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소비자를 딜러로 만들어주는 ‘판매 위탁 계약서’ 양식(사진: CNB뉴스)
평범한 소비자가 엉뚱한 ‘판매자(딜러)’로 둔갑
리베이트 명목으로 불법 보조금 지급하기 위한 꼼수
판매자측 “법적 문제 없다” Vs 소비자들 “찜찜하다”
지난 9일 회사원 김모씨는 예전에 스마트폰을 구입했던 핸드폰 판매자로부터 색다른 문자를 받았다. “스마트폰 판매자(딜러)로 등록해달라”는 문자였다.
딜러가 되면 스마트폰을 싸게 구입하는 것은 물론 타인에게 판매도 가능해 ‘투잡(two job)’으로 돈을 벌 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갤럭시S5 광대역 LTE-A’같은 최신 스마트폰을 팔 경우 최대 50만원 수준의 리베이트를 받을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도 포함됐다.
판매자측 안내에 따르면, ▲소정의 양식에 맞춰 ‘판매자 위탁 계약서’를 작성해 판매자측에 제공해 딜러가 되면, ▲SK텔레콤·KT·LG유플러스·CJ헬로모바일 등 모든 이통사들이 ‘판매자(딜러)’들에게 안내하는 판매정책을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저렴한 가격대의 스마트폰을 자신이 구입하거나 제3자에게 판매할 수 있으며, ▲개통이 될 경우, 판매수수료(리베이트)의 명목으로 소정의 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다.
김씨는 직감적으로 단통법 상황하에서도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판매하기 위한 판매자들의 우회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 맘에 걸렸다. ‘갑종근로소득 3.3%가 공제된다’는 문구도 찜찜했다.
이처럼 최근 주요 스마트폰 관련 커뮤니티에는 ‘딜러 계약’과 관련한 정보와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판매자들은 카페와 밴드같은 폐쇄형 커뮤니티를 이용해 관련 정보를 유포하고 있으며, 실제로 가입한 소비자들도 적지 않은 상태다.
▲30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의 단통법 폐지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과거 단통법 시행 이전에는 구입 시기부터 할부원금을 깍아주는 ‘현금완납’과, 정상 할부원금으로 개통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상당한 금액을 구입자의 통장에 입금시켜주는 ‘페이백’ 등이 불법 보조금 지급의 주된 방식이었으나, 단통법 시행 이후부터는 이같은 방식이 모두 위법으로 규정됐다.
이에 상당수 판매자들은 ‘현금완납’과 ‘페이백’을 극소수 지인들에게만 적용하는 음성화·지하화 방식을 택했고, 이같은 사례는 본지가 ‘[단독]혼돈의 단통법 시행 2주만에 ‘불법보조금’ 재등장’ 등으로 기사화한 바 있다.
하지만 기존에 카페, 밴드 등을 통해 저렴한 스마트폰을 판매해왔던 일부 판매자들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아이폰6 출시와 맞물린 이통사의 리베이트 확대에 힘입어 1일밤 속칭 ‘아이폰6(아식스) 대란’을 유발한 바 있다.
대란 당시 판매자들 중 일부는 중고폰을 고가에 매입하는 방식을 채택했지만, 일부는 소비자에게 ‘딜러 계약’을 제안해 논란이 됐다. 김씨가 받은 문자도 이같은 ‘딜러 계약’의 일환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하나 조금 싸게 구입하자고 계약서까지 작성했다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불이익을 겪게 될 가능성은 없을까?
법적 문제 없지만, 피해 시 보상 ‘난감’
판매자들은 일단 딜러 계약이 법적 문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딜러 계약을 한 뒤 자신의 스마트폰 1개만 구입해도 되고, 여러 개를 구입해 타인에게 팔아도 법적으로 어떠한 문제도 없으며, 세금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겸직이 금지된 공무원 또는 겸직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일부 대기업 근로자들의 경우 공무원법 위반이나 회사와의 계약 위반으로 몰릴 소지도 있지만, 흔한 상황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이같은 판매 방식을 위법으로 특정하지 않는 이상은 처벌할 근거도 논리도 없다는 것이 판매자들의 주장이다. 방송통신위원회측도 “아직 딜러 계약을 통한 불법 보조금 지급 정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소비자들이 걱정할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이를테면 판매자 측이 계약한 리베이트를 제때 지급하지 않아도 이통사나 정부에 구제를 청구하기가 어렵다. 또,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각종 개인정보를 판매자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이 역시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보호받기 어려울 수 있다.
상당수 소비자들은 딜러 계약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 구입하는데 계약서까지 쓰기는 싫다” “다단계 피라밋 판매를 연상케 한다” “개인사업자가 되는 것과 다름없는데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등이 주된 이유다.
이같은 소비자들의 반응에 대해 CNB와 통화한 한 휴대폰 판매자는 “정말 매출이 급감하고, 문닫는 매장이 속출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계약서까지 생각해냈겠느냐”라며 “정부는 판매자들이 처한 위기를 좀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비정상적인 법 때문에 굴절된 시장이 정상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