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대학교(총장 송수건) 출판부는 제43차 문화총서로 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문명화의 의례와 권력의 공간'이란 책을 번역·출간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책의 저자인 캐롤 던컨은 유명한 미술가로서 뉴저지 라마포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쳤고, 현재는 이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그녀는 미술사와 미술평론에 대한 사회정치적 접근방법을 제안한 선구적 이론가 중의 한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김용규 교수는 현재 부산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문화연구, 비평이론, 도시문화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미술관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미술관은 어떤 주체를 구성하는가?" 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문명화의 의례와 권력의 공간'은 미술관 자체가 미술작품과 관람자의 관계를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임을 드러낸다. 이 책은 1996년 출판 이후 7쇄를 거듭할 정도로 미술사 및 미술관학에 대한 탁월한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미술관을 사회정치적 맥락에 두고 그 탄생을 설명하는 기존의 사회적 접근방법과 달리, 미술관 공간과 정치권력 간의 상호적 구성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또한 공공미술관의 조직 자체가 해당 사회의 지배권력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음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권력과 공간 간의, 그리고 정치와 문화형식의 역사 간의 교차점을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장으로 규정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째, 이 책은 공공미술관을 의례와 환상에 근거한 권력의 공간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세속적 근대문화가 의례와 전통을 제거해버렸다는 식의 계몽적 주장을 반박하면서 근대 사회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거의 신성한 의례와 습속들을 끊임없이 이용해왔다고 말한다.
그 결정적 공간 중의 하나가 공공미술관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일상생활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고 마치 사원과 같은 신성한 성역으로 들어가는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미술관은 이러한 체험을 통해 관람자를 세속적 일상과 단절된 독특한 환상 공간 속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그들을 권력이 원하는 새로운 주체로 구성하는 독특한 경험의 장이 된다.
둘째, 공공미술관은 절대왕정의 군주 및 귀족세력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근대 부르주아가 자신들 주도의 근대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합법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례와 권력의 공간으로서 건립됐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이런 일반적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 주장이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공공미술관이 정치권력의 배치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는 독특한 방식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 세 나라에서 근대 부르주아지의 형성과정에 따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공공미술관의 운명이 달라졌다고 한다. 즉 절대왕정의 권력을 뒤엎고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 왕과 귀족을 타도할 힘은 없으면서 그들에 대한 견제와 타협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점진적으로 구축해야 했던 영국 부르주아 계급, 그리고 아예 타도할 절대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절대권력이 되고자 했던 미국 부르주아 계급처럼 근대 국가의 형성과 그 내부에 존재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지형은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공공미술관의 탄생을 독특한 방식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셋째, 공공미술관의 의례 내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 책은 현대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공공미술관의 의례공간과 그 내용에 주목하면서 이 공간이 어떤 젠더화된 주체를 구성하고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현대미술관이 소비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여성의 육체를 소비하고 있으며, 현실로부터 추상화된 고립된 남성적 자아를 위한 젠더화된 공간이 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현대미술관은 여성과 남성을 젠더화하는 공간, 여성 육체에 대한 남성적 욕망이 연기되는 공간, 그리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남성 관람자의 태도와 여성적 육체에 대한 그의 강박적 욕망이 펼쳐지는 공간임이 드러난다.
'미술관이라는 환상'은 미술관에 대한 일종의 문화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미술관이 일종의 환상적 의례 공간임을 드러내는 한편 바로 이 환상을 비집어 열어 미술관이 해당 사회의 권력에 의해 구성되고, 그 내부에 있는 관람자를 특정한 민족적, 성적, 인종적 주체로 호명하는 의례 공간임을 보여준다.
(CNB=최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