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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당연한가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파샤 그리고 스트렐니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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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기자 |  2018.04.02 12:04:59

▲파샤(앞줄 맨 오른쪽, 강필석 분)는 국가를 위한 무조건적인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세태에 분노한 뒤 극단적인 혁명 세력을 이끌게 된다.(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닥터 지바고’가 돌아왔다. 2012년 이후 6년 만이다.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소설은 1905년 러시아 혁명(2월 혁명)과 1917~22년 러시아 내전(10월 혁명)을 사는 의사 유리 지바고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1965), 드라마(2002)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공연계 또한 이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신춘수 프로듀서는 연출가 데스 맥아너프, 작곡가 루시 사이먼 등과 함께 팀을 꾸려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호주 프로덕션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2년엔 한국 프로덕션을 꾸려 국내에 선보였다. 조승우, 홍광호, 전미도, 김지우 등 당대 최고의 뮤지컬 배우들이 참여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국내 초연은 의외의 혹평을 받았다.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3시간 여 무대에 올리기엔 벅찬 감이 있었던 것. 지루한 전개 또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리고 6년 만에 신춘수 프로듀서가 설욕에 나섰다. 초연과 비교해 새롭게 진일보했음을 특히 강조했다. 신 프로듀서는 “대본을 수정하고, 넘버를 재편성하면서 기존 작품을 보완했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과감한 변화를 꾀했다”며 “이 모든 것이 지바고와 라라의 운명적인 사랑을 관객들에게 좀 더 잘 보여드리기 위한 것으로, 이전 프로덕션과는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을 전해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재연에서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보다는 파샤의 행보에 더 눈길이 간다.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혁명의 격변기를 살아간 유리 지바고와 라라의 이야기를 그린다. 명망 높은 그로메크 가에 입양된 지바고는 훌륭한 의사이자 시인으로 성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토냐와 결혼하지만, 러시아 고위 법관인 코마로프스키를 죽이기 위해 무도회장을 찾은 라라를 본 순간 강렬한 이끌림을 느낀다. 라라의 남편 파샤는 전쟁에 참전하고, 파샤를 찾아 종군간호사가 된 라라는 1914년 1차 대전 반발 후 군의관으로 참전하고 있던 유리와 만난다.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랑에 빠지지만 시대의 흐름은 그들에게 달콤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유리와 라라의 사랑은 애달프다. 하지만 공감대를 충분히 이끌어내진 못한다. 격변의 시대 속 힘겹게 피어나는 그들의 사랑은 안타깝지만 결국엔 불륜이다. 유리와 라라가 서로에게 빠지는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 와중 오히려 공감을 이끌어내는 인물이 이상주의자이자 혁명가인 파샤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 개인은 어떻게 희생되고 변질되는가


▲파샤(앞줄 맨 오른쪽, 강필석 분)는 국가를 위한 무조건적인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세태에 분노한 뒤 극단적인 혁명 세력을 이끌게 된다.(사진=오디컴퍼니)

파샤는 처음에 다소 격하지만 그래도 밝은 미래를 꿈꾸는 순수한 청년의 모습으로 나온다.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는 황제의 권력이 절대적이었고, 귀족들은 이에 복종했다. 착취당한 건 노동자들. 가난과 굶주림 속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파샤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황제의 권력은 더욱 노동자들을 억누르고, 파샤는 동료를 모으기 위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파샤는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경험한다. 전쟁의 여파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빈곤 속 어렵게 생활하고 있던 러시아 국민들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전쟁을 멈추지 않았고, 파샤는 분노하기 시작한다. 동료의 피가 묻은 천을 팔에 두른 파샤의 눈빛은 미래를 꿈꾸던 희망에서 분노로 바뀐다. 파샤는 노동자와 농민들을 모아 황제를 타도하는 시위를 일으키고, 혁명 세력이 모스크바를 장악한다. 1막에서 파샤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이 청년은 2막에서는 혁명 세력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스트렐니코프로서 살아가게 된다.


파샤와 스트렐니코프는 한 인물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극적인 변화가 엿보인다. 누구보다 권력의 억압 아래 겪은 슬픔과 고통을 이해했던 파샤. 하지만 계속된 좌절로 분노에 휩싸인 스트렐니코프는 자제력을 잃고 더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혁명 세력이 아닌 사람들의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사지로 내몰며, 사람을 죽이는 데도 점점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파샤의 변화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 개인이 어떻게 희생되고 변질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파샤는 그저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보다 큰 권력과 부를 가지기 위한 국가 간의 전쟁 속 한 개인의 바람은 매우 부질없고 사소하게 취급당하며 묵살 당했다. 그리고 희망이 분노로 바뀌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스트렐니코프로서 사는 파샤의 표정은 분노로 가득 찼지만 그 일면에 슬픔도 엿보인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참혹한 변화를 알고 있는 것이 파샤 본인이기 때문일 것.


2018년을 사는 우리에게 파샤가 산 시대는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국가와 개인에 대한 담론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형성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22만 명에 달했고, 시리아 내전 등으로 130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발생했다. 국가의 번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마냥 당연하고 아름답다고 포장하기엔 너무도 소모적인 전쟁이었고, 전 세계 사람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는 중요하다. 국가가 있기에 국민이 정체성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해도 괜찮다고 여기고 부당한 일을 행하면 희생되는 개인은 분노하고, 이 분노는 국가로 향한다. 모두 파괴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국민은 국가의 정책에 건전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상호존중의 태도가 필요하다. 당연하고 진부한 말이지만 또한 어렵기도 한 일. 2018년 또 다른 파샤가 스트렐니코프로 변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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