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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평점 최악 ‘리얼’, 국내 스크린 1/3 차지 가능해?

흥행 실패 뻔한 영화로 대규모 관객 낚시…"나만 망할 수 없다" 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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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기자 |  2017.07.03 18:52:45

▲영화 '리얼'은 개봉일 박스오피스 2위의 성적으로 데뷔했지만, 네티즌 반응은 혹평 일변도다. (사진 = '리얼' 보도용 스틸)


영화 ‘리얼’이 역대급 혹평 속에 쪽박을 찰 분위기다.

지난달 28일(수) 개봉한 ‘리얼’은 주말 3일을 포함 닷새 동안 37만 3673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누적 매출액은 27억 원에 육박한다.

얼핏 보면 흥행의 기세를 탄 것 같은 성적이지만, 속사정은 정 반대다. 개봉 첫날 1위 ‘박열’과 2위 ‘리얼’의 관객 수 차이는 7만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첫 주말이 지난 현재 두 영화의 누적 관객 수는 80만 명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리얼’의 관객 수가 급감하고 있다. 개봉일 14만 6947명이나 되는 관객을 동원한 ‘리얼’은 이튿날 60.7%나 급감한 8만 922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주말이 시작되는 30일(금)에도 ‘박열’과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의 관객이 각각 전일 대비 23.2%, 37.3%씩 늘어나는 동안 ‘리얼’의 관객은 반대로 19.3%나 줄어들었다. 이런 추세라면 ‘리얼’의 최종 성적은 관객 50만 명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리얼'은 인기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였던 설리의 노출씬으로 화제가 되고 있으나 관객 수는 급감하고 있다. (사진 = '리얼' 보도용 스틸)


흥행 부진 이유? 너무 못 만들어서

영화를 본 관객과 평단의 일관된 혹평을 보면 ‘리얼’의 흥행 부진은 남 탓을 할 수 없다. 7월 3일 오전 10시 기준, ‘리얼’에 대한 네티즌 평점은 네이버에서 10점 만점에 4.56점, 다음에서 10점 만점에 4.43점을 기록하고 있다. 네이버에서의 평점 분포는 10점 만점을 준 네티즌이 33%, 1점을 준 네티즌이 54%라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리얼’ 측이 개봉 전 평점을 높이기 위해 소위 알바를 동원해서 10점짜리 점수를 잔뜩 올려놓았을 것을 고려하면, 실제 순수 관람객의 평점은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네이버 평점 페이지에는 내용은 오타까지 동일한데 사용자 아이디만 다른 10점짜리 평점이 수십 개씩 발견된다.

네티즌은 ‘리얼’을 ‘클레멘타인’(2004)이나 ‘7광구’(2011)에 비견되는 졸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역대 최악의 한국영화가 거론될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작품들이다.

‘클레멘타인’의 네이버 평점은 9.3점이고, ‘7광구’는 3.34점이다. 9점대라는 ‘클레멘타인’의 높은 평점은 네티즌의 반어적인 유머감각이 반영된 점수다. 이 영화에 평점을 매긴 네이버 사용자는 1만 7280명에 달하는데, 이 중 90%가 10점을 줬다. 이는 이 영화의 엉성한 완성도와 재미의 부재를 비꼬는 태도다. ‘리얼’의 10점짜리 점수 가운데도 “나만 당할 순 없다”라거나 “이 영화를 보고 암이 나았다”는 식으로 비꼬는 한 줄 평이 달린 경우가 많아 사실은 평점이 훨씬 더 낮아야 정상이다. ‘7광구’보다 평점이 높다 해도 그보다 욕을 덜 먹는 것은 아니다.

‘리얼’의 홍보와 배급을 담당한 이들도 영화가 망할 분위기를 사전에 감지한 정황이 엿보인다. 대부분의 상업 영화가 늦어도 개봉 2주 전에는 언론시사회와 각종 이벤트 시사회를 통해 입소문을 부추기는 마케팅을 펼치는데, ‘리얼’의 언론시사회는 개봉을 겨우 이틀 앞둔 6월 26일에야 열렸다. 간혹 개봉일 전까지 시사회를 일절 열지 않는 영화들이 있는데, 영화 측은 스포일러 방지라는 핑계를 대지만 십중팔구 좋은 소문이 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즉 ‘리얼’ 측에서도 이 영화가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졸작이라는 것을 이미 개봉 전에 판단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네이버 포털의 '리얼' 영화 페이지에는 오타까지 동일한 내용을 다른 여러 아이디로 올리면서 평점 조작을 한 흔적이 쉽게 발견된다. (사진 = 네이버 화면 캡처 및 편집)


망할 줄 알고도 스크린 970개 장악

이 영화에 평점 10점을 준 관객 중 “나만 당할 수 없다”는 한 줄 평을 단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심정으로 관객을 낚은 낚시꾼 중 최고는 배급사인 CJ E&M이었다. 

CJ E&M은 이 영화의 개봉일 스크린을 970개나 잡았다. 이는 ‘박열’(개봉일 917개, 주말 최대 1176개)보다 53개나 많은 스크린 수였으며,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특별시민’(개봉일 1154개)과 ‘더 킹’(개봉일 1125개, 주말 최대 1310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대한민국의 유료 스크린 개수가 총 2752개인데, 이날은 그중 3분의 1이 넘는 스크린에서 평점 4점대의 졸작이 상영된 것이다. 그것도 스크린당 평균 4회 이상, 총 4098회나 상영됐다. 좌석 수를 다 합치면 총 71만 3873석이나 되었다. 150억 원을 허공에 날릴 상황에서 “우리만 당할 순 없다”는 심보로 하루에 최대 7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낚을 속셈이었을까? 결과는 닷새 동안 37만 명 이상이 낚였다. 

사실 낚시가 아니라 완벽한 그물이다. 관객은 낚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너무 이른 새벽이나 심야가 아닌 시간대에 가까운 극장을 찾은 관객은, 고를 수 있는 영화가 ‘박열’과 ‘리얼’과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뿐인 것을 알게 된다. “볼 영화가 없다”고 투덜대보지만, 그들은 이날 대한민국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가 모두 102편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그중에 이날 50회 이상 상영한 영화는 14편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82편의 영화는 겨우 20개 이하의 스크린에서만, 그것도 보기 힘든 시간에만 상영했으니까.

결국, 이날 극장을 찾은 관객의 30%는 ‘리얼’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시간과 돈이 아까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시 말해 ‘리얼’을 제작·배급한 회사들은, 졸작을 만드느라 들인 150억 원이라는 헛돈을 썼을 뿐 아니라, 닷새 만에 37만 명의 소중한 돈과 시간, 그리고 영화 관람 행위와 얽힌 여러 권리까지 빼앗은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손실 폭을 줄였다고 표현하겠지만, 사회적 비용에 생긴 손실은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다른 영화들이 아닌 ‘리얼’을 보기로 결정했고, 자기 발로 극장에 갔으며, 자신의 의지로 티켓을 샀을 것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였으니 저 많은 관객은 다 어른이다. 여기에 어떤 강요나 기만행위가 있었을 리는 없다.

▲'리얼'에 출연한 성동일. (사진 = '리얼' 보도용 스틸)


그렇다고 ‘리얼’측이 비난을 피해갈 핑계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물건을 잘못 만든 탓에 일어난 손해를 관객 주머니에서 보충하겠다고 나섰다. 애초에 이 영화를 2년 동안 기획·제작하면서, 150억 원이나 되는 돈을 집행하면서, 영화의 완성도와 흥행 가능성 등을 예측하는 내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 시스템이 어디서 어떻게 망가졌건, 영화가 이 지경이 된 책임은 관객이 아닌 그들에게 있다. 

몇몇 영화계 관계자들과 ‘리얼’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 관계자들은, 네티즌이 ‘리얼’에 대해 남긴 재치 넘치는 한 줄 평에서도 제작진에 대한 분노가 느껴진다고 했다. 망할 거면 혼자 망하지 왜 자신들을 끌어들였는가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더라는 것이다.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반값 세일로 팔려고 나섰으면 괘씸하지나 않지, 이런 낚시질을 하는 심보는 곱게 이해해 주기 힘들다는 거다. 

홍보 마케팅은 정당한 기업 활동이라고 치자. 하지만 언론 시사회를 최대한 미루고 평점을 조작하는 등 정보를 교란하고 관객의 눈을 멀게 한 것은 반칙의 소지가 있다. 특히, 동원할 수 있는 스크린을 최대한 동원해 다른 영화들을 배제함으로써 관객의 영화 선택권을 제한했다. 게다가 여기 동원된 스크린이 무려 970개다. 배급-상영 수직 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한국 영화 시장 특유의 두 가지 병폐가 여전하기에 이런 대규모 낚시, 아니 이런 빽빽한 그물질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얘기를 나누던 관계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번에도 그것이 문제고, 아직까지도 그것이 문제라니. 그만큼 이 사안은 한국 영화계에서 오래전부터 곪아 터져 있는, 이제는 커다란 메스가 필요한 고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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