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부기자 | 2014.09.12 13:54:47
고양문화재단이 대전예술의전당과 함께 베르디 초기의 걸작 오페라 <나부코>를 선보인다. 2014 오페라 <나부코>는 오는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만날 수 있고,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이 이어진다.
고양문화재단(이사장 최성 고양시장, 대표 안태경)은 그동안 제작해 온 여러 작품들을 통해 ‘국내 정상급 제작진들과 뛰어난 기량의 성악가들로 구성된 내실있는 프로덕션’, ‘공개 오디션을 통한 적극적인 신예 성악가 발굴’, ‘예술성과 작품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친근한 오페라 제작’을 실천하며 기획력과 제작능력을 검증받았다.
이번 공연은 고양문화재단이 다년간 축적한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보다 체계화된 제작시스템을 구축해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실연 감상의 기회가 적은 대작을 새로운 해석으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특히 기대를 모은다.
연초부터 진행된 작품연구와 2차에 걸친 공개오디션 등 수많은 과정을 거쳐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현대적인 해석을 감각적인 연출과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담아냈다.
국내 유수 오페라 극장 가운데서도 단연 세계적인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것으로 손꼽히는 고양아람누리는 개관 초기부터 대전예술의전당, 대구오페라하우스 등 지역 우수 문예회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토스카>(2008), <사랑의 묘약>(2009), <라 보엠>(2010) 등 비교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들을 공동 제작하는 동시에 가족오페라 <마술피리>(2009~2010)를 자체제작하며 노하우를 쌓았다.
2012년부터는 예술감독 체제를 도입하는 등 공공극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보다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피가로의 결혼>(2012)과 <카르멘>(2013)을 연이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성공시키며 국내의 대표적인 오페라 제작극장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특히 ‘모든 관계자의 헌신적인 노력과 긴밀한 협조가 행복한 결실을 거둔 사례’로 평가(동아일보)받는 <피가로의 결혼>은 ‘현재 세계 오페라 무대가 추구하는 방향을 국내 제작진의 힘으로 정확하게 짚어낸 세련되고 효과적인 무대’(연합뉴스)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일 년에 한편이라는 제작 편수가 전문 오페라단이나 해외 공연장에 비해 적어보일 수는 있지만,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공공 극장에서 매년 200~300명의 제작진과 출연진을 개별 섭외해 새로운 작품의 프로덕션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고양문화재단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순수예술 발전에 대한 강한 의지와 오페라 장르에 대한 애정으로 매년 제작과정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더해 효과적인 제작 시스템 구축에 힘쓰고 있다.
다음은 2014년 고양문화재단이 새롭게 선보이는 '오페라 나부코'의 특징이다.
-예술감독 정은숙, 지휘자 장윤성, 연출가 김태형, 무대미술가 오윤균 등
-세대별, 분야별 대표 아티스트들로 조화롭게 구성된 국내 정상급 제작진
올해 <나부코>의 프로덕션에는 다양한 세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국내 정상급 크리에이티브팀과 뛰어난 기량의 음악가들이 참여하여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성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에서 국립오페라단장까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오페라 대중화에 힘써온 정은숙 예술감독과 선 굵은 연주로 탁월한 베르디 해석을 보여주는 지휘자 장윤성, 함축적이고 세련된 무대를 선보이는 무대미술가 오윤균, 분장디자이너 임유경 등은 명실상부한 오페라계의 베테랑 군단.
이들의 원숙함에 현재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가장 핫한 연출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젊은 아티스트 김태형 연출과 섬세한 터치로 극의 사실감을 더하는 의상디자이너 박진원, 넘치는 아이디어로 빛과 색의 새로운 세계를 표현하는 조명디자이너 우수정, 영상디자이너 최원재 등 참신한 감각을 지닌 젊은 아티스트들의 조합은 보다 사실적인 표현이 담긴 친근한 오페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오페라를 위한 이상적인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다.
-바리톤 김진추, 소프라노 박현주, 베이스 함석헌 등 스타 성악가들
사실 2014 오페라 <나부코>의 제작에 있어 제작진이 예상한 첫 번째 어려움은 바로 캐스팅이었다. 먼저, <나부코>는 국내에서는 비교적 자주 공연되지 않는 작품인데다 바리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게다가 여주인공인 아비가일레 역은 소프라노의 여러 배역 가운데서도 어렵기로 정평이 나있는 역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는 독특한 색깔과 다양한 화법을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소프라노들 가운데서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성악가를 손에 꼽을 정도다. 1막 전체를 이끌어가며 강한 존재감을 보이는 자카리아 역시 베이스 성악가 층이 두텁지 않은 국내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노르마>를 통해 유럽에서 먼저 독보적인 연기와 기량을 인정받은 소프라노 박현주가 아비가일레로, 풍부한 성량과 탁월한 연기력의 바리톤 김진추가 나부코로, 2005년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프로덕션에서 이미 안정적으로 자카리아 역을 소화했던 검증된 베이스 함석헌이 자카리아로, 정교한 발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음색의 테너 윤병길이 이스마엘레로 선발되는 등 모든 주역이 최고의 음악적 기량과 연기력을 자랑하는 정상급 성악가들로 구성되며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매년 공개 오디션으로 신예 성악가들을 발굴하고 있는 고양문화재단은 올해도 고양과 대전에서 2차에 걸쳐 한층 엄격하게 진행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뛰어난 기량과 참신한 매력을 지닌 차세대 성악가들을 소개한다. 나부코 역의 바리톤 이승왕과 아비가일레 역의 소프라노 오희진, 자카리아 역의 베이스 손철호는 역할의 난이도 관계로 주역 선발을 기대하지 않았던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며 당당히 배역을 거머쥐었고, 8월부터 시작된 연습 과정에서도 선배 성악가들과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본 공연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이전 제작 오페라의 공개 오디션을 통해 주역으로 선발돼 주목받은 소프라노 정혜욱과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등이 현재 국내 주요 오페라 무대와 다양한 프로덕션에 주역으로 섭외되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등 고양문화재단 제작 오페라의 공개 오디션은 국내 신인 성악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 선발된 차세대 주역 3인의 활동은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볼만 하다.
여기에 배경음악 수준에 머물러 있던 오페라 합창을 무대 한 가운데로 끌어내며 합창음악의 새로운 매력을 선보인 베르디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합창 장면이 등장하는 <나부코>에서의 합창 연주는 국내 최정상의 앙상블을 자랑하는 고양시립합창단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는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화합과 희망으로
-2014 오페라 <나부코>,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향한 자성의 메시지
오페라 <나부코>는 히브리인들이 바빌론에 강제로 끌려간 사건인 ‘바빌론 유수’라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먼 옛날 배경의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야기이다. 그런 만큼 현대인, 특히 종교가 없는 관객이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나부코의 회개와 개종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의 결말도 논리와 개연성을 중시하는 이성적인 성향의 관객이라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이같은 측면에서 스스로가 카이스트에서 공부한 공학도 출신으로 논리성을 중시하는 젊은 연극 연출가 김태형은 이번 오페라 <나부코>를 보다 설득력있는 연출로 선보여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 공감과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나부코와 히브리인들의 충돌을 단순히 이교도와 기독교인의 대립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세계의 갈등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바빌론의 정복왕 나부코는 물질과 기계 문명을, 핍박받는 히브리인들은 정신 및 자연 문명을 대변하는 인물로 각각 설정돼 있다.
작품의 줄거리를 보면, 나부코는 처음에는 히브리인들을 배척하고 억압하면서 스스로를 유일신이라 자부하는 등 오만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들에게 동화된다. 이 같은 줄거리가 이번 오페라 <나부코>에서는 나부코로 상징되는 물질 및 기계문명이 히브리인들로 상징되는 정신 및 자연문명을 무력으로 짓밟으려하지만, 결국 그 문명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의미, 혹은 물질적 사고에서 가이아적 사고로의 전환이라는 의미로 치환된다. 즉,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분쟁을 벌이는 현대인들에게 상생과 조화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시각적으로는 영화, 애니메이션, 패션 등의 디자인 분야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스팀펑크 양식을 모티브로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는 흔치 않은 비교적 거칠고 현대적인 느낌의 미장센을 선보인다.
스팀펑크(Steampunk)양식이란 증기기관과 같은 기술이 크게 발달한 가상의 과거, 또는 그런 과거에서 발전한 가상의 현재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문화장르. 198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산업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디자인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배경을 예로 들 수 있다.
구체적인 시대나 장소를 특정 짓지 않고 ‘언제 어디에선가 있을 법한’ 배경의 함축적이고 상징성 강한 무대와 빛의 질감을 살린 감각적인 디자인의 조명, 섬세한 디테일의 의상 등이 어우러져 오늘날 인류를 향해 강력한 자성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탈리아 제2의 국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과 국민작곡가 베르디의 탄생,
-과감한 음악적 시도로 오페라 사에 많은 파격과 혁신을 가져온 작품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잘 알려진 아름다운 노래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로 대표되는 오페라 <나부코>는 주인공이 테너라는 공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19세기 당시 오페라 계에 바리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합창의 비중을 높이는 등 과감한 음악적 시도로 신선한 파격을 선사한 작품이다.
테미스토클레 솔레라가 희곡 ‘나부코도노소르’ 및 구약성서 중 ‘열왕기’, ‘다니엘서’, ‘예레미아서’ 등에 기초해 대본을 썼으며, 1842년 3월 9일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베르디의 세 번째 오페라다. 성악 못지않게 극의 비중을 강화한 베르디 오페라의 특색이 잘 드러나 있으며, 당시의 전통을 거스르는 대담하고 거친 음악을 사용하여 초연 당시부터 베르디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줬다.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인들은 바빌론에 잡혀와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히브리 노예들이 부르는 서정적인 선율의 노래를 통해 자신들의 독립을 향한 열망과 민족주의를 고취시켰고 이 곡은 지금까지도 이탈리아의 제2의 국가로 불리며 전 세계 오페라 애호가는 물론, 오페라를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곡으로 열렬히 사랑받고 있다.
<나부코>의 성공은 전작 오페라의 실패 및 아내와 아이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베르디가 재기할 수 있었던 계기였으며, 작곡가 스스로 “이 오페라는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났다”고 밝혔을 만큼 이 작품을 통해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베르디는 이후에도 ‘리골레토’, ‘돈 카를로’, ‘아이다’, ‘오텔로’ 등 무수히 많은 오페라 명작을 남겼으며,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지자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명실상부한 이탈리아의 국민작곡가로 사랑받았다. 1901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장례식에서는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연주됐을 만큼 <나부코>는 베르디에게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고양=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