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융사들이 올 상반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지만 하반기 전망은 어둡다. 금피아 관행을 깨는 등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요구된다. (왼쪽부터)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CNB포토뱅크, 연합뉴스)
사상 최저금리가 계속되면서 은행들의 예대마진(예금-대출간 발생이익)이 크게 줄어들었음에도, 주요 금융사들이 올 상반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해 주목된다. 특히 민영화 재도전에 나선 우리은행의 순이익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돼 매각에 청신호가 켜졌다. 구조조정 저금리 등 악재에 둘러싸인 금융사들이 어떻게 ‘깜짝 실적’을 낼 수 있었을까? (CNB=도기천 기자)
상반기 주요 은행들 호실적
순익 늘었지만 전망 불투명
금피아 깨고 경쟁력 키워야
27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KB·하나금융과 우리은행의 상반기 순이익 규모는 4조1295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3조4505억원보다 19.7%(6790억원) 늘어난 것으로, 증권가의 예상치 컨센서스(3조8830억원)보다도 2400여억원 많다.
신한금융지주는 작년 상반기보다 2067억원(13.3%) 늘어난 1조4548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핵심 계열사인 신한은행이 호실적을 이끌었다. 신한은행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26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7903억원)보다 2364억원(29.9%) 늘었다.
KB금융지주는 4년 만에 순이익 '1조원의 벽'을 넘었다. KB국민은행의 호조에 힘입어 작년 상반기보다 1887억원(20.1%) 늘어난 1조1254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하나금융은 올 상반기 79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 작년 동기대비 412억원(5.5%) 증가했다. 반기 기준으로는 지난 2012년 이후 순이익이 가장 많았다.
특히 매각을 추진 중인 우리은행이 가장 큰 수익을 냈다. 우리은행은 7503억원의 순익을 올려 지난해보다 무려 45.2%(2334억원)나 증가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매각을 논의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작년보다 열흘이나 앞당겨 실적을 발표했다.
이는 하루빨리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다. 정부는 우리은행을 살리기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 약13조원을 회수하기 위해 목표주가를 1만2800원으로 책정했다. 우리은행이 호실적을 내면서 그동안 1만원선을 넘지 못하던 주가가 1만원대 초반에서 안착하는 모습이다. 낮은 주가가 매각에 걸림돌이 돼 왔는데 파란불이 켜진 셈이다.
▲시중은행들은 ‘갈 곳 없는 뭉칫돈’을 대출에 활용해 예대마진을 높이고 있다. 시중은행들 모습. (사진=CNB포토뱅크)
‘갈 곳 없는 뭉칫돈’ 대출에 활용
은행들의 이같은 호실적은 예상 밖이다. 2008년 5%대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계속 내려가 현재는 사상최저인 1.25%다. 이에 따라 예대마진(예금-대출간 발생이익) 폭이 크게 줄었다.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은 2010년 1분기 2.4%로 최대치를 찍은 이후 2011년 말까지 2.3%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현재는 1.5% 안팎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깜짝 실적을 낸 이유는 비용을 줄이고 리스크 관리 등에 신경을 쓴 덕택이다. 특히 경기불황으로 은행에 몰린 ‘갈 곳 없는 뭉칫돈’을 잘 활용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평잔 기준)은 159조 7천억원으로 사상최대 규모다. 올해 1월 처음으로 150조원을 넘어선 뒤 매달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요구불예금(要求拂預金)은 예금주의 요구가 있을 때 언제든지 지급할 수 있는 예금을 이른다. 흔히 수시입출금식예금으로 불린다. 요구불예금은 이자가 거의 없다. 예금금액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0.1~1%에 불과하다. 은행들은 이 자금을 활용해 3~4%대 대출에 나서고 있다. 거의 공짜로 자금을 조달해 상당한 마진을 남기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소폭이나마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분기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의 NIM은 전분기 대비 0.02% 상승해 각각 1.50%,1.58%를 기록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최저로 내려간 상황을 감안하면 나름 잘 방어한 결과다. 부실 가능성이 큰 기업의 대출을 줄이는 등 건전성을 강화한 것도 NIM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최근 몇 년간 계속돼온 구조조정 효과도 서서히 효과를 보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대손비용 증가, 금융당국의 구조개혁 압력, 인터넷·스마트폰뱅킹에 따른 금융환경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최근 3~4년 새 인력을 10%가량 감축했다. 사람이 할 일을 컴퓨터가 대신 해주는 핀테크(금융+IT)에 밀려 스스로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나는 이들도 늘고 있다.
KB금융은 지난해 희망퇴직 등으로 일반관리비가 큰 폭으로 줄어든 점이 수익개선에 영향을 줬다. 일반관리비가 작년 2분기 대비 3224억원(13.2%)이나 줄었다.
‘금피아’로는 희망 없어
하지만 앞으로도 수익이 개선될 지는 의문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여파가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데다, 기업구조조정, 영국 브렉시트에 따른 글로벌 금융환경 불안 등 악재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27일 CNB에 “조선·철강업종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하반기에 예고돼 있는데다, 수출기업들의 리스크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느 한 곳이 넘어지면 연쇄적으로 부도가 날 수 있어 기업대출금 관리에 은행들이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정부가 금융사들을 좌지우지하는 금피아 관행 등이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보듯 정부가 은행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대우조선 지원을 결정한 정부 방침에 따라, 산업은행·수출입은행·농협·하나·KB국민·신한·우리은행 등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원했지만 회수가 요원한 상황이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CNB에 “정부는 금융사들에게 건전성 개선을 강요하면서, 한편으론 부실기업에 돈을 대주라고 하고 있다. 이런 이중적 잣대가 은행의 체질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