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SK인천계양행복센터를 찾아 현장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은수미 의원과 협력업체 노조원들(사진: 은수미 의원 트위터)
을지로위원회, SK브로드밴드 행복센터 ‘부당노동행위’ 조사
행복센터 운영업체, 알고보니 SK그룹 총수일가 소유 기업
SK텔레콤, 자회사 SK브로드밴드 일인데도 “나 몰라라”
지난 13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인 인천계양행복센터와 부천행복센터를 방문해 현장간담회를 열어 실상과 문제점을 조사했다. 이후 동 위원회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신대기업의 다단계하도급 실태와 ‘노동쥐어짜기’에 따른 협력업체 기사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에 따라 기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 및 가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부당노동행위와 실제 부당해고된 사례, 다단계하도급 관계에서 근로기준법이 절대금지하고 있는 중간착취와 이를 은폐하려는 불법적인 근로계약 체결 강요 등의 사례들을 접했다”고 덧붙였다.
조사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의 협력업체인 ‘행복센터’는 인터넷·IPTV·인터넷 집전화 등 통신상품의 개통·AS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SK브로드밴드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외주사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불공정 고용계약관계에 저임금·초과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다단계 도급계약에 의해 잘려나가는 인터넷 설치기사의 급여 시스템(사진: 은수미의원실)
인터넷 설치기사 월 급여 300~350만원…실수령액 200만원대
SK브로드밴드 인터넷 설치기사의 실상은 이렇다.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SK브로드밴드 콜센터를 통해 접수된 개통요청에 따라 인터넷 설치 업무를 수행한다.
아파트는 일이 수월하지만 주택가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전신주를 오르내리며 케이블 설치를 해야한다. 한 집 설치에 할당된 시간은 1시간. TV·인터넷·전화 복합상품을 신청할 경우 작업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밥은 늘 이동 중 차안에서 해결한다. 평일의 경우 고객이 퇴근 시간 이후 설치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 새벽 1시를 넘겨 퇴근하기도 한다. 한달 30일을 꼬박 일해야 받을 수 있는 급여가 300~350만원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전신주 작업용 안전장비, 장갑, 유류비, 각종 서비스 물품들을 본인 돈으로 사야하고, 행여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페널티로 월급에서 일정 금액이 차감되기 때문에 실 수령액은 70~90만원 가량 차감된 2백만원대다.
본사는 협력업체에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하는데 이는 기사들의 급여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친다. 협력업체는 협력업체들대로 재계약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설치기사들을 쥐어짤 수 밖에 없다. 기사들의 가장 큰 바램은 ‘건 당 급여가 아닌 시간급 급여를 받고 싶다는 것’과 ‘한달에 1~2일 밖에 못쉬는 격무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것이다.
특이한 다단계 도급관계…‘근로자영업자’라는 변종 고용형태
특이한 것은 고용형태다. 본사는 협력업체와 도급관계를 맺고 있고, 협력업체는 산하에 센터들을 2~3곳 둔다. 센터 아래에는 직접고용된 정규직과 도급기사가 있고, 기사 몇 명을 거느린 소사장들이 있다.
독특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는 것이 인터넷 설치·AS 기사들이다. 이들의 고용관계는 실질적으로 협력업체의 피고용인으로 봐야하지만, 급여와 별도로 3.3%의 사업소득세를 떼고 건 당 급여를 받는다.
이들의 급여명세서를 보면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이 있고, 사업소득이라는 항목이 혼재되어 있다. 기본급을 기준으로 4대보험료가 공제되는데, 이마저도 일부 센터는 사용자가 내야할 부분을 근로자 급여에서 공제하거나, 또는 공제한 보험료가 실제 납부한 보험료 보다 많은 경우가 있다. ‘건 바이 건’으로 가져가는 영업수당에 대해서는 사업소득세를 공제해서 받는다.
센터장이 4대 보험료 부담분을 줄이고, 통상임금과 퇴직금 부담도 줄이면서, ‘건 바이 건’으로 실적을 강요할 수 있는 ‘근로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아닌 ‘근로자영업자’라는 독특한 변종고용형태가 만들어졌다. 실질적 업무지침은 본사로부터 협력업체, 센터, 소사장을 거쳐 근로자에게 하달된다. 불법파견 내지 위장 하도급 논란이 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전엔 형식적으로 행복센터와 근로계약을 맺었으나 ‘위장도급’ 논란이 일자 소사장과 고용계약을 맺을 것을 강요하는 공문(사진: 은수미의원실)
노조 결성되자 조합원에 ‘해고’ 통보
최근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행복센터 기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센터들은 조합원들을 무차별적으로 해고하기 시작했다. 또, 기존의 복잡한 행복센터와 소사장간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위장도급’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자, 센터장이 소사장을 앞세워 ‘근로자영업자’라는 기형적 고용관계를 맺음으로써 ‘진성도급’ 전환을 강요하고 있다.
15일 기자회견에서 이경재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장은 “우리는 SK라는 기업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SK 구성원으로 인정해 달라고 사측에 요구했지만 사측은 부당해고를 하는 등 우리를 탄압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행복센터 운영 협력업체…SK그룹 총수일가 지분 보유
여기에 SK브로드밴드 행복센터를 운영하는 협력업체가 알고보니 SK그룹 총수일가의 소유인 것으로 확인돼 ‘일감 몰아주기’ 논란까지 야기되고 있다.
SK부천행복센터를 운영하는 회사는 BBNS(주)다. 이 회사는 통신장비 유지보수 및 정보통신 시설공사를 하는 유빈스(주)의 인력파견 자회사인데, 유빈스(주)의 경영자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권이다.
유빈스(주)는 지난 2005년 SK텔레시스에서 분리독립한 회사로, SK텔레시스는 유빈스(주)의 지분 19%를 가지고 있다. 유빈스(주)는 SK그룹 계열사인 SK텔레콤, SK네트웍스, TU미디어, SK C&C 등을 대상으로 이동통신사업과 각종 시설공사, 유지보수, 물류서비스 등을 수행해왔다.
SK부천행복센터를 위탁운영하는 실제 주인이 법인상의 ‘BBNS(주)’가 아니라 ‘유빈스(주)’라는 주장도 있다. 노조측 주장에 따르면, ‘센터장’과 ‘팀장’만 BBNS(주) 소속이며, 총무와 회계 담당자는 모두 유빈스(주)의 파견직원이다.
SK텔레콤측 “SK브로드밴드 소관일뿐”
한편, SK텔레콤 측은 SK브로드밴드의 부당노동행위 논란에서 한 발 떨어진 자세를 취하고 있다. CNB와 통화한 SK텔레콤 관계자는 “해당 문제는 SK브로드밴드 소관사항”이라 잘라 말하며, 관련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의 지분 50.56%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상법상 SK브로드밴드의 모회사다.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를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다.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는 유선인터넷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지 않고 내부 사업부문으로 운영하고 있다.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를 자회사로 분리시켰지만, 유무선 통합상품을 타사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어, 업계에서는 양사를 사안에 따라서는 한 회사로 보고 있다.
실제로 행복센터의 인터넷 설치기사들은 SK텔레콤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작업을 수행한다. SK텔레콤 대표이사 명의의 표창을 수상한 기사들도 많다. “SK텔레콤 모자를 쓰고 있으니 보는 사람들은 ‘좋은 회사 다닌다’고 말하는데, 그 때마다 참 할 말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씁쓸한 고백이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