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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플러스〕쌍문동 치타 아줌마, 라미란은 고한으로 돌아갈까…올림픽 배후도시 재탄생

탄광개발로 번화가 된 화전촌, 고한…1988년 석탄산업합리화 사람 떠나고 강원랜드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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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유경석기자 |  2016.01.23 18:48:29

▲응팔 드라마 속에서 김선영에게 '곱게 미쳐야지' 핵직구를 날리는 라미란. (사진=tvN 캡쳐)

'시원시원하고 화끈한 여장부. 소심한 성균이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연하 남편을 살뜰하게 챙긴다. 남편의 정력에 집착해서, 집에는 몸에 좋다는 보양식이 넘쳐 난다. 호피 마니아, 치타 아줌마로 불리며 골목 아줌마들을 이끄는 리더이자 큰 형님 역'을 맡은 '응답하라 1988'의 라미란에 대한 캐릭터 소개다. 


1988년 당시 46세인 쌍문동 소식통인 치타 아줌마는 1943년 생으로, 2016년 현재 74세 할머니다. 라미란 여사는 한때 고향인 정선군 고한읍에서 금융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국졸인 라미란이 일했던 금융권은 어떤 곳이었을까. 미란 씨는 15살 때부터 일수꾼으로 활약했음을, 연하남인 성균 씨를 처음 본 순간의 황홀한 상황까지 친절하게 공개했다.


미란 씨가 15살 때라면 1957년이다. 꽃다운 열다섯 살 소녀가 일수꾼으로 일했던 고한읍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 이웃들을 잘 챙겨주는 미란 씨 부부가 어린 정봉이와 정환이를 데리고 서울 변두리 쌍문동으로 이사를 간 이유는 왜일까?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니'던 탄광촌, 고한읍

▲응팔 정환이네 가족의 외식장면. (사진=tvN 캡쳐)


미란 씨가 소녀 시절 금융권에 종사했던 고한은 정선군 동면지역이다. 동면은 상리와 중리, 하리로 나뉜다. 이중 고한은 상리에 속했다. 미란 씨가 탄생한 1943년 당시 상리는 200여 호가 살던 화전민촌이었다. 주로 임산물을 채취로 생활했다. 현재도 불탄 나무기둥과 석축, 집터와 조그만 텃밭 등 화전민 부락의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강원랜드 스키장과 골프장이 개발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고한의 변화는 탄광마을로 개발되면서부터다. 물론 조선시대 주요 사금(砂金) 산출지였던 점을 미뤄볼 때 인구의 증가는 이때부터 비롯됐을 가능성도 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국영기업인 대한석탄공사뿐만 아니라 민영탄광 개발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고한은 1960년을 전후해 탄광촌이 형성되면서 급속하게 성장했다. 소년 미란이 일수꾼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당시 탄광촌을 중심으로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만큼 돈이 잘 돌았다. 이러한 성장 속에 1980년 초 고한읍 인구는 3만 2000명이 넘었다. 라미란이 출생한 1943년 당시 900여 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36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성장 속에 1985년 고한읍으로 승격했고, 지서와 소방대, 읍사무소, 우체국, 전신전화국, 강원은행이 들어서는 등 행정기능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탄광촌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8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낳은 정환이네 쌍문동 이야기

▲정선 삼탄 아트마인. (사진=삼탄 아트마인 캡쳐)


도내에서 석탄이 본격적으로 채굴된 것은 1900년경부터다. 당시 외국자본과 기술이 들어와 석탄과 흑연 등을 채굴했다. 석탄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이보다 훨씬 앞선 609년 신라 진평왕 때부터다. 당시 땅이 불에 탔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또 1180년 고려 명종 때 땅이 타면서 연기와 그을음이 그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노천 석탄에 불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1948년 86만 9203톤이던 연간 석탄생산량은 1960년 535만톤으로 증가했고, 1965년 1000만톤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석탄의 생산과 수요의 급격한 팽창은 탄질의 저하를 초래했고, 원탄과 가공 제품 간 조정 등 합리적인 수급 조정을 필요로 하게 됐다. 여기에 유류 사용 증가에 따라 석탄 수요는 줄었고, 정부는 1987년 석탄산업합리화 대책을 수립하게 됐다.


1988년 정부는 개발 한계 탄광을 통폐합하는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발표됐다. 폐광은 곧 일자리가 없어지고, 지역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폐광지역 주민들의 생존권 투쟁은 이어졌고, 정부는 1995년 12월 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을 제정했다. 주민들이 떠난 후 남은 것은 2000년 10월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를 둔 (주)강원랜드였다. 


미란 씨네 가족이 고한을 떠나 서울 쌍문동으로 이사를 간 것은, 1971년생인 정환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1970년대 중반으로 짐작된다. 고한에 함께 살던 이웃들보다 10년 전쯤 이사를 한 것이다. 어쩌면 이사를 간 것이라기보다는 밀려난 것일 수도 있겠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게 변변찮은 정환이네 가족은 흥청거리는 탄광촌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고, 그래서 서울 변두리 쌍문동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을까. 옆집이 식구고 가족인 쌍문동 미란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고, 개발에 밀려 또다시 쌍문동을 등지게 됐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배후 관광지 된 고한읍, 미란 씨는 돌아갈까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비전. (사진=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미란 씨의 고향인 고한읍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배후 관광지로 개발된다. 정부는 정선군을 비롯해 태백시, 삼척시, 영월군 도내 폐광지역의 자연자원과 석탄산업 유산을 관광 자원화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폐광지역의 관광 자원화 사업을 추진한다.


이미 정선의 삼탄 아트벨리를 비롯해 태백의 광산 역사 체험촌, 영월의 마차 탄광 문화촌 등 7개 사업은 완료됐다. 미란 씨가 일수꾼으로 일했던 고한읍의 삼탄광산촌은 3000여 명의 광부들이 석탄을 채굴하던 곳으로, 1964년부터 38년간 운영해오다 2001년 10월 폐광돼 방치돼왔다.


정부는 삼척탄좌 시설을 창조적인 문화예술단지로 되살리는 폐광지역 복원 사업계획을 실시, 150개국에서 수집한 10만 여점이 넘는 예술품과 선진적인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미란 씨의 고향인 고한읍은 다시 한 번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가 앞장서 올림픽 배후 관광도시로 육성하기 때문이다. 2018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 주변과 폐광지역의 관광자원을 활용한 통합과 연계 관광활성화를 통해 도민에게 소득이 돌아갈 수 있는 관광도시로 육성된다.


올해로 74세가 된 '응답하라 1988' 라미란. 소녀 시절은 광산촌 정선군 고한에서, 중년은 서울 변두리 쌍문동에서, 노년은 다시 고향에서 보내게 되지 않을까. 옆집이 식구고 가족인 라미란의 삶은 강원도, 그 자체인 까닭이다.


'강원도 출신으로 평소에는 서울말을 쓰다가, 흥분하면 어김없이 강원도 사투리가 나온다'는 캐릭터 소개처럼, 2018평창동계올림픽은 라미란을 흥분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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