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판정 난 의약품은 독성물질
경남제약 절차 안 밟고 임의폐기
59년 된 제약사가 절차 몰랐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약처는 지난해 12월 경남제약의 어린이용 해열진통제 ‘이부쿨펜시럽’ 일부 제품에서 변질(변색)이 발견되자, 해당 제품을 위해성 2등급으로 판단해 강제회수 및 판매중단, 제조업무정지 1개월 처분을 내렸다.
위해성이 발견된 이부쿨펜시럽은 제조번호 13003, 2013년 3월22일 생산한 제품이며, 유통기한은 3년이다. 보건당국은 위해성 1~3등급 불량 약품이 발견되는 즉시 회수 명령을 내리고, 이때 제약회사는 불량 의약품을 즉각 수거, 폐기한다.
그러자 식약처는 경남제약이 폐기과정을 어겼다(약사법 71조 위반)며 지난 15일 추가로 제조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정부가 까다롭게 폐기 절차를 정한 이유는, 절차대로 하지 않을 경우 불량 약품이 제조날짜를 바꿔 음성적으로 유통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불량 약품에는 독성 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에 임의대로 폐기했다가는 환경오염 및 생태계가 파괴될 우려도 있다. 만약 문제의 약품을 하수구나 일반쓰레기로 버리게 되면, 분해되지 않은 채로 하천이나 토양에 잔류하게 된다.
실제로 잘못 폐기된 약품으로 인해 지방 하천수에서 카페인, 아세트아미노펜 등 사람이 복용하는 약 성분뿐만 아니라 설파티아졸 등 동물용 항생제가 검출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생제 같은 의약품은 물에 쉽게 분해되지 않아 ‘항생제 물’을 사람이 수시로 마시게 될 경우, 항생제 내성이 생겨 향후 세균 및 바이러스 감염 치료를 방해하는 피해를 발생시킨다.
또 토양에 버려졌을 경우, 의약품에 의해 토양 산성화가 일어나 식물 생장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약은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처럼 잘못 취급하면 사람을 병들게 한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경남제약 측은 “위해성 3등급 처분을 받은 사실을 몰라서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경남제약 관계자는 지난 27일 CNB에 “당초 지난해 12월23일 위해성 2등급과 1개월 행정처분을 받았다. 이후 자사는 국가공인시험기관인 한국 고분자 시험연구소에 의뢰한 시험결과를 식약처에 제출하며 이의를 제기했고, 변색이 경미하다는 것이 인정돼 3등급으로 완화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자사는 식약처 처분이 3등급 완화가 아니라, 위해성 등급 자체가 없어지고 제조업무정지 1개월 처분만 받은 것으로 인지했다. 그래서 당국의 감독 없이 자체 폐기했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처분이 완화되는 과정에서 처분 수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식약처는 “경남제약이 위해성 3등급 판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CNB에 “행정처분을 내릴 때 허술하게 통지하지 않는다. 2등급에서 3등급으로 변경하면서 절차대로 문서를 통해 통지해줬고, 분명히 (경남제약 측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경남제약이 3등급이면 공무원 입회 절차가 없어도 되는 줄 알고 자체 폐기를 진행했을 수는 있다. 경남제약도 그렇게 해명했다. 어쨌든 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앞뒤 상황을 종합해보면, 경남제약이 식약처가 내린 3등급 판정을 임의 폐기해도 되는 등급으로 잘못 오해했거나, 등급 판정 자체가 없어진 걸로 생각했을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올해로 59년 된 제약사가 이해하기 힘든 일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의문이 쉬 가시지 않고 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