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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재집권’ 꿈 응답받을까…1997 황태연과 2015 김욱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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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기자 |  2016.04.28 19:12:18

올 4.13 총선을 앞두고 호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고, 그 결과 역시 비상했다. 호남이 '지역당'을 갈아치워버린 것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은퇴을 번복하며 1995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이후 호남인들은 ‘김대중의 정당’에 거의 항상 90%가 넘는 몰표를 던지며 지지해 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김대중을 계승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을 거의 몰아내버렸다.
 
호남의 이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앞두고 작년에 출간된 김욱 서남대 교수 저 「아주 낯선 상식 -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에 손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 김욱은 “호남은 더 이상 친노의 인질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호남은 호남의 이익을 위해 투표해야 하며, 그 어느 정당이든 호남 표를 얻고 싶으면 호남 유권자들에게 구걸하라”는 선언이다.


그는 친노를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자들’로 규정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박정희가 만들었고 그래서 영남(특히 TK)이 영원히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영남패권주의에 동조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영남패권주의(줄여서 영패주의)와 전면적으로 투쟁할 생각도 강하지 않은 경상도 출신 세력들이 친노의 핵심이라는 비판이다. 

김욱의 규정에 따르면, 친노는 선거 때만 되면 호남의 100% 지지를 바란다. 그러나 선거만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호남에 경제적 이익 주기를 거절하고, “정당 전국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특히 부산-경남(PK)에 경제적 이익을 줌으로써 표를 가져와야 한다”고 영남에 경제적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영남에는 비합리적 투자 잘도 하면서 왜 호남 투자에는 그리 계산적 되나?”

그 대표적 사례로 김욱은 참여정부 당시 이해찬 총리의 발언을 꼽는다. “민주당이 집권했으니 호남 고속철을 놔달라”는 호남의 요구에 대해 당시 이 총리는 “경부고속철의 경제적 손실을 봐라. 호남 고속철은 더 손해이니 실행할 수가 없다”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김욱은 “영패주의 세력은 영남에 비합리적인 돈을 쏟아부었는데, 왜 호남 표를 거의 100% 받아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호남에 대한 경제적 계산에는 그렇게 갑자기 똑똑해지고 계산적이 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남권 신공항처럼 경제성과 상관없는 공약을 계속 흘렸다”고 규탄한다.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절대로’ 새누리당 계열 정당(전두환 전 대통령이 창당한 민정당의 뒤를 잇는)에는 표를 줄 수 없는 호남인들을, 영남의 이른바 개혁인사들이 인질로 삼아, 표는 얻되 이익은 주지 않는 행태를 보여온 게 친노의 정체라고 그는 질타한다.

이런 그의 주장이 먹혔는지 이번 총선에서 호남인들은 국민의당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총선에서의 대성공 뒤 박지원 의원 등 국민의당의 핵심은 계속 “호남의 이익을 위해”를 발언하고 있다. 

김욱의 책에 이어 1997년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펴낸 ‘지역패권의 나라 - 5대 소외지역민과 영남서민의 연대를 위하여’를 읽어봤다. 황 교수는 1997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내부식민지인 호남과 충청, 강원, 경기, 서울 등이 단합해 PK 김영삼 정권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 몰표에 5대 '피식민 지역'의 표를 합치고, 여기다가 영남의 피지배 노동자 표까지 합치면 영남패권주의를 이길 수 있다는 전략이다. 황 교수는 유럽의 내부식민지론, 즉 국내의 특정 지역이 패권을 행사하면서 다른 지역을 해외 식민지처럼 수탈하는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자세히 소개했다. 자칭 “한국 최초의 지역주의 정치학”이었다. 

그의 예언 또는 기대대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충청의 김종필과 DJP연합을 이뤄 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당시의 정권교체에 대해 흔히 “IMF 사태가 없었다면 김대중의 간발의 차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IMF 사태 이전에 출간된 황태연의 주장을 보면 IMF사태마저도 필연으로 보인다. 박정희 정권이 18년간 구축한 TK패권을 김영삼 정권은 PK패권으로 대체하려고 무리수를 거듭했으며, IMF 사태의 발단이 된 한보그룹 사태(당시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는 경남 진주 출신) 등이 모두 이런 ‘PK패권 시도 무리수’의 결과라는 얘기다. 즉, 김영삼 정권의 행태로 봤을 때 IMF 사태 같은 파국은 필연적이라는 예언이었다. 

1997년 황태연의 희망은 그해 대선에서 김대중의 승리로 성취됐다. 그리고 19년 뒤 김욱의 희망은 4.13 총선을 통해 ‘1단계’가 성취된 셈이다. 

‘호남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자’는 김욱 식의 주장에 대해 타지역 사람들은 자연스레 반발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김욱 등의 구상이 현실화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데모크라시에서 ‘데모’의 뜻은?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 정치학의 첫발을 놓았다는 황태연의 19년 묵은 책을 보면서, 그가 펼쳐낸 '지역학적 민주주의론'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democracy)를 국시로 한다. democracy는 demos(people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 cracy(지배)의 합성어다. 황태연은 demos를 ‘거주지를 기준으로 한 지역공동체 또는 지연적 시민집단’이라고 풀이한다. demos와 대비되는 고대 그리스의 개념으로는 혈통 또는 혈연공동체가 있으며, 그 이름은 도시에서 phyle, 농촌에서는 ethnos였다고 한다. 

왕정 또는 귀족정에서 권력은 ethnos에 있었다. 즉 피를 통해 권력이 행사됐다. 귀족-양반의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귀족-양반이고, 서자-서민-상놈의 자식은 세상을 뒤집어엎거나 아주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권력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이렇게 권력을 타고나니, 출생과 결부된 땅에도 차별이 있는 게 당연했다. 황태연은 책에서 ‘봉건적 정체체제는 지역 위에 지역 있고 지역 밑에 지역 있는 지역차별의 원리를 기본으로 했다. 영조 때 영남에서 일어난 무신난을 계기로 경상우도는 반역향으로 찍혀 완전 영락했다. 인조 반정 이후 영남인은 과거를 치르지 않거나 급제해도 거의 관계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등의 구체적 사례를 보여준다. 피가 나쁘면 출세 못하듯, 나쁜 땅에 태어난 사람은 출세 못하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피에서 피로 전해지는 에트노스의 권력을, 등권적 지역연합에 기초한 지배체제로 대체했다고 그는 소개했다. 민주주의는 ‘외국인도 경계 내에 들어오면 경계 내의 법을 적용받는 것을 뜻하며, 이렇게 개인적 선택이 가능한 거주지 개념에 입각한 지연을 기준으로 지역등권적으로 구획된, 데모스 같은 지역공동체적 단위를 필요로 했다’는 설명이다. 

땅과 땅 사이 차별이 넘치는 이 나라는 진정 민주주의?

땅과 땅 사이의 차별을 없애면서 ‘지역 등권’을 목표로 출발한 게 민주주의라면, 현재 대한민국에는 민주주의가 행해지고 있는지, 또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TV 드라마의 사투리 사용을 보면 참으로 고약하다. 같은 전라도 출신인데도 신기하게 성공한 검사는 전라도 현지에서도 깔끔한 서울말을 쓴다. 그러나 아무리 서울에 오래 살았더라도 깡패나 술집주인은 계속 징한 사투리만 쓴다. 

최근 히트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가난한 아버지 성동일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온통 경상도 사투리 일색이다. 이 드라마를 본 외국인은 ‘한국은 서울과 경상도-전라도라는 세 지역으로 이뤄졌구나’라고 착각할 만하다. 사투리는 경상도로 통일하고, 전라도 사투리를 살짝 양념으로 뿌려 놓고, 나머지 충청도-강원도 사투리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쌍문동의 그 정겨운 골목은 경상도 사람들만 집단적으로 이주한 곳인듯 싶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 출연진. 맨 뒷줄의 '1세대'의 사투리 사용자 6명 중 5명이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21세기의 한국은 피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빠르게 후진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세, 4세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말아먹어도 ‘기업 프렌들리’ 정부가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 근로자가 불행해진다”며 조 단위의 구제자금을 국민의 혈세에서 펑펑 잘도 뽑아내 지원한다. 반도의 북쪽에서는 ‘김씨 왕조’가 이어지고, 남쪽에서는 대를 잇는 정치인들이 ‘피를 통해 받은 권력’을 누리고 있다. 나이든 유권자들, 그리고 ‘영패주의’ 지역의 많은 유권자들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피에 의한 차별, 사투리에 대한 차별이 지속적으로 이뤄져도, ‘민주주의의 원칙은 지역차별이 없는 것’이란 외침은, 19년 전의 절판된 책 속에만 남아 있다. ‘호남당’의 미래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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