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하기
  •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 오탈자제보

[기자수첩]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는 청년들

  •  

cnbnews 김금영기자 |  2018.01.02 15:04:58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전에 전시된 문구 중 하나.(사진=김금영 기자)

전시 제목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라니. 이건 기자의 심정 또한 절절히 담은 문구가 아닌가. 호기심에 찾아간 전시장은 청년들로 가득했다. 언뜻 봐도 20대 관람객이 가장 많아 보였고, 10대,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관람객 또한 보였다.


전시는 재미있는 콘텐츠들로 가득했다. SNS를 잘 이용하는 10~20대 젊은층 관람객들을 위해 흥미로운 해시태그를 단 이미지들을 벽면에 전시해 놓았다. 가령 ‘겨울왕국’ 속 귀여운 눈사람 캐릭터 올라프가 처참하게 녹아가는 장면에는 ‘#듀금’이라고 달아놓고, 부연 설명으로 ‘어제 회식함’을 달아 놓았다.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이 폭풍 공감의 끄덕임을 시전한다. 예비 직장인, 또는 직장인이 머리를 탁 치며 공감할 만한 이미지와 글들이 가득했다.


이 전시는 문화부 기자로서 최근 찾아갔던 여타 전시들 중 독보적으로 청년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들어가기 전 대기 시간도 필요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건 청년층이 선호하는 전시 구성에서도 비롯됐다. 지루하지 않은 이미지들을 짧고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했고, 특히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를 선호하는 청년층의 선호도를 제대로 반영해 전시장 곳곳에 포토존을 마련했다.


하지만 포토존이 이제 전시장에서 그렇게 희귀한 문화는 아니다. 이 전시가 독보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건 요즘 청년들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하고 있기 때문. 기자 또한 전시 제목을 보고 ‘바로 내 마음’이라고 이끌려 전시장을 직접 방문했을 정도로 ‘웃픈’ 현실을 마주한 청년들이 많다.

과거엔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면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통했지만, 지금은 태어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른 게 현실. 금수저 출신에게는 당해낼 수 없다는 패배와 좌절 의식이 사회에 가득하다. 오죽하면 유시민도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박명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겠는가.


이 가운데 전시는 “열심히 노력하라”고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꼰대 같은 조언을 날리기보다는 비탄한 현실을 오히려 비웃어버리며 웃음을 유도한다. “아프니까 청춘” “더욱 노력하라”는 공감을 살 수 없는 말 대신 “로또 1등을 늘 준비하자” “동물이 나오면 다음날 로또를 사자!”라며 나름의 조언(?)을 담은 콘텐츠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콘텐츠를 감상하는 젊은이들은 바뀌지 않는 현실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호탕하게 웃어 넘겨버린다. 때로는 같잖은 위로보다, 이렇게 현실을 유쾌하게 비꼬는 것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새해가 밝았다. 어떤 이에게는 희망찬 내일을 위한 첫발을 내딛는 날일 수도, 다른 이에게는 그저 어제가 지나고 오늘이 온, 지난해와 다르지 않은 날들의 연속일 수도 있다. 저마다의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한 가운데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는 염원도 존재할 것이다.


전시를 보고 나서도 힘든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크게 웃을 수 있는 기회였다. 크게 웃을 수 있는 기회조차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오랜만에 웃프게라도 웃어봤다. 그리고 허황된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시 바라게 됐다. 청년들이 ‘돈 많은 백수’가 아닌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좇을 수 있는 내일이 오기를, 그런 내일이 오는 나라가 되기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