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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키성장 거짓광고, 제품 만든 제약사는 자유로울까

제약사들만 쏙 빠진 처벌, 첫단추 어디서 잘못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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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유림기자 |  2016.02.23 08:44:12

▲공정위와 식약처에 허위·과대광고 혐의로 적발된 판매 업체들은 키성장 효과를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가 없음에도, 임상 실험 등 연구 결과 키성장 효과가 나타났다거나 키성장 효능 특허를 받았다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들을 기만했다. (사진제공=공정위·식약처)

공정거래위원회가 키성장 효과를 허위로 광고한 판매업체와 광고대행사들을 무더기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정작 해당 제품을 생산한 제약사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제약사들은 “과장광고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허위광고가 방송 등에 나가는 동안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의적 책임을 면키 힘든 상황이다. 제약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과장·확대돼 알려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속으로 즐긴 걸까? CNB가 내막을 취재했다. (CNB=김유림 기자)

광고·판매사만 ‘처벌’…제약사는 열외
제약사 브랜드 믿고 산 소비자 ‘부글’
시민단체 “법 개정해 사각지대 손봐야”

“결국 소비자를 기만한 것 아닙니까? 제약사에서 허위·과장 광고를 지시하거나 협의하지 않았지만,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데 근거가 됐던 부분은 제약사 브랜드 인지도가 큰 몫을 차지해요. 허위·과장 광고가 인터넷과 TV에서 쏟아지는 동안 제약사들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죠. 법률적인 근거가 없어 처벌 못한다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18일,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 15일 일반식품·운동기구 등이 어린이 키성장에 효능·효과가 있는 것처럼 거짓·과장 광고한 판매업체 8곳과 광고 대행사 2곳에 대해 제재 조치를 내렸다. 

공정위는 2014년부터 2015년 8월까지 판매된 제품에 한해서 허위·과장 광고 조사를 진행했으며,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제3조 제1항 제1호)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닥터메모리업·메시지코리아·에이치앤에이치는 위반 행위가 중대하고 관련 매출액 규모가 가장 커 총 6000만원의 과징금 부과가 결정됐으며, 나일랜드·마니키커·에스&에스·내일을·칼라엠앤씨는 시정·공표명령을 받았다.

폐업 등으로 보완조사가 필요한 디엔에이와 에스에스하이키는 업체와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연예인 동원해 ‘대국민 사기극’

이번 사건은 지난 2014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광고하는 키성장 식품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고발 조치 등 강력한 제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해 4월 거짓광고를 통해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린 업체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식약처는 디엔에이 대표 김모씨, 헬스코리아 대표 박모씨, 비볼코리아 대표 김모씨, 에스에이치에이치 업체 대표 윤모씨 등 11명을 ‘식품위생법 13조’ 또는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18조’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 적발된 업체의 허위·과대광고는 다양했다. 키성장 효과를 입증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상 실험 등 연구 결과 키성장 효과가 나타났다’ ‘키성장 효능 특허를 받았다’는 등 거짓으로 소비자를 속였다. 

심지어 제품 판매 촉진을 위해 ‘유명 연예인 자녀가 제품을 섭취한 결과 키가 컸다’는 체험기까지 내세웠다.

결국 자녀 키성장에 관심이 높은 부모들은 해당 제품이 어린이·청소년 성장 발육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제품을 샀다.

식약처의 형사고발 내용을 근거로 공정위가 이번에 이들 업체에게 과징금 부과 등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키성장 제품 허위·과대광고는 유명 제약사 이름으로 TV광고까지 방영됐다.(사진=방송화면캡처)

유명제약사 명찰 단 ‘거짓 제품들’

하지만 식약처와 공정위는 문제의 제품들을 생산한 제약사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적발된 업체가 판매한 키성장 제품은 ▲키클아이 ▲롱키원 ▲키즈앤지 ▲마니키커 ▲프리미엄키즈본·키플러스 ▲키움정 등으로 국내 유명제약사들이 만든 제품이다. 제품 포장 용기에는 큰 글씨로 유명 제약회사의 상호가 표시돼 있다.

제약사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

키성장 제품의 생산·유통단계는 제조원(중소기업)→판매원(유명제약회사)→총판업체→대리점→소비자다. 유명 제약회사는 명의만 빌려주고 제품 개발부터 제조·판촉은 모두 중소업체가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소비자들은 제조사와 판매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오로지 ‘제약사 브랜드’를 보고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비자 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키성장 제품 관련 피해상담 건수는 2013년 24건, 2014년 100건, 2015년 123건에 달했다. 장기 복용했는데도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거나, 운동기구를 이용하다 다치는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발생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CNB에 “소비자들이 거짓광고에 쉽게 속을 수 있었던 것은 제약사의 브랜드를 신뢰했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거짓광고가 쏟아지는 동안 제약사들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건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마저 방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사무총장은 “제약사들을 법률적인 근거가 없어 처벌하지 못한다면, 이런 상황이 계속 되풀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법적기준을 만들어 제약사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사무총장의 지적처럼 현행법으로는 제약사를 처벌하기 어렵다.

공정위 관계자는 CNB에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제약사들이 허위·과대광고에 관여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분을 내릴 수 없었다”며 “현행법상 지시·관여 정황이 발견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식약처 관계자도 “위해사범중앙조사단에서 제약사 측의 책임이 있는지 조사를 진행했지만, 거짓광고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한 업체들만 처벌하게 됐다”며 “정확한 근거 자료가 발견돼야 법적인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산하기관인 식약처는 “제약사들이 거짓광고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법적인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진=식약처 홍보영상 캡처)

제약사들만 쏙 빠진 처벌

제약사들은 하나 같이 “판매처에 허위광고를 지시하거나 관여한 적이 없고, 광고 중 일부가 허위였을 뿐, 제품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제품의 원래 효능·용도와 다르게 거짓광고를 한 것은 전적으로 판매업체 책임이라는 얘기다. 

제약사 A사는 “판매 업체는 이미 법적 조치를 취했고 제품 판매는 중단했다. 판매업체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라고 전했다. B사 또한 “우리는 허위·과대광고와 관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부 제약사들은 문제가 생기자 즉시 판매업체에 판매중단 조치를 취했다고 항변했다.

C사는 “이미 오랜 전 판매업체에게 허위·과대광고에 대한 이의제기 후 판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CNB 취재 결과, 판매중단 후 남은 물량은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판매된 것으로 확인됐다. C사는 “판매업체가 남은 물량을 어떻게 처분하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D사 또한 “2011년에 잠깐 판매하다 중단했다”고 밝혔지만 이 제품 역시 유명 포털사이트 블로그 및 육아카페 게시글을 통해 2014년까지 소비자들에게 광고 및 판매됐다.

판매업체의 과장광고로 되레 피해를 봤다는 제약사도 있었다. E사는 “공정위 제재 후 정상적인 제품이 아무런 효능이 없는 거짓 제품으로 오해받고 있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저희 제품은 건강기능식품협회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장발육을 위한 건강기능성식품으로 인정받았다. 식약처로부터 정상적으로 제조 허가를 취득한 것으로 제품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앞뒤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번 사태는 제약업계의 오랜 병폐를 전부 담고 있다.   
 
제조약·판매사·광고대행사 등이 얽혀 있는 유통과정의 문제점, 유명 제약사들이 판매사에 브랜드를 대여해주는 관행, 현행법으로는 거짓광고를 시행한 업체 외에는 처벌할 수 없다는 제도적 한계 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한마디로 자동차 판매대리점이 소비자에게 “이 차에는 하늘을 나는 기능이 있다”고 속여 팔더라도 자동차기업은 책임이 없다는 논리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현행법에는 방조죄가 존재한다. 제약사들은 판매업체와 광고대행사가 국민을 상대로 속이는 동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민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제약사라는 점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CNB=김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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