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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 이현보의 가족 이야기,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 개편

사회적 실천인 적선과 가정의 효도인 애일을 실천했던 농암(聾巖) 이현보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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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왕진오기자 |  2014.05.20 18:24:04

▲보물 제872호 농암 이현보영정.(사진=국립민속박물관)

조상의 유업을 길이 이어가고자 사회적 실천인 적선((積善)과 가정의 효도인 애일(愛日)을 몸소 실천했던 농암(聾巖) 이현보(1467〜1555)의 가족 이야기로 구성된 전시가 국립민속박물관과 한국국학진흥원 협업으로 5월 16일부터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실 3관 가족 전시코너에서 진행된다.

어부가(漁父歌)로 잘 알려진 농암 이현보는 과거시험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어버이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 살기를 원했고, 어버이를 가까이 모시고자 고향 근처 안동, 영천 등지에서 근무하거나, 휴가 때마다 고향에 내려와 어버이를 봉양했다.

또한 만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고향의 자연을 즐기던 중에 전래 어부가의 순서가 뒤섞이고 내용이 중복됨을 알고서, 이황(李滉 1501〜1570)과 의견을 나누면서 이를 고치어 1549년(명종 4) 83세에 새 어부가를 완성했다.

전시관에는 멀리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며 자연에 흥취를 즐기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분강어부가(汾江漁父歌)’ 목판은 물론, 보물 제872호 ‘농암 이현보 영정’ 및 영정에 보이는 금서대(金犀帶) 및 옥관자(玉貫子) 등 유품이 전시된다.

▲1969년 촬영된 애일당과 농암 각자.(사진=국립민속박물관)

영천이씨는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하지만, 이현보는 그 세대가 너무 멀어서 영양군(永陽君) 이대영(李大榮)을 중시조로 하며, 예안 분천에 처음 거주하였던 이헌(李軒)을 입향조로 한다. 그는 고조부 이헌이 지은 집을 중수하면서 조상의 유업을 길이 이어가다는 뜻의 ‘긍구당’이란 당호를 걸고, 조상들이 쌓아온 적선(積善)을 실천했다.

여기에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 1491~1554)의 글씨로 알려진 긍구당 현판 및 그의 5아들과 족질 이황, 손녀사위 황준량(黃俊良, 1517〜1563)의 시가 새겨진 긍구당 시판(詩板)도 전시된다.

‘적선’과 ‘애일’을 실천한 농암가문은 이현보를 중심으로 그의 나이 89세를 비롯하여, 아버지 이흠 98세, 아들 이문량 84세, 이희량 65세, 이중량 79세, 이계량 83세, 이윤량 74세, 이숙량 74세 등 평균 80세가 넘는 등 대대로 장수하는 집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농암의 효행으로 선조(宣祖)가 농암 가문에 ‘적선(積善)’이라는 큰 글자(大字)를 하사하였고, 효친과 경로사상은 농암종택 500년 전통으로 이어져왔다.  여기에 분천의 종택과 애일당이 그려진 보물 제1202호 '애일당구경첩'의  ‘분천헌연도(汾川獻宴圖)’는 물론, 애일당을 장식했던 6개의 현판이 전시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실 3관 전시장 모습.(사진=국립민속박물관)

이와 더불어 ‘목판, 지식의 숲을 거닐다’ 공동특별전과 연계하여, 농암선생문집 책판 90판 전질과, 농암 이현보와 퇴계 이황 등 명사들이 주고받은 시문을 새긴 긍구당·애일당 현판 등 평소 함께 접하지 못했던 유물들도 모두 전시한다.

CNB=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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