각을 못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지 자식 감싸고 남의 자식 사지로 몰아넣는 전쟁통의 인사비리를 오늘날에는 친인척 채용비리가 대신하고 있다. 가뜩이나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뭇 청년들에게 열패감을 안기고 있다. 경쟁은 시작도 안했는데 배제시키고 패배자란 멍에를 씌운다.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공부 백날 하면 뭐하나 부모 잘 만나는 게 장땡”이란 자조가 흘러나오고 있다. 친인척 채용비리는 사뭇 평범한 구직자들에게 태생적 절망감마저 안기기 때문에 더욱 악질적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터져 나온 다수의 채용비리 소식은 안 그래도 씁쓸한 입맛에 텁텁함까지 안기고 있다. 임직원 자녀를 좋은 자리에 앉히는 것은 물론, 특정학교라서 뽑고, 여자라서 걸렀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에게 힘 빠지는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수사를 받는 시중은행들은 상반기 공채 일정조차 못 잡고 있으니 피해는 고스란히 취준생들이 떠안게 됐다.

지난 4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연령별 인기뉴스 중 20대 여성이 두 번째로 많이 읽은 기사는 하나은행의 특정대학 채용 특혜 의혹 보도였다. 취준생이 대다수일 이들이 어떤 심정으로 이 기사를 클릭했는지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무너지듯 내려앉은 손마디는 이내 비난의 손가락질로 세차게 흔들렸을 것이다.

바야흐로 공채시즌이다. 이달 들어 주요 대기업들은 면접을 앞두고 각종 필기시험 전형에 돌입했다. LG그룹은 지난 7일 인성검사인 'LG 웨이 핏 테스트(LG Way Fit Test)'와 적성검사, 현대차는 8일 인적성시험(HMAT), 삼성은 15일 GSAT'(Global Samsung Aptitude Test)를 각각 실시했다. 앞서 여타 기업의 검은 소식을 접해서인지 시험장의 분위기는 다소 침체돼보였다. 공중에 꽃바람 흩어지는데 응시자들의 얼굴엔 삭풍이 불어 닥친 듯 했다.

노력이라고 반드시 보상 받는 것은 아니다. 경쟁사회에서 누군가 앞서 나가면, 누군가는 잠시 그 자리에 머문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정당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상실감은 비교적 적을 것이다.
 
채용은 뽑는 게 아니라 줄여나가는 과정이다. 열에서 아홉, 아홉에서 하나가 될 때까지 순차적으로 줄인다. 그게 전형(銓衡)이다. 마지막 하나는 이미 정해졌다는 확신마저 드는데 의심 않고 완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보통의 취준생 흔들지 마라. 그들의 봄은 아직 삭풍 부는 저 언덕 위에 있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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