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하기
  •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 오탈자제보

[생생르포] 동네 꽃가게의 김영란법 1년

“꽃이 뇌물인가요?” 긴 한숨에 맺힌 사연

  •  

cnbnews 이성호기자 |  2017.09.29 09:49:09

▲서울 상암동에서 ‘세연이네 꽃방’을 운영하고 있는 조혜영씨(사진)가 꽃을 손질하고 있다. 조씨는 28년간 꽃가게를 운영하면서 요즘처럼 힘든 시기는 없었다고 말한다. (사진=도기천 기자)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년을 맞았다. 당초 소비절벽이 우려됐지만 일단 경제지표 상으로는 안정을 찾은 모양새다. 하지만 일부 업종은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화훼업계는 극심한 매출 감소를 호소하고 있다. ‘동네 꽃가게’를 통해 김영란법의 그림자를 들여다봤다. (CNB=이성호 기자)

‘꽃=뇌물’ 인식되며 수요 ‘급감’
꽃이 뭐길래…서로 불편한 세태
상한액 조정? 언 발에 오줌누기

“꽃이 청탁용이라뇨?”

서울 상암동에서 28년 간 꽃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세연이네 꽃방’ 대표 조혜영씨. 요즘처럼 장사하기 힘든 시절은 없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9월 28일부터 시행된 청탁금지법은 음식(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하로 허용 한도를 정하고 있는데 불똥은 당장 꽃집으로 튀었다. 꽃도 ‘뇌물’로 비춰지는지라 다들 몸을 사리다 보니 수요가 크게 줄어 매출은 지금까지 내리막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씨는 “관공서의 경우 특히 1월과 7월이 인사철이라 나가는 물량이 많았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주문 자체가 아예 없다. 기업체나 학교도 마찬가지다. 인사발령이 많은 3월·9월에도 난·화분 등을 찾지 않아 이러다가는 꽃집들이 전부 문을 닫을 판”이라고 호소했다.

황당한 경험담도 털어놓은 조씨. “선금을 받고 경찰서로 주문이 들어와 배달을 갔지만 정문에서부터 반입을 거부당해 결국 받았던 돈을 다시 돌려주기도 했고, 법을 잘못 이해한 교감 선생님은 심지어 동서가 보낸 화분까지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꽃바구니나 화환 같은 경우 수령자가 받기를 거부할 경우, 망가져(시들게 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조씨는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 데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김영란법이 오랜 인간관계까지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상사가 승진해서 꽃을 선물하려고 해도 혹시 법에 저촉돼 해를 끼칠까봐 못하고 본인 스스로도 위반될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순수하게 선후배간 축하용 화환을 주고받는 문화가 청탁으로 오인돼 사라져가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또한 ‘스승의 날’이 대목이 된지도 오래다. 학교에서는 김영란법 이전에도 선물을 받지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 학원으로 나가는 꽃은 꽤 많았다. 올해도 조씨는 학원생들이 주로 찾는 5000원 짜리 꽃바구니 및 카네이션을 잔뜩 매장에 구비해 놨지만 전혀 팔리지가 않았다. 이 꽃들은 1주일 뒤 시들어져 모두 버려야 했다.

▲조혜영씨(사진)가 자신의 가게에서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후 화훼업계는 극심한 매출감소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꽃을 찾는 사람이 없다보니 화훼농가는 물론 포장재료(화분, 바구니, 포장지, 리본 등)를 생산하는 업체 및 도·소매가게까지 줄줄이 여파가 미치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저렴한 꽃을 박리다매 식으로 팔아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조씨. 

그녀는 청탁금지법 한도가 상향 되더라도 꽃을 사실상 뇌물로 규정해놓은 현재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크게 달라질게 없다고 지적한다. 

“현재 (선물한도액이) 5만원인데 그렇다면 5만원 이하는 사가는 줄 아세요? 사람들의 인식이 꽃·화환·난 등을 전부 뇌물과 동격화해 터부시하고 있어 과거와 달리 아예 구입을 안 하는 분위기예요. 청탁금지법에서 화훼류 자체를 제외시키지 않으면 한도액이 조정돼 봤자 마찬가지예요.”

이 같은 꽃 소비절벽 현상은 화훼업계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2016년 9월 28일~2017년 5월 19일) 전체 화훼 도매거래액이 전년 대비 5.2% 줄었다. 난 등 분화류 거래금액은 전년에 비해 14.7%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공급가격도 크게 내려갔다. 특히 난류의 타격이 가장 컸는데 법 시행 전 평균 가격이 한 분에 5800원이었으나, 청탁금지법이 도입되면서 공급량이 12.1% 감소하면서도 가격은 4900원으로 14.2%나 떨어졌다. 난이 주로 승진이나 인사 시 축하하기 위해 많이 선물하던 품목인 만큼, 법 시행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씨·삼성·신한카드 등 상위 3개 카드사 법인카드 사용실적에 따르면 화원 매출액 증감률은 2016년 1~9월에 4.4%에서 2016년 10월~2017년 1월 기준 -1.8%로 하락했다.
올해 2월~5월까지 4개월간 법인카드(비씨카드 기준)의 화원 사용액은 전년동기 대비 2.7% 축소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화원협회 소속 소매업체 1200곳의 올해 1월∼5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7%나 줄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화훼류 도매시장 거래 동향 (자료=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공판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영란법 최대피해자는 농가

하지만 화훼업계의 고난이 산업계 전반으로 번진 건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대비 0.6% 성장(전년동기대비 2.7%)했다. 

서비스업(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운수 및 보관업, 금융 및 보험업, 부동산 및 임대업, 정보통신업, 사업서비스업, 공공행정 및 국방, 교육서비스업,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문화 및 기타서비스업 포함) 부문도 올해 1분기에는 직전분기(2016년 4분기)에 비해 0.2% 성장했다. 거시경제 지표상만으로 볼 때는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큰 변화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여러 통계를 분석해보면 이 법이 화훼분야를 비롯한 농·축산업과 요식업에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의하면 올해 설 농·축산물 선물세트 거래액은 작년 설 대비 25.8% 감소했다. 2016년 설 거래액이 전년 대비 14.1%나 증가했던 과거의 추세를 고려하면 청탁금지법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아울러 통계청에 따르면 음식점·주점업 소매판매지수는 지난해 9월 -1.6%로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시 4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됐고 이후 11월 -3.8%, 2017년 1월 -5.8%, 3월 -3.5%, 5월 -2.5%, 7월 -3.7%(잠정)로 나타났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 1년 국내 외식업 영향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420개 업체 중에서 66.2%(278곳)가 법 시행 후 1년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평균 매출감소율은 22.2%로 조사됐다.

이처럼 청탁금지법으로 일부 업종이 큰 타격을 받자, 국회는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품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토록 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원안을 고수하자는 국민여론이 절반을 넘고 있어, 향후 법 논의과정에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CNB=이성호 기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