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작이 새봄을 맞아 진달래로 한국인의 미학을 표현해온 김정수 작가(60)의 초대전 '진달래 - 축복'을 30일까지 연다.
봄철에 피어나는 진달래는 흔한 꽃이지만, 한국인에게 아스라한 옛 추억을 안기는 특별한 꽃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난 후 황량한 산야를 고운 분홍빛으로 물들여 가는 진달래를 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절로 생겨나기 마련.
작가는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축복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작품 20여 점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우리나라 전통 과반에 한가득 축복을 담은 작품을 비롯해서 농가에 흩날리는 진달래, 커다란 바구니에 담은 진달래 꽃잎 등 다양한 진달래 작품이 전시장에 모인다.
처음부터 작가가 진달래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건 아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1983년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도불한지 1년 7개월만에 프랑스 파리 대표적 화랑거리인 생 재르망 데프레 센가 22번지에 있는 갤러리 발메(VALMAY) 전속작가로 활동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던 도중 90년대 초반 초대전 협의차 일시 귀국했다가 종로2가 지하철역을 지나면서 가수 김수희의 노래 '애모'를 들었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는 가사는 프랑스 샹송과는 다른 울림을 줬고, 가장 프렌치적인 그림을 그리던 그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붙들게 된 계기가 됐다.
자신을 프랑스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문학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그속에서 진달래 이미지가 떠올랐다. 특히 고향 부산의 장산에 피었던 진달래를 떠올렸다. 어머니와 함께 올랐던 마을 뒷동산에서 어머니는 "내 아들 잘돼라"며 연신 꽃잎을 뿌렸다. 그 진달래는 화려하면서 소박하기도 한 한국미를 가장 잘 간직한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김소월의 시처럼 우리민족의 한을 품기도 하면서 희망을 던져주기도 하는 등 한국미의 오묘함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여겼다.
2004년 귀국한 그는 보길도에서 설악산까지 진달래 길을 따라 여행하며 스케치를 한 다음 고운 이마포(삼베와 아사의 중간)위에 진달래 그림을 선보였다. 한국적인 그림은 세계인으로부터도 호응을 받았다. 2012년 10월 갤러리작 부스로 홍콩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쇼에 참가했을 당시 잡지 아트맵 표지를 장식하는가 하면 여러 매체에 소개되는 등 현재까지 홍콩 컬렉터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상징을 자신만의 색채로 형상화한다. 철쭉(중국),벚꽃(일본)과는 차별화된 한국의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진달래의 필요한 부분만 꺾고, 생략하고, 과장하는 과정을 거쳐서 작업한다.
먼저 아사천에 바탕색을 칠해 먼저 짙은 붉은색이 배어 나오게 한 다음에 여러 번 색깔을 덧입혀 조금씩 진달래 색깔이 드러나게 한다. 일곱 단계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작가가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다. "너무 진하게 그리면 철쭉이 되고, 옅으면 벚꽃이 돼버리기 때문에 진달래의 따뜻하면서도 품위 있는 색을 내기 위해 흰색, 검은색, 푸른색, 빨간색, 분홍색 5가지 색을 골고루 쓰면서 표현한다"는 설명이다.
김정수 작가는 "식민지, 전쟁, 민주화의 과정, 산업화까지, 어느 민족보다 시련과 고통을 많이 겪었다. 83년 도불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부끄러움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휴대폰, 자동차, 각종기업의 간판들을 본다. 불과 수 십년만에 이 조그만 나라가 기적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모두가 지독한 가부장위주의 나라에서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고 지독한 가난에서 해방시킨 것은 이 나라의 어머니들이다. 자식성공하고 집안 화목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떠한 고생도 이겨냈던 우리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조금이라도 가슴속에서 느껴보길 바란다"고 전시의 취지를 설명했다.
갤러리작 대표 권정화는 "올 3월까지 7차례 홍콩아트쇼에 참가하면서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다룬 진달래 작품이 유럽, 아시아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인간의 마음은 진실한 한 점의 그림 앞에 국적, 인종을 초월하고 공감한다는 점이 놀라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