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직접 만든 작품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는 게 꿈이야."
순간 착각했다. 배우들이 대사를 치던 도중 실제 그의 꿈들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구텐버그'는 '버드'와 '더그'라는 두 신인 뮤지컬 작곡가와 작가가 브로드웨이에 작품을 올리는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는 2인극이다. 뉴욕뮤지컬페스티벌 최우수 뮤지컬 대본상,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외부비평가 협회상 등을 수상한 작품으로 스콧 브라운과 안소니 킹이 원작자이고 국내엔 지난해 초연됐다.
그리고 올해 다시 시작된 재연 무대, 그 현장은 자꾸 배우들이 극을 진행하다 연기임을 잊고 실제 진심을 털어놓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야말로 현실과 허구 사이의 줄다리기였다. 이는 버드와 더그의 이야기가 아마도 무대에 서는 '배우'들의 입을 통해서 꾸려지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와닿는 것 같았다.
버드와 더그는 극 속에 또 하나의 극을 꾸려간다. 활자 인쇄술의 혁명가인 구텐버그(구텐베르크)를 소재로 쓴 뮤지컬을 브로드웨이 부대에 올려줄 프로듀서를 찾기 위해 여러 프로듀서들을 초대해놓고 자신들이 직접 노래하고 연기하며 작품을 선보인다는 설정이다. 즉,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프로듀서가 되는 셈이다.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배우들은 능수능란하게 대본과 애드리브를 섞어 극을 진행한다. 이날 현장에서는 1막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어머니 관객이 2막 때는 보이지 않자 버드 역의 장승조와 더그 역의 김종구 배우는 "어머니가 사라졌다"며 울부짖어 웃음을 자아내다가 "그래도 우리의 꿈을 위한 여정을 계속하겠다"고 말하며 무대에 서는 배우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2인극이지만 무대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배우 2명이 이들을 모두 연기한다. '구텐버그'라는 모자를 쓰면 배우는 구텐버그가 되고, '수도사' 모자를 쓰면 구텐버그에서 갑자기 수도사로 변신한다. 그래서 휑할 것 같았던 무대를 2명이서 꽉 채운다. 특히 '조로'와 '위키드', '지킬앤하이드' 등 유명 뮤지컬의 캐릭터가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버드와 더그가 만든 구텐버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포도주를 만들던 구텐버그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다. 그리고 여기엔 사악한 수도사의 음모가 숨어 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수도사는 문맹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이 곧 법이라며 사람들을 조종한다. 일부가 항의하려 하면 성경에 적혀 있는 말을 자신이 읽고 전할 뿐이라며 납득하게 만든다.
하지만 구텐버그는 글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읽고 배울 수 있도록 책을 인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포도를 압축하는 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글자를 찍는 인쇄기를 발명한다. 이때 구텐버그는 외친다. "인쇄기로 많은 책을 찍어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꿈"이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눈치챈 수도사의 방해로 구텐버그의 꿈은 좌절된다. 그리고 여기서 버드와 더그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구텐버그의 꿈은 거기서 끝난 듯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어져 결국엔 인쇄기가 발명돼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고, 그의 꿈은 다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의 불씨가 됐다고 말이다.
여기서 버드와 더그는 자신들이 쓴 극 속의 구텐버그가 아니라 본래의 버드와 더그로 돌아와 구텐버그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듯, 자신들도 구텐버그의 이야기를 통해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계속해서 보여주겠다고 외친다. 여기서 극은 결말에 다다르는데 한국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엔딩이 마련돼 있다.
배우들은 지난달 열린 프레스콜에서 "'구텐버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특히 우리가 무대에 오르는 배우라서 그런지, 극 중 버드와 더그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에 공감이 많이 갔다. 배우 또한 한 무대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감동을 관객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극 중 버드와 더그가 가졌던 무대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배우들의 진심과 닿아 극대화된다. 그리고 '구텐버그'는 묻는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있냐고.
한편 뮤지컬 '구텐버그'는 12월 7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김동연이 연출 및 각색을 맡았고, 배우 허규, 장승조, 김종구, 정원영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