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기자 | 2017.08.07 11:01:16
한껏 비를 맞던 방송인 정형돈이 “지금 이게 뭐하는 거냐”며 폭발한다. 이수근이 “그래도 해야 한다”고 답하자 갑자기 확 차분해져서 “다음 주에는 우리 어디 가냐”며 나긋하게 묻는다. 이 모습을 박성광, 이홍기, 김종현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쳐다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가 방송이 끝나버린다. “이게 뭔가” 싶은데 웃음을 자아낸다.
지난달 30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JTBC ‘밤도깨비’의 한 장면이다. 이제 2회까지 방송됐는데 반응이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많은 가운데, “뭘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요상하게 웃음이 터진다”는 이야기도 많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지선 PD는 ‘밤도깨비’에 대해 “B급 감성의 개인주의적 병맛 콘텐츠”라 소개했다. 그의 말처럼 방송은 병맛(?)이다. 곳곳에 숨은 명소를 찾아가는데, 꼭 밤을 샌 뒤(노숙 동반) 1등으로 찾아가야 한다. 1~2회에서는 꽈배기와 김밥 맛집을 찾아갔고, 13일 방송되는 3회에서는 워터파크의 인기 놀이기구를 1등으로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방송은 왜 이들이 1등으로 그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 방송의 목적이 뭔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것. 이에 대한 고민이 정형돈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했다. 정형돈은 2회 방송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가장 큰 기쁨을 맛볼 때가 첫 손님을 맞는 마수걸이 때”라고 장황하게 포문을 열었는데 이후 “그래서…”라며 머릿속의 생각이 정리 안 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결국 방송의 목적을 제대로 정리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웃음이 터졌다.
B급 감성을 입은 병맛 콘텐츠가 특히 젊은 층 사이에 인기다. 한 예로 9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이블데드’는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원작 영화 또한 B급 감성 콘텐츠로 유명하다. 내용은 금지된 악마의 책을 읽고 점점 좀비로 변해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런데 좀비를 퇴치하는 장면들이 장엄하게 펼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곳곳에 유명 공연 패러디를 넣어 웃음을 자아내고, 창자가 튀어나오는 장면조차 우습게 꾸며 버린다. 좀비를 죽고 죽이다 보면 공연이 끝나 버린다. 교훈 따위는 없다. 그런데 관객들이 열광한다.
네이버 TV를 통해 방송되는 ‘존잘러스’도 인기다. 최근엔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해 활약했던 뉴이스트W의 김종현(JR)과 최민기(렌)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방송은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였다. 그동안의 히트곡 댄스를 보여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스피드 퀴즈를 하고, 광고 패러디가 기승전결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묘하게 몰입도가 있고,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가 많았다. 현재까지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사랑 받고 있다.
한때 교훈과 감동을 주는 콘텐츠가 인기가 높을 때가 있었다. ‘힐링캠프’를 통해 따뜻한 감성을 나눴고, 처음엔 웃음을 주요 코드로 했던 ‘무릎팍도사’도 감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승전결 맥락 없는 B급 감성의 병맛 콘텐츠가 대세다.
이건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이 웃음을 얼마나 갈망하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지점이다. 세상은 논리적인 생각을 요구한다. 가정, 학교, 회사에서 각각 주어진 역할에서 발표, 리포터, 보고서 등 끊임없이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이 가운데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조차 머리를 굴리면서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예능 보고 실컷 웃으면 됐지, 뭐 그리 거창할 필요 있냐”는 이야기가 많다. 욜로 족이 대세가 된 이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가오지도 않은 먼 미래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은 것. 그저 한바탕 크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다.
또 ‘말이 안 되게’ 기승전결 구조를 확 뒤집어 버리는 B급 감성 병맛 콘텐츠에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에는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구조와 흐름이 있다. 실제 현실에서는 이 구조와 흐름을 바꾸기 쉽지 않다. 그런 현실에 절망할 때도 많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듯. 그런데 병맛 콘텐츠는 이를 비웃는 듯 모든 정상적으로 여겨졌던 이야기들을 뒤집고 틀을 벗어나 버린다. 이런 점이 꼭 세상을 ‘내 맘대로’ 하는 것 같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격식과 고상함을 던져 버리고 할 말 마구 해 버리는 병맛 콘텐츠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만들어져 온라인 커뮤니티상 많이 떠돌아다닌다.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난 이야기들이 많아 일부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기발한 아이디어가 발견되고 웃음이 터지는 지점도 많다. 이런 점이 앞으로 병맛 콘텐츠가 더 주목받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얼마나 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이 나올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