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저축계좌 이체 간소화제도’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보험사·은행·증권사 간 고객 유치전이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사진자료=CNB포토뱅크)
보험사들이 정부 정책에 따라 울고 웃는 희비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결제계좌(지급결제) 허용 움직임에는 반색하면서도 연금저축 계좌이동제에 대해서는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양면의 동전을 접하고 있는 보험업계는 뒤숭숭하다. (CNB=이성호 기자)
보험사, 은행처럼 결제계좌 개설 가능
‘연금저축’ 보험사, 은행, 증권사 자유롭게 이동
금융계 지각변동…사활건 무한경쟁 시동
먼저 ‘굿 뉴스’는 결제계좌(지급결제) 허용이다. 이는 정부의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된 것으로 보험사가 업권의 벽을 허물고 은행과 비슷한 업무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게 골자다.
즉 고객들이 보험사 계좌를 통해 보험금은 물론 급여 이체, 공과금 납부, 자동이체, 카드대금 결제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조만간 지급결제 업무 허용 범위는 물론 방안 등을 마련하기 위해 해당 협회와 전문가들이 참여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관련 규정을 손볼 예정이다.
이 같은 제도 개선 움직임에 보험업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생명보험·손해보험사들이 은행에 연 1600억원 이상의 이체수수료를 내고 있는 가운데, 은행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고객과 거래하게 된다면 비용이 절감되며 더 다양한 혜택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 고객의 편의를 위하고 보험산업 측면에 있어서 유익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은행업계는 당연히 반대하고 있다. 은행의 핵심 업무인 수시입출금 계좌개설을 통한 수신기능을 건드리는 것으로 은행과 같은 규제를 받지 않고 은행업을 영위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와 동일업무 동일규제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대기업 집단이 계열사·협력업체의 자금을 보험사로 유치해 부실 계열사에 대한 편법지원이 가능하게 된다고 우려하며 도입 논의에 앞서 은행과 같이 진입·건전성 규제, 지급준비금 제도 등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밥그릇’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만큼 향후 추진과정이 주목된다.
▲연금저축시장의 전체 규모는 약 100조원으로 이중 보험사의 연금저축보험이 80% 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진자료=CNB포토뱅크)
100조원 규모 연금저축시장 ‘흔들’
이처럼 보험업계는 지급결제 허용에는 내심 기대가 크다. 하지만 정부의 ‘연금저축 갈아타기’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연금저축은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돌려받는 장기상품이다. 특히 연금저축 세액공제율도 5500만원 이하 연봉자에 한해 12%에서 15%로 인상돼 세(稅)테크로도 인기가 치솟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안에 ‘연금저축계좌 이체 간소화’를 시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현재 연금저축계좌를 타 금융기관으로 옮기려면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전하려는 금융회사에 찾아가 계좌를 트고 다시 원래 계좌가 있던 곳을 방문해 이전 신청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동통신사 번호이동제와 비슷한 성격으로, 고객이 자유롭게 보험사·은행·증권사 등 옮길 금융사만 찾아가면 그 자리에서 원스톱으로 손쉽게 계좌를 이전할 수 있게 된다.
조건 등을 따져보고 원하는 금융사에서 신규로 계좌를 열고 이체신청서를 작성하면, 기존 금융사의 의사확인 통화를 거쳐 이체가 진행되며 기존 계좌는 자동으로 해지되는 시스템이다.
보험업계 입장에서 보면 연금저축계좌 이체 간소화는 반가울리 없다. 타 금융권은 물론 업종 내에서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고객 쟁탈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연금저축시장의 전체 규모는 약 100조원이다.
이중 생보·손보사의 연금저축보험이 80조원으로 8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은행의 연금저축신탁 13조원, 증권사 등 연금저축펀드 7조원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연금저축 갈아타기가 쉬워지면서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겠지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보험업계는 아무래도 수성에 나서야하는 모양새다. 현재로서는 일단 변화의 조짐이 있는지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CNB에 “전 금융권에서 금리가 많이 인하됐기 때문에 계약자가 이전을 할 만큼 큰 메리트가 있을 가능성은 적다”며 “증권 쪽에서 유치에 적극적이긴 하지만 상품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점유율이 급격하게 변하진 않을 것”이라며 아직은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
보험과 은행에서는 원금을 보장해주지만 증권업계가 취급하는 연금저축펀드는 수익률에 따라 원금이 깎일 수 있다. 추이를 봐야겠지만 최저 금리 시대에 보험·은행보다 높은 수익률을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고객들이 증권사에 노크할 여지는 충분하기에 낙관할 순 없는 상황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고객들이 판단할 부문”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유치전에 휘말려 갈아타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접근은 위험하며, 장기적으로 볼 때 어떤 상품이 유리한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이런 부문을 고려해 본인의 몸에 맞는 것으로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