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동네에 무답시 공장바람이 불어갖고 주민들 마음이 시방 뒤숭숭허요”
소각로 공장과 관련, 사이버반대투쟁과 문화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서재환씨. 도무지 이 낯선 ‘투쟁’이라는 단어하고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농부 서재환씨의 가슴속에는 지금 천불이 난다.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 소각로 공장 건립에 주민들이 반발하는 까닭은 공장예정부지의 타당성이 가장 큰 이유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한 중간에, 그것도 어른 두 명이 겹쳐 잡아야할 만큼 우람한 적송군락이 자생하고 있는 곳에 굳이 공장을 건립하겠다는 게 짧은(?) 시골사람들의 식견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쌔고 쌘 땅 중에 해필이면” 백로가 찾아와 노니는 그곳에다 공장을 짓겠다고 나선 업체의 의중을 주민들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주민들은 그곳 청암리가 고향인 사업자를 찾아가 항의도 해보고 광양시장을 찾아가 하소연도 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답답한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사업자가 공사를 방해할 경우 법적절차를 밝아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몇 대를 살아온 마을이 망가지는 꼴을 볼 수 없었던 주민들도 온몸으로라도 막겠다며 급기야 거리로 몰려나온 상황이다.
이 마을 토박이자 텃밭도서관 지킴이 서재환씨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투쟁’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바깥세상을 향해 도와달라고 하소연하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학창시절 당시 꽤 괜찮은 농업전문학교까지 마친 서재환씨는 ‘영 도시생활이 입맛에 맞지 않아’ 군 제대 후 고향에서 줄곧 농사를 지어왔다. 고향에 정착한 서씨는 그러나 여느 농부와는 달리 농촌마을 문화소외에 대한 관심이 컸다. 수년간 ‘바구리봉’이라는 마을신문을 혼자 기사 쓰고, 편집하고 발송하는 일인 다역을 마다 않고 발간, 농촌마을 소식을 바깥에 전했다.
지난 1981년부터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된 마을문고 운영을 주도하기도 했고, 아예 읽을거리가 변변치 않았던 시골아이들을 위해 ‘이동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때 당시 이동도서관의 수단은 경운기였다. 물론, 이 경운기 이동도서관 운전기사도 서씨였다.
서씨는 2005년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주민밀접 지역과 문화소외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문화생활공간 조성대상 사업자를 모집에 사업자로 선정돼 정부 지원으로 현재 텃밭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텃밭도서관엔 30여 년에 이르는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책 1만6천권을 소장하고 학생들의 공부방으로, 농민들의 농사기술의 장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휴게실로 자리 잡고 있다. 뿐만아니라 텃밭도서관은 문인들과 예인들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농촌을 체험하기 위해 많은 도시민들이 찾고 있는 종합농촌문화공간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광양시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서씨는 이런 경험을 지역적 특성상 전라도와 경상도가 뒤섞인 독특한 광양사투리로 풀어내 <오지게 사는 촌놈․ 전라도닷컴 출판>이라는 책을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탓에 이 텃밭도서관과 고향은 단순히 살다가 갈 공간이 아닌, 그 자신의 지난날과 땀, 추억들이 모두 녹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 어느 날 산을 허물고 공장을 짓겠다고 나섰으니 그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안된다. 도와달라"고 생전 해 본 적없는
부탁을 하고 다니는 일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재환씨는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농촌에서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뼈져리게 느낀다. 공사를 한다고 했다가 연기하고 또 연기하는, 김빼기 하는 업자들의 의도대로 주민들은 지쳐만 가고 있다”며, “갑자기,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