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의 퇴직자 창업 지원 1호점 마이알리노 김형건 사장. (사진=이성호 기자)
애정을 쏟고 일하던 직장이었지만 자의든 타의든 사표를 내고 나오면 회사와의 관계는 단절되기 마련이다.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 하지만 다니던 회사가 퇴직 후 제2의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주고, A부터 Z까지 실질적인 방법을 찾게 도와준다면 이보다 고마울 순 없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현대카드가 선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퇴직자들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CEO플랜’을 본격적으로 운영, 新은퇴문화를 제시한 것.
지난 6일 홍대 상권에 문을 연 이탈리안 레스토랑 ‘마이알리노’는 CEO플랜에 의해 탄생한 1호점이다. 돼지고기 쌈피자·라자냐 등이 주력 메뉴인 이곳의 사장은 현대카드 법인사업본부에서 근무했던 김형건(45)씨다. 전직 회사원에서 이제는 어엿한 한 가게의 주인으로 힘찬 첫발을 내딛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CNB=이성호 기자)
다니던 직장이 손 맞잡아줘 ‘순항’
창업·컨설팅·영업지원…前회사와 ‘한몸’
“최고의 피자가게 꿈꿔…1호점 부담도”
“맛있는 피자가게를 직접 차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현대카드를 다니며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김 사장에게 창업은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온 소망이었다.
“시골에서 살다가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 올라왔는데 이때 처음으로 피자를 먹어봤습니다. 너무 맛이 있어 이런 음식도 있구나 했더랬죠(웃음). 그래서 나중에 피자가게를 꼭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학교를 졸업 후 저도 별반 다를 것 없이 회사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현대카드에서 총 8년간 몸을 담았다. 세일즈에 흥미를 느껴 법인사업본부에 자원해 바쁘지만 재밌게 일하고 있다 보니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겼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현실적인 물음 앞에 다시 한 번 창업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장고 끝에 원래 하고 싶었던 피자가게를 해보자 생각을 굳히고 개인적으로 시장조사에 나섰다. 최신 트렌드를 알아보기 위해 주말을 이용해 유명하다는 피자집을 두루두루 찾아다녔고 현황이 어떤지 공부를 시작했다.
평일에는 회사 업무를 하고 주말에는 사업 준비를 하다 보니 육체적·정신적으로 한계에 봉착할 무렵, 희소식이 들려왔다.
“외부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에서 창업을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아냐고 물어보더군요. 일을 마치고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해 공지사항을 읽어보니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직원들의 창업을 지원해드립니다’라고 딱 한 줄이 써져 있더군요.”
즉시 해당부서에 노크를 했다. 이 부서는 주로 사회공헌을 담당하던 곳인데 회사 정책으로 ‘CEO플랜’을 하기 위한 룰세팅을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담당자를 만나 CEO플랜은 어떤 프로젝트이며, 사실 피자가게를 열어 성공하고 싶은데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 지 등을 꼬치꼬치 물어봤다. 설명을 들어보니 창업 상담과 교육은 물론 아이템과 입지 컨설팅, 오픈 컨설팅, 오픈 후 지원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해준다고 했다. “이거다”라고 무릎을 쳤다.
“회사 풍토상 진정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참가를 희망했고 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아예 CEO플랜 창업지원팀으로 발령을 받아 본격적인 지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회사에서 특별히 배려해 준 것이지요.”
▲마이알리노 매장 모습. (사진=이성호 기자)
“‘1호점’ 어깨 무거워…온 힘 쏟을 터”
주변 동료와 상사에게 꿈을 찾아 피자매장을 열 것이라고 말하니 걱정부터 했다. 회사에서 창업을 지원해 준다고 했지만 처음 시도하는 것으로,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왜? 검증되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되물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할 사업이었고, 때마침 회사 측에서 좋은 기회를 준다고 하니 열심히 해보겠다고 이해를 구했다. 인생을 걸고 하는 거니깐 정말 후회 없이 하겠다고 그들 앞에서 다짐했기에 지금은 같이 소주 한잔 기울이며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CEO플랜을 통해 처음 3개월간은 창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교육이 진행됐다. 특히 정말 사업가적인 사람이냐 아니면 자격증을 따고 나가야 하는 것인지, 또는 프랜차이즈를 해야 하는 것인지 면밀하게 분석을 해줬다.
이 같은 분류작업을 통해 이 사람은 도저히 창업과는 맞지 않는다하면 현업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2~3가지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오는 경우 회사 측과 검토·수정해 나가며 최우선을 가린다.
“회사 고위층이 배석한 사업계획보고 자리에서 창업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습니다. 홍대 근처에 피자를 주력으로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했더니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며 약속해줬습니다. 만약 제가 가게를 열기 전 마음이 바뀌면 언제라도 현 부서에 복귀해도 된다고 해 그 따스한 마음에 감동도 받았습니다.”
요리를 배우고 벤치마킹 등 창업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1월부터는 본격적인 실행작업에 나섰다. 홍대 근처 가게 후보지 50군데를 회사 지원팀에 보여주고 최종 가게 터를 잡았다.
회사에서는 그 건물에 혹시 하자가 없는지와 인테리어 공사 시 미진한 부문 등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문까지 꼼꼼히 점검해줬고 간판, 메뉴판, 고객 이벤트 등 소소한 것 하나까지 직접 관여했다.
“지난 3월 30일자로 퇴사를 하고 4월 6일자로 정식으로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매장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어린 돼지를 뜻하는 ‘마이알리노’로 정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눈치안보고 오히려 지원을 받아가며 창업을 한 것이지요. 마이알리노는 창업자인 저와 CEO플랜을 통해 회사 유관부서 5개팀이 함께 만든 가게입니다. 문을 연 지금에도 회사 측에서는 조리장을 보내 음식을 체크하는 등 장사가 잘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1호점으로서 잘 돼야한다는 의무감마저 든다. 회사 입장에서 적극 지원해줬는데 혹시라도 잘 안 돼 “역시 봉급쟁이는 어쩔 수 없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혼신을 다하고 있다.
“창업은 나도 한번 해볼까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으로 인생을 걸어야 하는 만큼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해 준다고 해도 100%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 잘되고 안 되고는 본인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퇴직 이후의 삶은,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철저하게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시점으로 막막하고 두려움이 앞선다. 어떤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될까 머리를 싸매게 된다. 이윽고 만만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창업’을 선택했지만 망하기 일쑤다.
화려하고 멋진 제2의 인생은 결코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실 현대카드의 창업 프로그램이 완벽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험난한 항해를 나홀로 헤쳐가기 보다는 전 직장이 손을 잡아주고 컨셉 초기부터 사후관리까지 지원해준다면 퇴직자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김 사장은 요원하던 창업의 꿈을 이뤘지만 그는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CEO플랜 1호점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기에 퇴사자들이 나와 같은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아낌없이 노하우를 전해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업이 잘되면 훗날 착한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싶습니다. 가맹점주들이 본사로부터 이것저것 떼이다 보면 정작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공통적인 식자재비와 최소한의 레시피 개발비 정도만 받고 서로 공생하는 가맹사업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