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기자)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지난 9일 시작된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파업이 27일로 19일째를 맞았다. 코레일 사측과 철도노조는 26일 밤부터 27일 새벽까지 실무교섭을 진행했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사측은 노조에 ‘업무복귀’ 최후통첩을 보냈고, 철도노조와 한배를 타고 있는 민주노총은 28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양측이 ‘민영화’를 놓고 맞서면서 사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철도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다는 노조와 야권 세력을 ‘양치기 소년’에 비유하는 등 민영화 논리 자체를 실체가 없는 주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노조는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을 민영화 전단계로 보고 있다.
과연 정부의 주장처럼 철도민영화는 양치기 소년이 지어낸 ‘늑대’에 불과한 걸까? CNB가 ‘민영화 늑대’의 실체를 추적했다. <편집자주>
수서발KTX 소유 공기업이 민간 매각되면 사실상 민영화
대기업계열사․외국자본, 순환출자 통한 간접지배 길 열려
박 대통령, 외국 기업에 철도 등 공공시장 개방 약속
민영화 논란은 지난 10일 코레일 임시이사회에서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을 의결하면서 시작됐다.
이사회 의결안에 따르면 신설법인 지분구조를 코레일 41%, 공적자금 59%로 확정했다. 59% 지분은 연기금 등 공공자금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만일 공적자금이 법인 출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정부기금으로 대체한다는 복안도 마련했다.
또 코레일이 흑자로 돌아설 경우 2016년부터 매년 10%범위 내에서 출자비율을 확대키로 했다.
특히 수서발 신설법인의 지분은 공기업 외 민간기업에 지분 매각을 못하도록 못박았으며, 지분매각은 코레일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토록 했다. 한마디로 코레일 산하에 또하나의 ‘공기업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민영화와는 무관하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문제는 ‘59% 지분’의 성격이다. 정부는 민영화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지분 참여(주식의 양도 매매) 대상을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으로 한정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애초 방안은 국민연금 등 70%의 공적자금과 30%의 코레일 출자로 신설법인을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수서발KTX에 출자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국민연금법 102조는 ‘국민연금기금은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관리운영하고 시장수익률이 넘는 수익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기금은 연7% 정도 목표수익률을 두고 운용되고 있다. 따라서 수서발KTX가 국민연금의 투자수익을 보장할 수 있어야 관계법령 취지에 따라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 국민연금은 수서발KTX를 통한 수익률에 자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다음으로 출자가 가능한 집단은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들이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출자는 힘들다. 결국 형편이 괜찮은 공기업이 수서발KTX의 지분 매입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 59% 지분 보유 ‘논란’
만일 대형 공기업이 수서발KTX 지분을 매입한 뒤 민영화될 경우 어떻게 될까?
현재 정부는 수서발KTX가 민간에 지분을 매각하면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민간 자본으로의 지분이전 제한’은 물론 ‘면허권 박탈’ 등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민영화를 방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서발KTX 지분을 매입한 공기업이 민간에 매각되는데 대한 안전장치는 없다. 현행 상법상 기업 매각에 특정주식 보유를 문제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서발KTX 지분을 보유한 공기업만 따로 떼내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최근 수년간 공기업 민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00년 9월 포항제철이 포스코로 민영화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한국통신공사가 KT로, 한국담배인삼공사가 KT&G로 각각 민간에 매각됐다. 고속도로관리공단·한국토지신탁·한국자산신탁·한국기업데이터·농지개량·그랜드코리아레저·안산도시개발·경북관광개발공사 등이 민영화 작업을 완료했다.
아울러 민영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인천국제공항을 비롯, 산업은행·한국거래소·우체국금융·청주공항·한국문화진흥원·한국건설관리공사·인천종합에너지 등이 민영화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2008년 8월 이후 2009년까지 총 6차에 걸쳐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각 방안에 따라 공공기관의 선진화를 위해 민영화, 통합, 폐지, 기능조정, 경영효율화 등을 추진 중이다. 특히 공공기관의 출자회사까지 개혁 대상으로 확대하면서 민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서발KTX 지분을 매입한 공기업이 민간에 매각될 경우, 수서발KTX 해당 지분은 민간 기업의 소유가 된다.
이 민간기업이 41%지분을 보유한 코레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코레일 지분을 능가하거나 코레일 다음의 2대주주 자리를 꿰찰 경우 철도경영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순환출자로 수서발KTX 지배
한편으론 순환출자형 지배구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수서발KTX 지분을 매입한 공기업을 대기업 계열사가 사들일 경우, 기업집단 그룹의 꼭지점인 지주회사를 통해 계열사 지배를 할 수 있게 돼 결과적으로 철도경영에 재벌대기업이 개입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순환출자란 한 그룹 안에서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출자규모를 늘리는 것을 이른다. A계열사가 B계열사에, B계열사가 C계열사, C계열사는 다시 A계열사에 출자하는 식으로 상호 지배하는 구조다.
대부분 재벌그룹들이 계열사를 늘리면서도 계열사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순환출자를 선호하고 있다.
삼성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 등으로 연결된 순환출자 구조로 오너일가가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 등으로 이어지는 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외국기업이 수서발KTX 지분을 이같은 방식으로 사들일 가능성이 열려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달 5일 외국 기업들이 철도시설의 감독 및 경영 조달계획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정부조달협정을 개정해 국무회의에서 기습처리한 바 있다. 국무회의 통과 하루 전날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경제인 모임 ‘메데프(Medef)’와 간담회에서 공공시장 개방 약속과 조만간 대통령 시행령 개정 의사까지 밝혔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간담회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공공시장 진입장벽 문제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는 프랑스 경제인의 질문에 “도시철도 시장개방과 관련해서는 정부조달협정 비준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렇게 되면 도시철도 분야의 진입장벽도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WTO의 정부조달협정에 가입한 국가들은 주요 정부 발주 공사입찰에 동등한 조건을 부여토록 돼있다. 이 부분을 더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펀드’ 통한 민간지분 참여 가능
한편으론 펀드에 의한 민간기업 지분 참여 가능성도 민영화 우려를 더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일단 수서발KTX 지분을 매입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펀드조성을 통한 간접참여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 경우 명칭은 ‘국민연금기금 펀드’지만 실제론 민간자본이 지분에 접근할 수 있다.
코레일의 사업타당성 분석 용역 자료에 의하면 수서발KTX의 초기 자본금은 약 50억원이며, 이후 총 자본금을 약 8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중 코레일 지분 41%에 해당하는 328억원을 제외한 472억원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 상의 공공기관’ ‘지방공기업법 제3조 상의 지방공기업’ 등을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유치할 계획이다.
공적자금 472억원 유치는 수서발 KTX 사업성을 고려할 때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돼 ‘국민연금기금 펀드’ 등을 조성할 필요가 없다는 게 코레일측 설명이다.
하지만 노조는 수서발KTX에 소요되는 초기 자금이 4000억원에 이른다며 정부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따라서 자금유치가 난관에 봉착해 채권발행이나 펀드조성 등이 시행될 경우 민간자본 참여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다 정부가 정한 수서발KTX 지분의 ‘민간 매각 금지’가 관계법령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법인 세종은 지분 매각을 위한 이사회 정족수 제한은 상법에 저촉될 소지가 높고, 면허권 제한 조처는 민간 지분 매각에 대해 ‘인허가권’을 빌미로 하는 행정처분이어서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의견을 냈다.
민간 매각을 금지하고 있는 현재의 정관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참석주주 3분의 2 이상, 전체 주식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이번에 코레일은 지분을 41%로 확대함으로써 코레일의 의사에 반하는 정관 변경은 불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상법 제335조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사회의 승인을 통해 주식 양도를 제한할 수는 있지만 주식 양도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 즉 지분처분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것.
종합하자면, 수서발KTX 지분을 사들인 공기업이 민간기업에 매각된 뒤, 해당 민간기업이 대법원 판례 등을 들어 이사회 정관을 고치고자 나설 경우 이를 막을 명분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로부터 수서발KTX 지분을 매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기업은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유치자금 공모가 본격화되면 지분을 사들이려는 공기업의 성격이 드러나게 되고, 향후 해당공기업의 민영화 여부에 따라 수서발KTX의 운명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경영컨설턴트 정세현 씨는 CNB와의 통화에서 “최근의 민영화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노조의 주장을 양치기 소년의 외침(거짓말)에 비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수서발KTX 법인설립은 철도민영화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코레일을 포함한 민영화 전반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 등 다양한 논의 창구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