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석기자 | 2015.09.17 21:37:46
높고 푸른 가을하늘이 아름다운 17일 오후 한림성심대학교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활기찬 대학생들의 맑고 힘찬 목소리가 부끄러운 듯 하늘마저 구름으로 얼굴을 가리곤 했다. 축제를 총괄하는 이유진 한림성심대 총학생회장(사진. 23)은 말 그대로 동분서주. 메타세콰이어 아래 놓인 벤치가 그나마 휴식을 선물했고, 인터뷰는 진행됐다.
"나무가 참 좋아요. 해마다 새잎을 내고, 향기도 좋잖아요. 제 이름의 뜻이 '푸른 나뭇가지'예요. 누군가를 도와주라는 의미죠. 아름답게 살고 싶어요. 간호사가 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죠. 좋은 영향력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이유지 한림성심대 총학생회장은 '좋은 영향력을 퍼뜨리는 사람'이 목표다. 총학생회장을 한 것도 이 때문. 그도 재수 끝에 일궈낸 결과다. 지난해 총학생회장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지만, 꼭 이뤄야할 일이 있었기에 다시 도전, 당선됐다.
"재수까지 해서 총학생회장이 된 이유요? 학교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주변환경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총학생회 모토가 'Soulmate'예요. 좋은 친구,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는 사람이죠. 억지로 참여하는 건 낭비예요. 변하는 걸 스스로 느껴야 하거든요. '우리 같이 하자. 그러면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어'.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제 별명이 뭔지 아세요? '총장딸'이예요."
이유지 회장의 '누릴 게 많은' 학교생활은 다양한 교내외 활동과 이를 통한 수상내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1학년 당시 간호학과 학생회 학술차장과 기획부장, 홍보국장으로 활동했다. 이듬해인 2학년 때 총학생회 복지국장을, 3학년 때는 관리국장을, 4학년인 현재 총학생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패배했던 3학년 때 당시 총학생회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홍보·섭외·사무·총무 등 8개국을 총괄하는 관리국장으로 활동했다.
교내 활동은 미미한 수준. 교외활동은 더 화려하다. 보건복지부 금연서포터즈 강원 팀장, 한국장학재단 장학앰배서더 강원, 현대그룹 글로벌 청년봉사단, 강원도문화도민협의회 문화도민 서포터즈 강원도 대표, 중앙치매센터 대학생 치매파트너, 보건복지부와 강원도정신건강센터 수호천사 등 봉사시간만 200시간을 넘는다.
교내외 수상내역은 A4용지 한 장을 빼곡이 채운다. 교내 주최 PPT 공모전 및 프레젠테이션 최우수상, 강원도문화도민운동협의회 주최 문화도민 댄스 UCC 공모전 장려상, 한국장학재단 주최 대학생 홍보대사 우수상, 보건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 주최 인공임신중절예방 생명사랑 서포터즈 6기 최우수 보건복지부장관상, 강원도광역치매센터 주최 강원도 치매사업 발전대회 우수사례상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한림성심대학교의 환경이 너무 좋아요. 마치 저를 위한 곳 같거든요. 스스로 '개천에서 용 났다'고 생각하죠. 사실 지방.사립.전문대학교 잖아요. 대외적으로만 보면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니죠. 하지만 학교재단이 튼튼하고, 교수님들과 교직원들이 학교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요. 올해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강원도 전문대학 중에서는 유일하게 최우수 등급인 'A'를 받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유지 총학생회장의 또렷한 삶 뒤에는 어둡고 길었던 방황의 시간들이 있었다. 남부럽지 않던 가정사정은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밑바닥으로 추락했고, 부모는 이혼했다. 새엄마가 생겼고, 욕설과 폭행은 일상이 됐다. 10대 초반의 일이었다. 어쩌면 방황은 예고된 결과였다. 중학교 2학년 말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어둡고 험한 방황의 터널을 맨몸으로 걸었다. 가출을 했고, 담배를 피웠다. 술을 마시는 것은 멋진 삶의 표현이었다. 폭행과 금품갈취 등 시쳇말로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하는' 일진이 됐다.
"삶의 돌파구였어요. 도망가고 싶었거든요. '내가 이런 건 다 아빠와 엄마 때문이야' 하는 식으로 남탓을 많이 했어요. 학교 주변에서 돈을 뺏었어요.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죠. 결국 가출을 하고, 자퇴를 했죠."
학교 밖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다. 궂은 일은 도맡아했지만 받는 돈은 턱없이 적었다. 맨손으로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는 것은 예사였다. 신분이 없다는 초조함 못지않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져갔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로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학교가 더 나은 삶을 열어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한 거죠. 학교로 다시 갈 때 제가 결심한 게 뭔지 아세요? '성실하게 살자'였어요. 그간 성실하게 살지 못했으니까 그것만이라도 고쳐보자는 생각이었죠."
학교로 다시 돌아왔을 때 야간자율학습을 자청했다. 수업 시간에는 꼼꼼하게 노트 필기를 했다. 그리고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밑바닥이던 성적이 전교 30등까지 치솟은 것이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집과 학교, 도서관을 오가는 생활이 이어졌고, 평균 1.6등급으로 졸업을 했다.
"공부는 나를 완성해주는 어떤 것이죠. 고3 때 진로결정을 위해 적성검사, 선호도검사를 했는데, 간호사로 나왔어요. 취업도 잘 되고, 성격도 잘 맞아 선택했죠.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돕는 길이라 생각했죠. 제가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이유지 총학생회장은 사회복지분야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중국 항주 등을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매해 겨울방학은 해외에서 보냈다. 모두 학교를 통해서다. 2013년 1월 5주간 호주를 다녀왔고, 2014년 1월 12박 13일 일정으로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올해 1월에는 9일간 의료선진국인 싱가폴의 병원과 시설 등을 둘러보고 왔다. 인도를 방문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건과 사회복지, 의료, 간호서비스 등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고, 국제기구에서 봉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
"영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삶의 질 개선과 청결한 환경, 교육을 받지 못해 가난과 질병이 대물림되는 현장을 보게 됐어요. 간호도 복지라고 생각해요. 병원 내는 물론 병원 밖 사람들의 아픔도 포괄적으로 해결해야죠. 사회복지분야를 더 공부해서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고 싶어요."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지 총학생회장도 가끔씩 노래방이나 영화관, 도서관에서 '혼자 노는' 시간을 보낸다. '성장'을 행복한 삶의 기본요소 중 하나로 여기는 탓에 자기계발을 촉발할 수 있고, 취미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옆자리'를 비워둔 셈이다.
"애인이요? 아직 없어요. 하지만 올 겨울을 넘기지 않을 것 같은데요?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을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