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이해관계 상대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는 금품·향응을 선물 5만원, 식사접대 3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제한하면서 요식업계와 유통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금액 내에서 제공 가능한 상품 개발에 전사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내년 설에는 5만원짜리 소갈비세트를 볼 수 있을까? (CNB=김유림 기자)
유통·요식업계 김영란법 구멍 찾기 ‘비상’
‘3만원 식사메뉴’ ‘5만원 선물세트’ 개발
백화점 ‘울상’, 대형마트 풍선효과 ‘기대’
서울 여의도 일대 식당가는 대부분 고객이 정치인, 언론종사자, 공무원(국회대관팀) 등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식당가의 우려가 크다.
실제로 CNB가 11일 여의도 일대 식당들을 둘러본 결과, 조용히 담소를 나눌 공간이 있는 음식점의 점심 세트의 경우 대부분 1인당 3만원을 넘었다. 또 고깃집에서 주류나 음료수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가질 경우, 1인당 4~5만원은 훌쩍 넘게 된다. 식당들은 ‘김영란법 가격’에 맞춰 새로운 메뉴개발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 및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도 선물 가격 제한으로 인해 비상이 걸렸다. 올해 추석은 김영란법 적용을 받지 않지만, 당장 내년 설부터 명절 선물세트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백화점 선물 세트는 5만원 이하 비중이 5%에도 못 미치며, 가장 인기 있는 선물 가격대는 50만원일 정도로 비교적 고가 선물 수요가 높다. 수입 과일, 굴비, 한우 등 농축산 식품 선물은 고품질, 소량 판매를 하기 때문에 최소 10만원대부터 200만원대까지 이른다.
실제로 지난 2월 설 명절 롯데백화점에서 138만원짜리 한우 선물세트는 준비한 물량의 90% 이상이 나갈 정도로 없어서 못 팔았다. 신세계백화점은 100만원대 한우가 300개 가량 판매됐고, 120만원대 명품 한우가 열흘도 안돼 준비한 물량 100개가 매진됐다. 200만원 상당의 참굴비 세트도 100개 한정물량 중 90% 가까이 팔렸으며, 모두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많이 팔렸다.
여기에다 신선식품 특성상 매년 주변 여건에 따라 ‘시가’ 변동이 크기 때문에 5만원대 상품이 나오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CNB에 “백화점 신선식품 선물은 고품질이 기본이다. 대량 판매를 한다고 해도 5만원대를 내놓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공산품과 달리 생산, 상품화까지 오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상품 구성과 가격대 조정을 위해 농가, 협력사 등과 함께 일찌감치 대응책을 모색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반면 신선식품과 달리 참치, 샴푸, 홍삼 등 공산품은 수급 상황이 일정하고, 김영란법에서 제한하는 금액과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기존 세트에 들어가는 항목이나 용량을 조금 줄여서 맞춤형 상품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 관계자는 “판매점들의 공동구매를 통해 원가를 낮추거나, 직접 물건을 들여와 중간 유통 과정을 최소화해 판매단가를 낮추는 방안 정도가 대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백화점 선물의 고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고급스러운 소포장이 많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화점과 달리 대형마트는 현재 5만원 미만 저가 선물세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비교적 피해가 덜할 것으로 관측된다. 심지어 마트업계 일각에서는 백화점 매출의 일부분을 마트가 떠안게 될 수도 있다며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실제로 신세계 이마트의 경우 올해 설 선물세트 매출에서 5만원 이상 세트 비중은 33%에 불과했다. 반면 신선식품 선물 가격은 5만원 이상이 6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CNB에 “마트도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신선식품 선물세트는 대부분 굴비나 한우로 구성돼 있어, 5만원 이하 상품은 없다. 다만 선물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를 찾는 고객들은 주로 5만원 이하 상품을 구매하기 때문에 백화점 보다는 김영란법의 타격을 덜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김영란법 해결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마트 특성상 고가 선물 수요가 적기 때문에 굳이 5만원을 맞추기 위해 양을 줄이거나, 낮은 품질의 상품을 준비할 필요성은 아직 피부로 못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골프장 업계도 김영란법 타격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골프 접대를 선물로 간주해 5만원까지 허용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골프장 이용료를 초과하게 된다.
통상 주말 접대 골프는 그린피 25만원 이상, 캐디 피와 카트비 등을 합하면 1인당 기본 5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김영란법이 골프 접대를 선물로 간주, 상한선을 5만원으로 제한한다면 직무와 관련된 골프장 이용은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골프회원권 가격 하락세도 불 보듯 뻔하지만 갑작스럽게 가격을 내린다면 비싼 값을 지불한 기존 회원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전국 총 500여 곳의 골프장에서 일하고 있는 5만5000여명의 관련 종사자들의 일자리도 급격하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