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은행·증권·보험 복합점포를 2017년 6월까지 시범운영한다고 밝혔다. (사진=CNB포토뱅크)
은행·증권 서비스를 한 장소에서 받을 수 있는 복합점포를 보험업종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놓고 보험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은행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금융지주에 속한 보험사들만 혜택을 입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지난 3일 ‘시범운영 후 확대 검토’ 방침을 밝혔다.
40만 보험설계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어 정치권도 대책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보험사의 복합점포 입점 논란을 들여다봤다. (CNB=이성호 기자)
소비자선택권 or 설계사생존권 ‘충돌’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 상대적 유리
국회 ‘복합점포 원천봉쇄’ 법안 착수
금융위는 지난해 10월 은행과 증권의 칸막이를 제거해 출입문과 상담공간을 공동 이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복합점포 도입 관련 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신한금융지주 27개, 하나금융 3개, KB금융 2개, 농협금융 4개, BNK금융 1개, 기업은행 4개, 우리은행 3개 등 총 44개의 복합점포가 생겨났다.
올해 3월 금융위는 추가로 ‘금융개혁 방향 및 추진전략’을 내놓으면서 복합점포를 보험사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이후 수개월간 실태조사를 벌인 끝에 지난 3일 보험사 지점의 복합점포 입점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위는 먼저 금융지주사별로 3개 이내의 복합점포를 시범운영(2015년 8월~2017년 6월)하고, 2017년 하반기에 복합점포 운영현황 등을 점검한 이후 제도 확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보험업계에서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신한생명, KB손해보험, 농협생명, 하나생명 등 은행계 보험사들은 유리한 반면 삼성·한화·교보생명 및 현대해상·동부화재 등 비은행계 보험사들은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재 은행 창구에서는 보험사와 제휴해 보험상품도 함께 판매할 수 있는 방카슈랑스 서비스가 이미 제공되고 있다. 은행에서 팔고 있는 방카슈랑스는 연금과 저축보험 등에 한정돼 있는데, 복합점포에 보험사가 입점하면 자동차·실손의료·종신보험 등 보험 전반에 대한 영업이 이뤄진다.
복합점포에 보험사가 들어온다고 해서 방카슈랑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복합점포 보험사에서 상담을 받아 자동차보험을 구입하고 은행 창구에서 방카슈랑스로 다른 보험사 연금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를 계열사나 자회사로 둔 KB금융, 하나금융, 신한금융, NH농협금융 등 금융지주사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은행 지점에 복합점포를 만들고 계열 보험사와 증권사를 우선 입점 시켜 은행·증권·보험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게 되면 단연 경쟁력에서 앞서게 된다.
따라서 비은행계 보험사 입장에서는 복합점포가 달가울 리 없다.
특히 업계에 따르면 은행에서 보험을 판매할 때 한 회사의 상품 비중을 25% 이상 넘지 못하게 규제하는 ‘방카슈랑스(Bankasurance) 룰’을 위반할 소지도 다분히 있어 보인다. 복합점포를 찾은 고객에게 보험사 소속 별도의 설계사를 소개, 점포 외부에서 상품판매를 꾀하는 등 방카 규제를 우회할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에 금융위에서는 시범기간 동안 이 같은 편법행위에 대해 중점적으로 상시 점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는 복합점포 내 보험사 입점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자료=보험대리점협회)
보험대리점協 “40만 설계사 생존 위협”
복합점포를 둘러싸고 은행계·비은행계 보험사 간 유불리가 얽혀 있는 가운데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들은 보험설계사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는 “공정한 경쟁의 룰을 지키기 위한 방카슈랑스 규제 취지를 훼손함은 물론 은행의 우월적 지위를 활용한 불완전 판매(구속성 계약, 경유 처리 등)와 이로 인한 소비자 피해, 설계사들의 소득 감소와 일자리 축소 등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보험대리점협회 관계자는 CNB에 “은행이란 조직은 목표달성에 대한 마인드가 강해 복합점포 입점 보험사에게 표면적으로 실적을 요구할 순 없지만, 내부적 네트워크를 통해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시범운영 기간이 끝난 뒤 복합점포제도가 확대되면 (보험설계사) 생존권 위협 등 문제의 소지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전체 설계사들을 대상으로 반대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도 대책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을동 의원(새누리당)은 “상당수가 여성들인 보험설계사들이 수십 년간 보험시장을 견인해 왔다”며 “복합점포에 보험을 포함하는 것은 이들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조만간 관련 법안을 준비해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하위법령에 산재돼 있는 복합점포 운용에 관한 부문을 모법으로 끌어올리고 현 방카 규정을 그대로 지키도록 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수일 내에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지만 우선 서민들의 대표적인 일자리를 빼앗지 않도록 은행 창구와 마찬가지로 종신보험 등 보장성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각종 부작용을 차단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은행에서는 방카슈랑스를 통해서 연간 1조400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거두고 있다. 즉 현재에도 설계사 1인당 연간 약 250만원의 소득 감소를 가져오고 있는 셈인데 무리한 복합점포 확대 정책으로 인해 설계사의 고용이 불안해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다.
김상민 의원(새누리당)도 최근 복합점포가 전국 40만 보험설계사들의 판매채널 붕괴 및 대량실업을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복합점포에 반대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복합점포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각이 국회에서 감지되고 있다. (사진=국회)
신학용·김을동 의원, 금융위에 제동
아예 법률정비를 통해 복합점포를 막자는 움직임도 있다. 신학용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3일 국회에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보험회사는 출입문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등 보험을 모집하는 장소와 다른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용역을 취급하는 장소가 분리되지 않은 점포에서 모집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했다. 복합점포에 보험사 입점을 아예 차단한 것이다.
이 법에는 이찬열·안규백·김을동·민병두·윤관석·이상직·박남춘·이학영·이개호·이종걸·한명숙·양승조·김현 의원 등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신학용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여야 합의를 거쳐 내달 임시국회나 9월부터 시작하는 정기국회에서 법안 심사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 같은 우려와 관련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에서 “은행·증권·보험 지점이 서로 벽을 허물고 같이 근무를 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이 창구 저 창구 가서 자기가 원하는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 않느냐, 이게 복합점포의 기본적인 취지”라고 밝혔다. 소비자편익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임 위원장은 “3개 기관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장소·인원 문제 등이 있어 마구잡이로 복합점포를 내기가 용이하지는 않다”며 “주로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것을 마치 방카슈랑스의 큰 틀을 바꿔서 설계사의 지위까지 위험하게 한다? 이것은 결코 아니며 그럴 의도도 없다”고 단언했다.
아울러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의견을 들어가면서 방안을 합리적으로 강구하겠다”고 도입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바 있다.
은행 간 유·불리가 얽힌 데다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냐, 설계사들의 생존권 우선이냐를 두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부딪혀 ‘은행 점포 보험사 입점’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감자를 손에 쥔 정치권이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