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는 속칭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이름 붙여진 법안들이 속속 제출됐다. 대리점주들이 본사로부터 부당한 물량 밀어내기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강요받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남양유업법은 지금까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갑의 횡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갑을 관계 개선은 요원한 것인가. CNB가 표류하고 있는 남양유업법을 따라가 봤다. (CNB=이성호 기자)
의욕만 앞선 새정치, 법제정 한계 드러내
새누리·공정위 “기존 공정거래법 강화로 충분”
정치쟁점 밀려 2년간 표류…‘갑을 논란’ 여전
지난해 5월 참여연대의 청원을 받아 이종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대표발의 한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시작으로, 같은 당 이언주·이상직 의원 및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비슷한 맥락의 대리점법을 내놨고 현재 이 법안들은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리점 본사는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물량밀어내기, 영업비용의 전가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대리점이 저항하면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는데 이런 행위들을 막자는 게 법안 제정 취지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만으로는 제대로 된 규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나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도 있지만 대리점 거래에는 적용이 안 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대리점 부문을 따로 떼내 새로운 법을 만들어 대리점거래에서의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자는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대리점 본사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대리점 사업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본사가 대리점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경우 그 절차와 요건을 정해 정당한 이유 없는 계약해지를 금지했다.
특히 대리점사업자단체의 구성을 허용해 교섭권을 부여했고 본사가 불공정거래행위 중 구입강제행위, 판매목표강제 및 불이익제공행위, 부당반품금지행위를 해 대리점주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대리점 측에서 입은 손해의 3배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남양유업법은 발의된 지 1년 7개월이 넘도록 입법의 첫 관문인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조차 통과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리점 관련된 규율을 입법적으로 보완할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으나 정부여당은 일단 공정거래법 고시를 강화해 운영 후 입법적인 보완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반면 야당은 법률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측이 팽팽히 맞서며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정무위 법안소위에서도 별 다른 소득 없이 향후 논의를 계속 진행키로 했다.
정무위 소속 한 야당 의원 관계자는 23일 CNB와 통화에서 “성의를 가지고 입법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제정안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같은 소위 소속 새누리당 모 의원실 관계자는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현재로선 예상할 수 없다”며 “논의가 많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을 아꼈다.
새누리당에서는 이종훈 의원이 지난해 5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 개정안은 특별법을 만들자는 야당 측과 달리 기존 공정거래법을 강화, 착취적 갑을관계를 개선해 대리점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안됐다.
따라서 현저히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갑’이 중대한 법 위반 행위를 한 경우 ‘을’이 ‘갑’에게 최대 10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집단화된 ‘을’이 ‘갑’에게 법적으로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공정위의 처분에 대한 ‘을’의 불복기회 보장 및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행위금지를 법상 명문화 했다.
국회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기존 법을 개정하고 세부적으로 필요한 부문은 고시를 통해 해결하자는 여당 측과 반드시 특별법이 요구된다는 야당 측 견해가 서로 엇나가고 있는 모양새”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최근 여야 의원 간 상당한 의견교환이 있었고 특별법에 대해 일부 긍정적인 분위기도 감지되긴 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정위 반대 “왜?”
남양유업법 처리가 난항을 겪는 데는 정부 즉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 영향이 크다. 해당 주무부처인 공정위가 특별법을 두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
지난 1일 열린 정무위 법안소위에 참여한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기존의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고시를 가지고 지금 현재 대리점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율할 수 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입장”이라고 분명히 했다.
고시를 통해서 계속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각각의 불공정행위들의 유형을 계속 쌓은 다음, 추후에 시간을 갖고 법률을 제정하는 게 맞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대리점 거래관계는 계약, 거래형태, 동일영업표지 사용 여부 등 그 양태가 다양한 데 특별법을 만들 경우, 이러한 대리점의 정의를 규정하기 어렵고 경직적인 측면이 있어 오히려 대리점들을 보호하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부연이다.
공정위는 지난 5월부터 본사-대리점 간의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해 구체적인 금지행위를 담은 ‘계속적 재판매거래 등의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세부 유형 지정 고시’를 시행했다. ▲구입 강제 ▲경제성 이익제공 강요 ▲판매목표 강제 ▲불이익 제공 ▲부당한 경영간섭 ▲주문내용 확인 요청 거부 또는 회피 등을 공정거래법상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로 금지시켰다.
즉 이러한 고시를 충분히 운영하면 불공정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고 피력하고 있다.
향후 공정위는 정무위 법안소위의 요청에 따라 고시 시행이후 현장에서 어떠한 변화가 생겨났는지 보고할 예정으로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여야 정쟁 속 ‘갑 횡포’ 여전
국회에서 남양유업법이 표류하면서 ‘갑을 논란’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7일 발표한 ‘유제품가공본사-대리점간 불공정거래현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물량밀어내기, 떡값제공(본사 리베이트 협찬) 등은 상당히 개선됐으나 반품거부와 판촉사원 인건비 부당 전가 등의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92개 대리점주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밀어내기는 응답자의 65.8%가 ‘개선됐다’고 답한 반면, 반품거부와 판촉사원 인건비 부담은 각각 11.7%, 14%가 ‘변함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3개 유제품 본사와 대리점간 계약서 분석도 실시했는데, 대리점들은 판촉행사시 비용분담이 불명확하고, 계약 해지 사유가 광범위하며, 과도한 물적·인적 담보 요구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남양유업법의 제정을 청원했던 참여연대는 속이 타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CNB에 “공정거래법만으로는 효과적인 규제를 할 수 없어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법, 하도급법 등 특별법이 생겨났는데 대리점법만 안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안 처장은 “대리점 범위를 정의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전속대리점으로 제한해 시작한 후 범주를 넓혀가는 방안도 있다”며 “남양유업법은 대리점 보호를 위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도 진척 없는 남양유업법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위원회 관계자는 “비전속대리점이 많은 현실에서 교섭권을 주는 문제를 입법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법리적 논란 여지가 있는 부분을 다 손보겠다고 (여당에) 전했지만 여전히 진도가 안 나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대리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뼈대만이라도 갖췄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