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식기자 |
2014.04.30 11:26:15
▲29일 유가족 대책위 김병권 대표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 오마이TV)
기자회견서 “정부 책임 촉구”…언론 “선생님과 교육부 책임” 보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지 2주째를 맞은 29일 오후 안산 단원고등학교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진상규명과 보다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정부에 촉구했다.
유가족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은 김병권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정확한 사고경위와 사고 발생의 진상규명을 정부에게 요청하고, ▲적극적인 구조 태도를 촉구했으며, ▲학부모들에게 지원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정부 및 관계기관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의하지 않은 성금 모금을 당장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을 보도한 연합뉴스를 위시한 주요 언론들은 김병권 씨가 육성으로 토로한 “정부 및 관계기관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부분을 “선생님 그리고 교육부 관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보도를 접한 국민들은 이상함을 느끼고 실제 방송 영상을 찾아봤고,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 기자회견 영상에서 실제 발언 내용을 확인한 국민들은 일제히 “연합뉴스의 오보”라며 정부와 언론의 행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트위터 등에서는 “발음도 의미도 전혀 비슷하지 않다. 심각한 오차다” “누가 봐도 문맥이 맞지 않는다. 의도적 조작이 확실하다” “고의 조작이 사실이라면 연합은 문을 닫아야 한다” 등 연합뉴스 등의 보도태도에 대한 격렬한 성토가 이어졌다.
▲29일 기자회견 때 배포된 기자회견문 전문. 논란의 문구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사진: 연합뉴스)
연합뉴스측 황급히 기사 수정…대책위 “기자회견문 미수정된 채 배포된 것”
논란이 일자 연합뉴스측은 즉각 기사를 수정했다. 수정된 기사에 따르면,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당일 기자회견에서 언론에 제공한 기자회견문의 내용에는 ‘선생님 그리고 교육부 관계자’가 명시되어 있었는데, 대책위 김병권 대표가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해당 부분을 ‘정부 및 관계기관 관계자들’로 바꿔 낭독했다는 것이다.
대책위측도 “기자회견에서 읽은 부분이 잘못된 것이고, 배포한 기자회견문이 맞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연합뉴스측은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대책위가 문제가 된 문구가 ‘정부 및 관계기관 관계자들’로 수정되지 않고 배포된 사실이 잘못이라며, “기자회견에서 읽은 부분이 정식 입장이고, 배포한 기자회견문은 잘못된 것”으로 최종 입장을 밝혔다고 연합뉴스 측은 덧붙였다.
대책위 김병권 대표도 “수정본을 언론사에 배포해야 하는데 기자회견이 처음이라 실수가 있었다”며 “유족측 부탁을 들어 전문을 보도해 준 연합뉴스가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오해를 사게 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트위터를 통해 이어지는 ‘오보’에 대한 성토(사진: 인터넷)
타성에 젖은 언론…경각심 가져야
여전히 인터넷 상에서는 논란과 성토가 한창이지만, 어쨌든 이번 ‘오보 사태’는 유족측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현장의 발표내용과 배포된 기자회견문이 달라서 발생한 일종의 ‘기술적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엔 너무나 중요한 대목에서의 차이였기 때문에 “과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일반적으로 정부나 기업, 단체가 주최하는 기자간담회는 사전에 보도자료가 배포되고, 기사 내용은 서면으로 정리된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생전 보도자료나 기자간담회와는 인연이 없던 평범한 사람들이 준비한 기자회견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식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진 상태다.
보도자료에 오기나 오타가 있을 수 있고, 현장과 기자회견문의 내용이 다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얘기다. 애초에 민감하고 논란이 되는 사안인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재차 확인을 거친 후 보도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 오보 사태에서 연합뉴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의 기자들은 ▲논란의 여지가 될 것이 확실한 문구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고, ▲현장 발표와 기자회견문의 차이를 확인하지 않았으며, ▲차이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유가족 대책위측에 재차 확인하는 대신 정부측에 부담이 적은 주장을 채택하는 심각한 오류를 저질렀다.
안그래도 언론의 잘못된 보도 행태에 분노하고 있는 유가족들과 국민들에게 또 한번 상처를 준 것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아오기 위해 그리고 언론 본연의 자세를 다하기 위해 언론 종사자들은 좀더 경각심을 갖고 보도에 임해야 할 것이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