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미술관은 지난 2005년 경기도 이천에 금호창작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잠재력 있는 작가를 지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제7회 비평워크숍에서 참가작가들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금호미술관)
기업들의 ‘미술’ 사랑이 커지고 있다. 단편적인 전시회 후원이 과거 모습이었다면, 최근에는 신진작가 발굴과 지원 등 폭이 넓어지고 있다. 사내에 미술관을 마련해 지역사회에 개방하는 기업들도 느는 추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도전기회가 적은 이른바 생계형 ‘투잡 작가’가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있다. 이번 편은 이 문제를 다룬다. <편집자주>
기업들, 신진작가 등 유망주에만 관심
‘나홀로 청년 작가’ 도전 사각지대 놓여
미생작가들 “능력 인정받을 기회 달라”
“잠재력이 풍부하고, 개인전 경험이 없을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지원받기가 쉽다”
‘젊은 작가’를 발굴해서 지원하는 기업들은 보통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순수 아마추어면서, 발전 가능성은 있는 작가를 찾겠다는 취지다. 이런 원칙 하에 나름의 치열한 검증과정을 거쳐 지원할 작가를 선발한다.
CNB가 7개월간 연재 중인 <연중기획-문화가 경제>(5.2현재 총44회) 취재 결과, 두산, 대림산업, 포스코, 금호아시아나, 신한은행, 종근당 등 대부분 기업들이 지원연령을 ‘젊은’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또한 나이와 상관없이 이미 작가군에 오른 작가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요컨대 개인전 경험이 없고, 비영리를 추구하면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젊은 무명 작가들이 주요 선정 대상이 된다. 일단 발탁이 되면 지원금과 함께 전시회를 열 공간을 제공받는 등 혜택이 풍성하다.
▲젊은 작가들의 '예술 소통 창구'가 되어주는 구슬모아당구장. (사진=대림문화재단)
한 기업 미술관의 경우, 3~4개월 동안 각종 전시회부터 대학교 졸업작품전, 필요하면 SNS(사회관계서비스망)까지 샅샅이 탐구한다. 숨어 있는 실력파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보유한 네트워크를 죄 가동한다.
이렇게 발굴된 작가에게는 해당 작품에 대한 도서 발간, 세계적 평론가 초청 학술세미나 개최, 글로벌 홍보까지 총괄적으로 지원한다. 최종적으로 한국 미술가가 국내 전시를 기반으로 세계 예술계와 소통하는 데 까지 함께 한다는 계획이다.
모 기업 미술관 큐레이터는 CNB에 “작가를 선발하면 전시 과정 일체를 후원하거나 해외진출까지 돕는 등 혜택이 워낙 크다”며 “자칫 ‘낙하산’ 같은 뒷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객관적인 실력이 출중한 작가를 찾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진 작가에게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양한 작가군이 지원대상에 오를 수 없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특히 생계형 투잡 작가들에게는 기업들의 메세나(Mecenat·문화예술을 통한 사회 기여)가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지난해 서울의 한 미대를 졸업한 A씨는 오전엔 편의점 파트타이머, 오후엔 입시학원 강사로 일하다 밤이 깊어서야 작업실로 향한다.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도 A씨의 꿈을 더욱 멀어지게 하고 있다.
25~35세를 보통 ‘젊은 작가’라고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A씨처럼 학자금 대출이나 생계문제로 인해 작품활동에만 매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작가이면서 생계 해결을 위한 직업을 따로 둬야 하는 ‘투잡족(族)’이 많다.
기업들의 레이더망에 들어가려면 유명 공모전에 입상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이 선행돼야 쉽게 눈에 띌 수 있는데, 이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을 때 얘기다.
경제력이 취약한 ‘미생 작가’는 능력을 표출할 기회가 적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작가들 사이에서는 기업들에게 능력을 보여줄 창구가 다양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청년 빈곤’을 염두에 두란 얘기다.
또한 어렵게 개인전을 열어 이미 등용한 상태라면 기업들의 지원대상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개인전 경력이 곧 기성작가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진작가 위주로 발굴하고 있는 기업들의 취지와 어긋나게 된다.
20대 한 작가는 CNB에 “아르바이트와 작업을 병행하느라 남들 세 번 전시 할 때 한 번 하기도 버겁다”면서 “기업의 지원이 꼭 필요하지만 어필할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 꼭 전시가 아니더라도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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