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까지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린 ‘6470展’은 최저임금에 대한 청춘들의 내밀한 고백이었다. 자신의 사진 위에 ‘아무 것도 못하는 돈’ ‘모으고 싶은 것’ 등을 적으며 조용한 아우성을 보냈다. (사진=선명규 기자)
개인이 처한 상황은 폭넓은 이해와 공감을 자아내기에 어려운 영역이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 고충, 비정규직의 설움 등은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안다. “힘들다고!”고 하는데 “얼마나?”로 계량하려는 사회의 태도도 문제다. 불행부터 행복까지, 0에서 10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인데 그 정도를 말하라니, 무례하다.
얼마 전 대학로에서 본 전시가 가슴 아래 머물러 있다.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린 ‘6470展’. 주최쪽 설명에 따르면 올림푸스한국의 예술 창작활동 지원 프로그램인 '엉뚱한 사진관 for 대학로'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예술가와 시민이 사진으로 소통하는 프로젝트로 서울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메세나협회와 함께 2015년부터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백미는 2층에서 마주한 문답(問答). ‘6470원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란 질문에 청춘들이 답한 문자 몇몇을 옮겨 적는다.
‘잃어버린 시간’ ‘아무 것도 못하는 돈’ ‘모으고 싶은 것’ ‘숙명’ ‘밥벌이’ ‘하루 한 끼’ ‘귀중한 생활비’ ‘지푸라기’ ‘피 땀 눈물’ ‘생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 ‘다행’᠁.
누구는 “그래봤자 아무 것도 못하는 데 생존을 위해 힘들게 벌고”, 누구는 “그마저도 다행”이라고 했다. 한 시간 노동의 대가를 함축한 단어는 이렇게 다양했지만 대부분 만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젊음의 거리에서 청춘들의 내밀한 고백을 엿들은 기분은 꽤나 무안했다.
이 전시가 계속 맴도는 이유 중 하나는 청춘의 고달픈 외침과 상반되는 감각적 구성이다. 짙은 빨강 네온등 위로 영롱히 빛나는 숫자 ‘6470’, 색상 반전된 듯한 사진 속 맑은 얼굴에 새긴 나의 비천한 노동 가치. 찬란해야 할 청춘의 모습과 대비되어 쓸쓸했다.
매년 이듬해 최저임금 발표가 있는 날이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에 관련 단어들이 급등한다. 다음의 ‘연령별 인기 뉴스’를 보면 10대와 20대 남녀가 해당 기사를 가장 많이 열어본다. ‘생존’이 달린 ‘귀중한 생활비’의 미약한 상승을 반기며 클릭하진 않았을 것이다.
한 시간 노동의 가치를 매기는 액수는 매년 가장 논쟁적 숫자였다. 돈이 오를수록 이를 바라보는 온도차는 격렬하게 벌어져 왔다.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만원으로 올린다는 파격 선언을 했더니 곳곳이 논쟁 지대가 됐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만 ‘사람 중심’을 내세우는 정부의 기조상, 성사시킬 가능성은 커 보인다.
월급 200만원을 의미하는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갈 길 멀어 보이지만 그래도 가고 있긴 한 듯하다. 대학로에서 조용한 아우성을 보내던 청춘들, 개중 ‘과정’이라고 답한 젊음이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