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관계자는 CNB에 “접수된 200여개의 피해사례 중 대표적인 피해자들을 추려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혀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CNB=이성호 기자)
경실련, 피해자 소송의향 파악 중…집단소송 예고
솜방망이 행정처분 내린 식약처, 관련법 개정 추진
검찰 “대장균 사실 알고도 혼입” 고의성 입증 주력
이번 사태는 지난해 10월 13일 SBS가 동서식품이 대장균군이 검출된 시리얼을 재활용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동서식품 진천공장이 출고 전 자가품질검사 결과 대장균군이 검출된 부적합 제품을 다시 조금씩 섞어 최종 완제품을 생산한 정황을 확인했다. 해당 제품은 포스트 아몬드 후레이크 등 시리얼 제품 5종이다. 자가품질검사는 식품 기준·규격(대장균군 등) 적합여부를 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검사하는 것을 말른다.
보도가 나간 뒤, 식약처는 대장균군이 검출된 해당 제품들을 압류·폐기하고, 제조·유통된 최종 완제품에 대해서도 잠정 유통 판매 금지 조치했다.
더불어 지난해 10월 21일 동서식품에 대해 자가품질검사 결과 부적합된 제품을 다른 제품의 원료로 사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부적합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과태료를 부과토록 관할 진천군에 지시했다. 진천군은 300만원의 과태료를 동서식품에게 부과했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 지난해 11월 21일 동서식품 및 대표이사 등 임직원 5명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한 회사 임직원이 무더기로 기소된 것은 이례적이다.
검찰은 2012년 4월~5월까지 동서식품 진천공장에서 총 12회에 걸쳐 대장균군이 검출된 ‘포스트 아몬드 후레이크’ 등 시리얼제품 5종, 42톤 상당을 새로운 제품 생산과정에 섞어서 다시 사용해 총 52만개 28억원 가량을 제조했다고 밝혔다.
시리얼 제품을 검사한 후 대장균군이 검출되면 보건당국에 부적합 신고 후 즉시 폐기해야 하지만, 이를 어기고 새로운 시리얼 제품에 넣어 다시 사용한 것은 죄질이 무겁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지난달 23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이 열렸고, 오는 20일 다음 공판이 예정돼 있다. 재판과정에서 동서식품 측과 검찰은 치열한 법리공방을 펼치고 있다.
경실련, 소송전략 대폭 수정
이런 가운데 경실련은 형사재판과 별개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료 수집에 애를 먹고 있다. 불법제조된 제품의 유통경로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데다, 식품 제조·유통 특성상 소비자가 해당 제품을 먹었다는 증거를 입증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실련은 자체 운영하고 있는 소비자정의센터를 통해 지난해 10월 16일~22일까지 피해자들을 접수받았다. 11월 7일에는 피해자들의 피해입증 증명을 위해 동서식품 측에 유통시기·유통점 등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소비자분쟁조정신청이나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에 입증자료로 활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CNB가 14일 경실련에 확인한 결과, 소송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동서식품 측으로부터 요청한 데이터를 받았으나 소송의 자료로 활용하기 힘든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경실련이 동서식품에 요청한 자료는 본사와 대형마트 간의 납품계약 현황자료였지만 이 자료에는 동서식품과 대형마트 본사간의 계약내용만 있었다. 대형마트 본사가 동서 측으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아 어떻게 유통시켰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대형마트들은 유통라인은 영업기밀이라 공개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관계자는 CNB에 “가령 동서식품이 A마트에 문제의 제품을 납품 했다면 이후 유통경로를 파악해야 하는데, A마트가 회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동서식품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자료는 다 받았지만 재판에 활용할 만한 것들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실련 측은 재판 전략을 360도 바꿨다.
경실련 관계자는 “유통경로에 대한 정보공개요구를 하는 것 보다 방향을 바꿔 소비자 피해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200여개의 피해사례가 접수됐는데 이중 실제 구매한 영수증이 있는 분들을 추려서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실련 측은 이들 중 소송 의향이 있는 이들을 묶어 공동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경실련은 소송을 통해 부정식품사범에 대한 경종을 울리겠다는 의지다. 소비자정의센터 관계자는 “시리얼로 인해 복통이 일어났으니 이를 배상하라는 단순 차원이 아니다”라며 “사용해선 안 될 재료를 정상제품에 고의로 혼입해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며, 실제 어떠한 피해가 있었는지는 소송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약처 솜방망이 처벌, 동서식품 ‘면죄부’ 논란
한편 이번 사태 전개과정에서 동서식품의 안일한 태도, 식약처의 솜방망이식 처분도 도마에 올랐다.
식약처는 보도가 나간 뒤 동서식품 진천공장에서 생산되는 시리얼 제품들의 대장균군 적합 여부를 확인하기 시리얼 18개 전품목에 대해 총 139건을 수거 검사한 결과, 모든 제품에서 대장균군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후 검찰이 사건의 심각성을 감안해 동서식품 임직원들을 무더기 기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식약처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인해 동서식품은 면죄부를 얻은 셈이 됐다.
실제로 동서식품은 식약처 행정처분 직후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에서 재발 방지대책을 소상히 밝히지 않고 두루뭉술한 사과와 변명으로 일관했다.
동서식품은 당시 사과문에서 “식약처가 아몬드 후레이크, 그래놀라 파파야 코코넛, 오레오 오즈, 그래놀라 크랜베리 아몬드를 포함한 시리얼 전 품목을 검사한 결과, 대장균군이 미검출 됐다고 발표했다”며 “소비자들의 염려를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소비자들의 비난을 샀다.
대장균군이 검출 제품을 재가공해 살균한 후 최종 완제품에 섞어서 판매한 행위는 명백히 식품위생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다. 따라서 식약처가 내린 행정처분 수위가 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동서식품에 대해 관련 법에 따른 기준을 적용해 시정명령을 내렸다”며 “과태료 300만원도 진천군에서 자의적으로 정한 것이 아닌 식품위생법에 따라 부과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한 것”이라며 “다만, 처분 기준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어 이는 법 개정이 필요한 부문으로 현재 개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 운영상 미흡한 점이 발견돼 처벌을 한층 강화하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CNB에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며 “이와 별도로 경실련에서 요구한 자료는 성실히 제출했고, (경실련이 추진하고 있는) 소비자피해소송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