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가 11배까지 적용되는 가정용 전기를 사용하는 대부분 국민들은 개문냉방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불황이라 문을 닫으면 손님이 안 온다’는 상인들의 반론도 만만찮다. CNB가 낮기온이 34도까지 치솟은 지난 25일 우리나라 대표 상권인 ‘홍대 상점가’를 다녀왔다. (CNB=김유림 기자)
홍대 상점들 열에 아홉은 문 열고 장사
누진제에 주눅 든 시민들 ‘따가운 눈총’
“문 닫으면 손님 안와” 불황의 그늘
정부는 폭염으로 인한 냉방 전력 소비가 늘어나면서 지난 11일부터 ‘개문냉방영업’을 집중 단속 중이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개문냉방 영업 단속에 나선 것. 단속 대상은 에어컨을 틀고 문을 열어 둔 채 영업하는 매장, 점포, 사무실, 상가 건물 등의 사업자다. 최초 위반 시는 경고장에 그치지만, 이후 상습적으로 적발될 경우 1회 50만원, 2회 100만원, 3회 200만원, 4회 이상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한낮 기온은 34도까지 치솟은 지난 25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홍익대 메인 거리 일대의 풍경은 정부 단속을 무색게 했다.
옷가게, 액세서리 매장, 안경점 등 열의 아홉은 문을 활짝 연 채 영업 중이었다. 문을 열어 놨지만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은 상점도 있을까 찾아봤지만, 한 곳도 발견하지 못했다.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에어컨 냉기로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이들에게는 정부의 단속 보다 손님유치가 우선이었다. 홍대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CNB 기자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손님들이 아무래도 부담 없이 구경하러 들어온다”며 “우리도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냐”고 토로했다.
정부의 정책을 준수하고 있는 곳은 올리브영(CJ올리브네트웍스), 롭스(롯데쇼핑), 아리따움(아모레퍼시픽), 에뛰드하우스(아모레퍼시픽), 스킨푸드, 네이처리퍼블릭 등 대기업 계열 직영점과 가맹점 뿐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대기업의 점포들도 있었다. GS리테일이 운영하고 있는 ‘GS왓슨스’,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 글라스스토리의 ‘렌즈스토리’, 한국화장품의 ‘더샘’, 토니모리, 이랜드월드의 ‘FOLDER’, KT의 ‘올레’, 코데즈컴바인 이너웨어 등 홍대에 입점해 있는 이들 매장들은 모두 개방냉방영업을 하고 있었다.
GS왓슨스 관계자는 CNB에 “이미 개방냉방영업과 관련해 공지를 내린 바 있다. 고객들이 나가면서 열어놓은 것”이라고 말했고, 자동문인 홍대중앙점의 센서가 멈춘 채로 문이 열려있었다고 반문하자 “다시 한번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랜드월드 관계자는 “매장에 지침을 전달했지만 홍대점만 한쪽 문을 열어놓고 영업한 것 같다. 주의조치를 내렸다”고 말했다.
토니모리 관계자는 “5차례에 걸쳐서 전 지점에 공지를 내렸다”며 “홍대점은 리뉴얼 공사중이라서 문이 열려있었고, 영업 중인 홍대클럽점은 손님이 최근 많이 줄어들어 매출 부담 때문에 점주가 문을 열어 놓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길거리 상점들은 일반 가정이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이들은 전기세가 무섭지 않은걸까?
현재 가정이 사용하는 전기와 다르게 산업용과 일반용(상업용) 전기는 누진제가 없다. 공장 등 산업용은 1킬로와트당 81원(6~8월 기준), 상업용은 105원이다.
가정용에는 6단계까지 누진요금이 적용된다. 한 달 동안 100킬로와트를 사용했다면 1킬로와트당 요금 60.7원이 적용되지만, 500킬로와트 이상 쓰면 요금이 709.5원으로 무려 11.7배 뛰어오른다.
가령, 일반가정에서 한 달 동안 600킬로와트의 전기를 쓰면 21만원이 훌쩍 넘어가지만 기업은 5만원, 상점은 6만원이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놓고, 문을 연 채로 장사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다.
홍대 상인회 한 관계자는 “개문냉방 특별 단속이 ‘누진세 폭탄’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시작됐다는 점에서, 마치 소상공인들이 대단한 특혜를 받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며 “이런 식의 여론무마용 단속이 아니라 대기업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 누진요금제의 전면적인 개편이 선행된 뒤 단속이 이뤄져야 상인들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