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보증 지방채를 발행해 지원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한 달 여간 계속된 누리과정 예산 지원 논란은 일단락됐다. 다만 도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예산은 정부 책임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어 내년 지방채 발행 여부를 지켜봐야 해 논란의 불씨는 여전한 상황이다.
강원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둘러싼 논란의 주요 내용과 남은 과제를 살펴본다.
◇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누리과정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보육기관에 다니는 만 3~5살 영유아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교육과정이다. 정부는 유보통합을 목표로 교육기관으로 분류돼 교육부가 관할하던 영아교육시설인 유치원과,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돼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던 보육서비스인 어린이집을 통합해 일원화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교육·보육이 일정하게 제공되도록 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논란의 불씨가 촉발됐다.
현재 해당 보육기관에 아동 한 명당 매달 22만원의 보육비를 지원한다. 현 정부는 대선 당시 10대 복지공약의 하나로 '0~5살 보육 및 교육 국가완전책임'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과 함께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정부 부처간 다툼은 시작됐다. 교육부가 기획재정부에 올해 누리과정 사업 국고지원예산 2조2000억원을 요구했으나 기재부는 내국세 수입 감소를 이유로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3년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결손액 2조7000억원을 갚을 것을 요구했다. 촘촘한 재원조달 방안을 고려하지 않은 무상복지 대선공약이 정부 부처간, 행정기관 간, 행정과 학부모 간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 도내 상황은
강원도교육청이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사업에 지원해야 할 예산은 모두 666억원이다. 이중 정부의 국고지원금 예상금액 176억원을 1~3월분 예산으로 본 예산에 편성했으나, 소진됐다. 이에 따라 당장 4월분 운영비 13억원과 보육료 40억원 총 53억원이 부족하게 됐고, 도내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 학부모 등의 반발이 일었다. 보조교사 인건비, 교재비, 간식비 등에 쓰이는 운영비는 도가 도교육청으로부터 받아 18개 시군으로 내려보내면 시군은 어린이집에 지급한다. 원아 1인당 보육료 22만원은 학부모에게 전달된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지난해 말 지방재정법 개정안 처리와 목적예비비 5064억의 집행을 2월 임시회에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도교육청은 이에 따라 교육예산을 끌어다가 보육예산 3개월분을 세워 집행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지난 4월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 중단됐다. 강원도와 전북에서 논란이 일자 여야 정치권은 4월 임시국회에서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처리했고, 정부는 목적예비비 5064억원 집행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도교육청은 목적예비비 5064억원 중 도 지원예상액 228억원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고 나머지 367억원은 지방채를 발행해 도에 전출키로 했다.
현재 도내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 대상 유치원은 385곳으로 1만 7401명이 재원 중이고, 어린이집은 1254곳에 1만 9133명이 보육서비스를 받고 있다.
◇ 누리과정 예산 지원은
강원도교육청가 제245회 강원도의회 임시회에 제출한 2015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돼 있지 않다. 하지만 6일 도교육청이 지방채 발행을 통해 예산을 지원키로 한 만큼 임시회 기간 중 수정예산안을 제출하면 된다.
다만 선지급된 4월분 어린이집 보육료 40억원을 도가 이미 확보한 어린이집 관련 예산으로 선집행하고 이후 도교육청이 전출하면 된다. 이 방식은 도가 이미 도교육청에 제안한 것이어서 이를 위한 협의나 행정적인 절차는 생략될 수 있다.
◇ 지방채 발행의 문제는
6일 지방재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전국 시도교육청은 만 3∼5세 대상 무상보육을 시행하기 위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위해 지방채를 최대 1조원까지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정부 측 요구로 여야가 합의했던 1조2000억원 가운데 2000억원이 감소한 액수다. 누리과정 사업의 시급성을 고려해 공포한 날부터 즉시 시행토록 했다. 보통의 경우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지방채 발행은 2017년 12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현 정부 임기까지다. 이번 개정안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어서 임시방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상향되지 않을 경우 지방채 발행에 따른 빚을 떠안게 된다. 현재 도교육청은 교육부로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받아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교부금 상향 등 추가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도교육청이 2017년까지 2000억원에 달하는 빚을 떠안게 돼 지역 교육기반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
◇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이 어떻길래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누리과정 예산을 위해 정부보증 지방채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행법상 무상보육의 법적 책임은 정부에 있고 박근혜 정부의 10대 복지정책 중 하나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는 교육기본법과 유아교육법이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는 유치원으로 한정하고 있는, 관련법상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모법과 달리 동법 시행령은 영유아보육법에 따른 어린이집을 포함시키고 있어 유아교육법의 소관범위를 벗어났다.
이와 함께 영유아보육법은 무상보육 실시에 소요되는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거나 보조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시행령은 보통교부금으로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상위법률과 상치되고 있다. 물론 시도교육청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으나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교육학예에 관한 사항만을 교육감이 관장토록 하고 있어 이와도 배치된다.
이처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교육기관 지원 재원을 시행령에서 보육기관인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명시한 것은 상위법과 충돌하는 만큼 누리과정의 안정적 재원 확보를 위한 법령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
강원도교육청이 그간 누리과정 예산지원과 관련해 "누리과정과 관련한 혼란은 예산의 문제라기 보다 무상보육의 법적 책임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음에도 예산을 교육경비로 부담하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제23조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 과제는
강원도교육청이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채를 발행해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내년 예산까지 지방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해결할는지는 미지수다. 만약 내년 예산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지 않을 경우 예산 부족사태는 재발되고 예산 편성을 두고 도교육청과 도의회, 도내 어린이집과 학부모 간 논란은 재연될 수 있다.
민병희 도교육감은 여전히 누리과정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 정부의 대선공약으로 비롯된 교육복지인 만큼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이 앞장선 가운데 여야 정치권이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만 한다.
강원도교육청이 도내 정치권과 관련단체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도 관심사다. 도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지원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지방교육재정의 건전성을 목표로 관련 법령 개정을 계속 요구할 계획을 밝힌 만큼 이를 위한 지원과 협력은 성패를 결정하는 전제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교조 출신인 민병희 도교육감이 새누리당 소속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강원도의회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민병희 도교육감의 정치력은 강원도어린이집연합회와 학부모의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