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 꼰대’ 관련 기사를 보고 빵 터졌다. 나이 많은 부장보다 별로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도 않는 선배, 이른바 ‘젊은 꼰대’ 때문에 더 힘들다는 직장인들의 토로를 담은 기사였다. 빵 터졌다가 문득 스스로를 돌아봤다. 스스로 또한 어느새 “예전에는 더 힘들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책임 회피를 하는 젊은 꼰대가 되지는 않았는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2017년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짧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10년차 이상 선배들 앞에서 주름 잡을 정도로 굉장히 긴 것도 아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애매한 샌드위치 계급이다. 아래 후배와 위 선배 사이에 끼어서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듣는다. 그래서 더 피곤하다. 상황도 그렇지만 스스로 자초하는 것도 있다.
사회생활 초창기야 모든 것이 생소했고 어리바리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설프게나마 경험이 쌓여 ‘나 조금 알겠다’는 인식이 생긴다. 이때 꼭 질풍노도의 시기처럼 방황과 반항, 체념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오락가락한다. 요즘 시대에 사십대가 느끼는 허망함을 표현하는 ‘사십춘기’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샌드위치 계급의 대부분인 삼십대 초반 사람들 또한 ‘삼십춘기’를 겪는다. 더 이상 완전 무시당하는 초짜는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자기 보호본능이 강하게 발생한다.
이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가운데 웹툰 ‘열정호구’를 보고 더욱 마음이 심란해졌다. 아니, 찔렸다는 게 더 적절하다. 스스로의 모습을 봐서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에피소드 중 ‘기레기’ ‘인맥도 실력이야’ ‘전국노예자랑’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열정호구’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과거의 말을 비웃고, “헌신하다 헌신짝 된다”는 요즘 젊은 직장인들의 마음과 상황을 담은 작품이다. 웹툰 속 주인공 소연은 매번 취업에 실패하다 작은 회사에 계약직으로 취직한다. 그런데 이 작은 회사에서 돌아가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 특히 상사인 조옵쌀 편집장의 부당한 갈굼은 장난 아니다. 처음에 약속했던 정규직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능력도 노력하는 자세도 없는 상사가 그래도 상사랍시고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을 던져주며, 앞서 일했던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를 한다.
그런데 ‘기레기’ 편에서 이 조옵쌀 편집장이 과거 언론계에 처음 뛰어들었을 당시 부당한 상황에 목소리를 내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이 그려져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그때 조옵쌀이 마주했던 상황은 “원래 사회가 그런 거야”였다. 잘못된 상황을 제대로 지적하는 행동은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것’ ‘눈치가 없는 것’이었고,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도 잘린 조옵쌀은 자신이 그렇게 싫어했던 꼰대의 모습으로 점점 변해갔고, 젊은 꼰대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웹툰엔 단순히 조옵쌀 편집장과 그에게 핍박받는 소연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을 사회적으로 비춰보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웹툰에는 “우리 회사 이야기”라는 식의 공감글이 많이 보인다. 과장된 것도 아닌, 이 끔찍한 상황이 현실에서 무수히 펼쳐지고 있는 것.
그리고 여기엔 자라나는 꼰대의 위험성이 자리한다. 소연이 친구들과 만난 ‘전국노예자랑’ 에피소드가 특히 충격적이었다. 힘든 업무를 마치고 소연은 친구들과 만난다. 거기서 친구들에게 상사 욕도 하고, 회사의 힘든 상황도 이야기한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눈길을 끈다. 친구들은 “8시까지가 무슨 야근이냐, 10시까지는 해야지” “난 자정까지 야근하다가 차 끊겨서 회사 수면실에서 잔 적도 많다” “우리 회사는 선거날에도 출근하라고 한다”며 “너는 행복한 줄 알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백수인 한 친구는 “나는 그런 회사라도 다녔으면 좋겠다”며 화를 낸다.
생각해보면 저 모습은 필자 또한 친구들을 만났을 때 흔히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저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친구들이 “우리 회사가 더 힘들다”며 마치 노예 배틀을 하는 듯한 장면에서, 부당한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고 거기에서조차 스스로 계급을 나누는 모습을 발견했다. 자신들의 경험으로부터 ‘힘든 것’의 기준을 세우고, 이 경험과 비교해 다른 사람의 힘듦이 눈에 차지 않으면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이건 “나 때는 더 힘들었어. 너희는 조금만 힘들어도 징징 댄다”고 과거를 이야기하는 기성 꼰대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부당함에 잘 적응하고 익숙해진 ‘젊은 꼰대’들은, 힘든 상황을 타개하려는 노력을 그만둔다. 오히려 기존에 되풀이됐던 꼰대질을 다시 물려주게 된다. 그렇게 또 사회는 돌아간다. 그래서 바뀌지 못한다.
MBC ‘무한도전’의 ‘국민의원 특집’에서도 최근 이 문제를 짚었다. 한 국민의원은 ‘직장 내 멘탈털기 금지법’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정당한 업무가 아니라 상사들이 자신들의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욕설을 한 사례들이 등장했다. 그야말로 꼰대질이다. 이 꼰대질이 젊은 세대에게 많은 영향을 주며 젊은 꼰대를 무럭무럭 키우고 있다. 그리고 방송은 부당한 상황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던 젊은 세대의 안타까운 현실도 짚었다.
정당하고 올바른 것을 알려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문제도 있다. 그런데 잘못된 것만을 흡수하고 이를 또 되풀이한다면 젊은 꼰대 또한 기성 꼰대와 다를 게 없다. 또 여기에 기본도 지키지 않고 완전 무개념으로 대응하는 일부 사회 초년생들의 문제도 있다. 결국 각자가 스스로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고, 문제를 직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기부터가 시작이다.
웹툰 속 소연은 “우리는 이미 노예로 사는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라고 자문했다. 여기에 또 스스로 자문해야 할 게 있다. “우리는 젊은 꼰대를 키우는 데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