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을 열어보니 복합점포에서의 보험가입 실적은 ‘찻잔 속 태풍’ 수준. 하지만 향후 본격 시행될 경우 보험설계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국정감사 이후 보험사 입점을 막는 법안을 심의할 예정이라 복합점포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CNB=이성호 기자)
농협·하나금융 복합점포 실적 고작 7건
보험協 “시범 기간이라 몸 사린 결과”
본격 시행되면 40만 설계사 생존 위협
김을동·신학용, 복합점포 반대법안 발의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보험사의 복합점포 입점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은행과 증권이 결합된 기존의 복합점포에 보험까지 추가 허용키로 한 것. 단, 금융지주사별로 3개 이내로 2017년 6월까지 시범적으로 운영한 뒤 이후 제도 확대 여부 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NH농협금융지주의 ‘광화문NH농협금융PLUS+센터’에 NH농협생명(직원 2명 상주), 하나금융지주 ‘압구정PB센터’에 하나생명(직원 1명)이 각각 입점했다.
출입문 및 상담공간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보험 판매채널이 개설됐지만 아직까지 신(新)계약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이다.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실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복합점포에서의 보험가입 실적은 농협생명 6건, 하나생명 1건에 불과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CNB에 “농협금융과 하나금융에서 보험을 포함한 복합점포를 운영하고 있지만 제약이 많다”며 “공간만 한 곳에 마련돼 있을 뿐 상주한 보험사 직원이 찾아온 고객들에게 가입 권유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점포 내 별도로 마련된 보험 창구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만 영업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 금융위는 시범기간 동안 복합점포 내에서 보험 직원 등이 보험상품을 모집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는 “능동적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해줘야 한다”며 “말 그대로 시범실시 한 만큼 앞으로 본격 시행에 대비해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저축성 보험은 한번 상담으로 가입할 수 있지만, 종신·보장성 보험의 경우 한 번 만에 가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니즈(Needs)를 환기시키는 1차 상담을 마친 후 맞춤형 상품을 준비해 2차 면담을 잡아야 하는데 찾아가는 아웃바인드 영업을 할 수 없게 해 놨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실컷 고객에게 상담을 하고 이후 적합한 상품을 준비해 놓더라도 이 고객이 안 오면 더 이상의 프로세스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보험은 이른바 찾아가는 푸시형 상품으로 고객들이 점포를 찾아가 보험을 가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복합점포에서의 판매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현재는 각 영역의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는 시기”라며 “고객 방문 시 일단 재정적인 상황을 파악한 후, 은행·증권·보험 상품을 믹스해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짜놓고 재방문을 유도, 소비자에게 이를 제공해 계약을 이끌어내는 형태로 발전될 순 있다”고 내다봤다.
보험설계사 8만명 반대 서명
이처럼 복합점포의 실적이 저조한 상태임에도 보험사 입점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은행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지주가 주체이다 보니 농협·하나·신한·KB손해보험 등 은행계 보험사만 유리한 고지에 서고, 삼성·한화·교보생명과 현대해상·동부화재 등 비은행계 보험사들이 불리해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복합점포를 찾은 고객에게 해당 보험사 소속 별도의 설계사를 소개해 점포 밖에서 상품판매를 알선하는 등 은행에서 보험을 팔 때 한 보험사의 상품 비중을 25% 이상 넘지 못하게 규제하는 ‘방카슈랑스 룰’을 위반할 수도 있다는 것.
불완전판매나 대출할 때 보험상품을 끼워서 파는 이른 바 ‘꺽기’도 염려되고 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CNB에 “보험업이 포화상태라 어떻게든 판매채널을 늘리려는 방편으로 보이는데, 은행업무를 취급하면서 ‘꺾기’로 우회해 보험을 가입시키는 등 편법적으로 수익모델을 창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4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보험설계사들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현재처럼 복합점포의 실적이 미약할 경우, 설계사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그렇지 만도 않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 측은 시범운영을 통해서는 보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시범기간이 끝나고 정식으로 도입될 경우 문제가 발생된다는 시각이다.
보험대리점협회 관계자는 CNB에 “시범운영이다 보니 자칫 유탄을 맞을까 금융지주에서 강하게 영업을 안 하고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다”며 “불완전판매 등이 나타나게 되면 아예 판을 접어야 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실적이 저조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시범기간이 끝나면 그동안 무탈했으니 자유롭게 영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할 것임이 자명하다”고 전제한 뒤 “정식 허용될 경우 은행 조직문화 자체가 목표 지향적으로,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합점포가 활성화되면 설계사들의 소득 감소는 물론 일자리 축소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보험대리점협회에서는 전체 설계사들의 반대서명을 진행했다.
협회 관계자는 “서명운동 결과 약 8만건이 모아졌고 이후 필요시 서명을 더 받을 것”이라며 “국회에서 복합점포와 관련한 법안 논의가 시작되면 이 같은 설계사들의 반대 의견을 제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감 이후 보험입점 차단법안 논의
논란이 커지자 지난 7월 국회는 복합점포 내 보험사 입점을 막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 2건을 발의했다.
정무위원회 소속 신학용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개정안은 ‘보험회사 등은 출입문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등 보험을 모집하는 장소와 다른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용역을 취급하는 장소가 분리되지 않은 점포에서 모집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같은 정무위 소속 김을동 의원(새누리당)의 안은 ‘보험회사는 다른 금융기관과 본점, 지점, 영업소 등 사무공간의 출입문을 공동으로 이용하거나, 벽으로 명확히 차단하지 아니한 채 공동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호주의 경우 1990년대 방카슈랑스를 적극 허용한 결과, 은행계열 보험회사가 보험업계를 장악했다. 현재 상위 5개 보험사 중 4개사가 은행계열이다. 전속설계사 규모는 1만 4000명에서 4500명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김 의원은 “설계사들의 생계를 위협해 은행계 보험사들만 배불리는 꼴이 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은행에서 보험 업무를 다 해버리면 기존에 보험업을 해오던 분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정무위에서 법안 심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학용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법안이 상임위에 회부돼 있는 상태로 심의 여부는 정해지지 않아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여·야 의원이 각각 복합점포에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으로 향후 법안 처리과정이 예의 주시되고 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