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가 시행된지 3개월이 지났지만 가계대출 잔액은 여전히 증가세를 보였다. 사진은 16일 오후 서울시내 한 아파트단지 모습. (사진=손강훈 기자)
가계대출 증가세를 완화시키고자 내놓은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가 시행 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CNB 취재결과 확인됐다.
가계대출 잔액은 여전히 증가세인 데다가 현장의 반응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환 방식 변동으로 인한 월 부담 증가와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는 등 국민 이자부담만 커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CNB=손강훈 기자)
대출규제 하자 2금융권 ‘풍선효과’
전세값 폭등에 매매 수요 계속 증가
‘가계빚 줄이기 정책’ 사실상 실패정부는 주택담보대출 심사와 상환 방식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를 올 2월 시행했다. 갚을 수 있을 만큼 돈을 빌려주고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아 가계대출 부채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
시행 3개월이 지난 현재 그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가 시행된 2월 이후에도 가계대출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월말 기준 2월은 전월보다 2조9000억 원, 3월은 4조9000억 원, 4월은 5조3000억 원이 각각 증가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2월 2조6000억 원, 3월 4조4000억 원, 4월 4조6000억 원으로 가계대출 상승을 이끌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이후 은행가계대출 잔액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세가격이 치솟으면서 수요자들이 주택 매매를 선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세값 상승이 매매가격 상승 폭을 뛰어넘고, 전세물량이 희귀한 상황에서 2~3% 정도의 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보니 강화된 주택담보대출에도 불구하고 ‘집 사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무실은 17일 CNB에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강화 방안이 주택거래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체감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물량이 없고 전세값이 매매가에 육박한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낮다보니 이사철을 맞은 세입자들이 구매를 많이 생각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금리가 올라야 가계대출이 주춤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오히려 이번 대출 규제가 국민 이자부담을 증가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제1금융권의 대출심사가 강화되면서 2·3금융권(저축은행·대부업 등)을 찾는 고객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비은행금융기관(저축은행·종합금융사·신용협동조합 등)의 대출금·매입어음 등 여신 잔액은 660조 3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636조 8000억 원)보다 23조 5000억 원(3.7%) 증가했다. 분기별 증가폭은 외환위기(IMF) 때인 1997년 4분기(24조 4000억 원) 이후 18년 3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CNB에게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는 손님도 늘고 있다”며 “이번 방안이 오히려 가계대출 질을 낮추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한 구매자의 경우 앞으로 ‘갈아타기’가 불가능해져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내야 한다”며 “특히 1~2억 원 이상 대출을 많이 받은 경우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현직 공인중개사들은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의 효과가 체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손강훈 기자)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주택 매매가격이 여전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점도 대출규제가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종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은 여신심사가 강화된 지난 2월 이후에도 매월 0.1~0.2%씩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반면 지방의 집값은 떨어지고 있다. 입주물량 증가로 주택 매매가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출규제까지 더해진 데다 지방소재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된 탓이다.
부산에서는 대우조선해양, 울산에서는 현대중공업 등 조선·해양 부문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주택구매 심리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수도권과 지방을 구분해 대출규제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금리를 올리는 것이지만 이는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반대되기 때문에 선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며 “두 마리 토끼(가계부채 축소·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모두 잡으려다 정부 스스로 창과 방패 같은 ‘모순’에 빠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CNB=손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