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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만성 분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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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17.02.02 16:21:35

▲이미지=pixabay

우리는 지금 분노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영화 ‘28일후’에 등장하는 분노바이러스처럼, 한 번 퍼지면 통제 불능의 ‘화’가 사회 구석구석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난 설 연휴기간 도로 위. 서울역을 지난 택시가 숭례문에 이를 때만 해도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도로는 한산했고, 양 옆에 앉은 어린조카들은 쏟아지는 졸음을 온 몸을 다해 받아들이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적당한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니 고요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같은 기간 차례상 앞. 둘러앉은 친척들은 음식을 먹으며 근황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결혼, 취업 등의 명절 대표 금기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모두가 웃으며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도로 위. 택시가 시청방향으로 진입할 무렵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한 가지 뉴스는 평온을 깨는 서막이 됐다. 박사모(박근혜대통령을사랑하는모임) 회원이 아파트에서 투신을 했고, 박사모는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택시기사는 ‘일부’ 국민이 만든 탄핵사태가 한 생명을 앗아갔다며 개탄했다. 세종대로를 달리는 와중에는 작정이라도 한 듯 ‘진짜’ 국민들은 이곳에 없다며 증오의 단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시 집안. 대개 그렇듯 갈등은 필연과 우연 사이에서 발생한다. 대표적인 금기어는 잘 피해왔지만 해묵은 난제가 화근이 됐다. 바로 세대 갈등이다. 투표 연령 하향 조정을 두고 삼촌이 “애들이 뭘 안다고”라고 하자, 고3 조카가 “열여덟이면 알 거 다 아는 나이”라고 맞받아치며 설전은 시작됐다. 진부해서 드라마 대본에도 못 쓸법한 대사들이 난무했지만, 현재 ‘요즘 애들’과 과거 ‘요즘 애들’의 대화는 사뭇 진지했다.

따사롭던 햇살이 이글거리기 시작한 도로 위. 말과 차의 속도는 동반상승하기 시작했다. 악에 받친 기사의 음성은 제동과 가속의 페달에 힘을 실었고 모두의 몸은 앞뒤로 요동을 쳤다. 아이들은 겁에 질렸고, 나의 분노로써 그의 분노를 막아서는 것 외엔 도리가 없었다. 고요한 서울 풍경이 불 뿜는 활화산으로 돌변하는 건 순간이었다.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밥상머리. 분노의 화마는 가족 집단이란 견고한 울타리도 속절없이 무너트렸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한 불씨는 오랜 시간 쌓여온 갈등을 재물로 활활 타올랐다. 고대 그리스 벽화에도 새겨졌다는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대놓고 세대 갈등 양상으로 번졌다. 조카는 “애초에 어른들이 잘 못 뽑아서 이 지경 아니냐”며 악다구니를 썼다. 서로의 말은 귀가 아닌 가슴에 가 꽂혔고, 밥상머리는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화의 경연장으로 변질됐다. 

분노는 때로 세상을 뒤집는 동력이 됐다. 민주주의의 역사도 시민들의 값진 분노가 있었기에 이룩할 수 있었다. 증오 섞인 분노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시대임에는 통감한다. 그럼에도 소모적인 화는 잠시 내려놓고 정의로 향하는 분노에 힘을 실으면 어떨까. 아직 바뀐 것은 없고,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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