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선진당 비례대표 명단보고 실망… 이건 사기다”

  • 고유번호 : 627
  • 작성자 : 전원책펌
  • 작성일 : 2008-05-09 13:44:57
선진당 비례대표 명단보고 실망… 이건 사기다”
(경향신문 2008년 5월 8일자 기사)

ㆍ대변인직 나흘만에 그만뒀던 전원책 변호사

“먹던 우물에 침뱉고 싶지 않다.”

지난 대·총선거에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와 자유선진당 창당에 맹활약했던 전원책 변호사(53)는 이런 말로 인터뷰를 고사했다. 하지만 최근 각 당의 비례대표 문제가 불거지면서 선진당 비례대표 명단이 발표되기 전날, 당과 결별한 그의 속내가 궁금했다. 최근 그와 함께 활동했던 이상돈 교수(중앙대 법대)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원책과 나 그리고 자유선진당’이란 글에서 이회창 총재에 대한 실망과 비례대표 선정을 둘러싼 의혹을 제기했다. 북핵문제, 군 가산점 등에 대해 거침없는 강경 보수발언으로 ‘전 거성’ ‘전 본좌’ 등으로 어록이 회자되고 팬클럽까지 결성된 전 변호사. 그는 자유선진당에서도 거침없는 발언과 회의 중 책상을 뒤엎는 등의 행동으로 ‘무법자’ ‘장고’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자유선진당의 입(대변인)이었던 그가 고작 나흘 만에 입을 닫아 한국 정당사상 최단명 대변인이 된 이유를 들었다.



- 전 변호사·유석춘 연세대 교수와 더불어 자유선진당 창당에 앞장섰던 이상돈 교수가 쓴 칼럼이 화제입니다. 이 교수는 이회창 총재가 지지자들에게 고마워할 줄 모른다면서 ‘당에서 비례대표는 공천헌금 케이스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이를 암시하는 당직 인사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십억원을 당에 헌납한 친박연대의 양정례 후보 같은 경우가 선진당에도 있나요.

“저는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이 총재에게 창당에 주역을 한 강삼재 전 의원, 가장 합리적 보수학자인 유석춘 교수, 환경법전문가인 이상돈 교수 등을 배려해달라고 간청했고 곧바로 대변인에 임명되어 저는 제 제안을 수용한 줄 알았습니다. 비례대표라는 것이 지역구의원보다 더 당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분들인데 막상 명단을 보니 이영애·조순형 외엔 3번부터는 거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어 너무 실망했습니다. 그들이 과연 자유선진당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한국의 보수를 위해 무슨 투쟁을 했는지, 어떤 정책을 펴고 어떤 일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이들이라 납득하기가 어렵더군요. 제 제안이 거절되어서가 아니라 다른 분들과 정통보수당을 함께 할 명분이 없어져 사퇴한 겁니다.”

- 이 교수는 방송기자클럽 토론에서 공천헌금을 받으면 교도소에 가게 되어 있다고 한 이 총재의 말이 무척 걸린다고도 했는데.

“그건 이 교수의 생각이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보다는 다른 공식과정을 통해 제대로 문제가 제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천헌금 문제는 당의 장부나 계좌추적 등을 해보면 진실이 밝혀지겠지요. 이번에 정당을 만드는 데 참여하며 느낀 것이 정치판에 돈이 너무 흔하다는 겁니다. 왜 정치인들은 호텔 등 값비싼 곳에서만 밥을 먹는지, 왜 종이 한 장 아끼려는 이들이 없는지 돈의 낭비가 너무 심하다는 걸 이번에 목격했습니다. 각 당에서 운영하는 정책연구소에서도 그 많은 인원이 제대로 된 보고서나 책을 만드는 것도 못봤어요. 보수정당이라면서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이념이 뭔지를 정리해 국민을 납득시킬 책 한 권 낸 곳이 없어요. 부동산정책도 마찬가지죠.”

- 이회창 총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건가요.

“전에 이상돈·유석춘 교수와 함께 ‘대한민국의 내일을 걱정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이명박의 도덕성에 좌절했고 박근혜의 무능함에 실망해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유능하다는데 공약에도 대운하 말고 내세운 정책이 있습니까. 청계천이 전시행정의 전형인 ‘거대한 어항’ 만들기였다면, 대운하는 ‘국토 배 가르기’란 매우 천박한 발상입니다. 부도덕한 이명박 후보나 부패한 정당인 한나라당에서 보수정치를 할 수 없기에 마침 이회창 총재가 정계복귀를 선언해 도와드리기로 한 겁니다. 당시엔 이명박 후보가 도덕성 문제로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이 총재는 지난 선거를 통해 대가를 치렀고 도덕성에서 우위라고 생각했거든요. 또 유세만 다녀오면 너무 자신만만해 하셔서 뭔가 대안이 있나보다 짐작만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게 환호하는 지지자들이 놓아주는 ‘유세 뽕’이라고 우스갯소리도 합니다만….”

- 그런데 왜 이 총재와 결별하셨나요.

“저희의 이상이 너무 높아서였겠지요. 저를 비롯한 두 교수들은 정말 정직하고 건강한, 그리고 합리적인 보수층을 집결해 제대로 된 정치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밤새 연구하고 공부해서 많은 정책을 제안했습니다. 예를 들어 핵 자유권을 갖자, 7대 범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든 범죄는 전과말소를 해주자, 국민연금을 폐지하자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핵 자유권의 경우, 후보시절에 공약으로 발표해야 나중에 당선되어서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 핵을 보유하겠다는 강한 주장을 할 수 있어 다른 후보들도 따를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또 외환·내환·살인·강도·강간·마약·조직폭력 등 7대 범죄를 빼고는 모두 전과 말소해 수사권에서도 활용하지 못하게 해서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거듭나 국민통합개혁을 하자는 겁니다. 7대 범죄자라고 해도 원하는 이들은 심의를 통해 구제를 해주고요. 전과 14범인 이명박 후보도 아마 투표장에서는 이 총재를 찍을지도 모른다는 농담까지 전했죠. 국민연금 역시 연금이 투자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쓰이니 국가성장 파이를 키우는 데 저해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최저생계형 가구는 국가가 보조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부터는 민간보험회사에 이관하는 새 제도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이 총재도 흔쾌히 그 정책들을 검토하고 자료를 읽어보셔서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정작 현충사 기자회견장에서는 ‘나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말만 하시더군요.”

- 전 변호사를 비롯한 동지들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자유선진당을 떠난 건가요.

“저희는 그렇게 편협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들 각 분야의 전문가이고 교수, 변호사란 직업도 있고 제 경우 현실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계속 주장해와서 국회의원 자리에 욕심도 없었습니다. 유석춘 교수의 경우엔 한나라당과 친분이 두텁고 이 교수는 워낙 전문가여서 다른 곳에서도 영입제안이 왔을 겁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신청서를 왜 안 넣었느냐’고 되묻더군요. 당의 전권을 가진 분이 신청서 타령만 하는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한나라당과 차별화되는 새롭고 깨끗한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당이 김혁규씨 등을 영입하거나 제대로 된 정책이 없다는 게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발기인대회 현장에 가보고 ‘이건 사기다!’란 신음이 나오더군요. 또 대선 후에는 분명히 자신은 집(자유선진당)만 지었을 뿐이고 새 주인이 들어와 집을 운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분명히 울타리 역할만 해주시고 새 주인에게 의사 결정의 전권을 주실 것’에 대한 확답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영애 의원(비례대표 1번)을 비롯, 정운찬 전 총장을 만나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많은 노력을 했는데 정작 본인이 총재 겸 대표의원도 맡으시니 할 말이 없습니다. 또 저는 창당 작업만 도왔지 당원이 아니어서 더 이상 자유선진당과 아무 연관이 없고 앞으로도 이회창 총재를 뵐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 잠시지만 한국 정치판에서 일한 소회랄까요, 또 정치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우리 민주주의의 비극을 봤습니다. 의회를 구성할 의원 후보를 뽑는 절차가 하나 같이 시민들과는 동떨어져, 후보들이 몇몇 당료들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어요. 이래서는 국회의원이 된 자들은 더이상 선량(選良)이 아닙니다. 도대체 민주주의를 하는 어느 나라에서 이런 해괴한 작태가 벌어지고 있습니까.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자들은 중앙당에 공천 신청을 하고, 권력을 잡고 있는 몇몇 당료들이 그들 입맛에 맞는 공천심사위원이란 자들을 데려다가 심사를 합니다. 그런데 공천심사하는 분들은 지난 진보좌파 정권 동안 무슨 일을 한 분들인지, 그분들이 과연 보수의 이념과 정책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그 분들은 과연 보수의 핵인 도덕성에 남보다 충실한 분인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인지…. 저는 이런 것들이 무지 궁금합니다. 또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법을 너무 모른다는 겁니다. 헌법 전문조차 제대로 읽어본 의원이 없고, 정당인들 가운데도 자기 정당의 당헌당규를 완벽히 숙지한 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제발 국회의원들이 공부 좀 했으면 합니다.”

- 스스로가 ‘보수’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대표적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에 글을 쓰지 않는 문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그는 등단한 시인이다), 군가산점제도에 대해 강력한 찬성 발언을 해 남성팬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선 굉장한 페미니스트라고 하고, 또 어떤 분야에선 깜짝 놀랄 만큼 진보적이라고 하던데, 본인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대한민국에서 보수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전 보수주의입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해 이 나라에서 소위 ‘지식인’이라 불리는 자들은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보수주의는 수많은 시민들의 피를 그 대가로 치렀습니다. 인간의 기본권과 주권재민의 원칙을 얻기 위해 프랑스혁명 기간 무려 20만명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성직자와 귀족 계급에 저항하여 시민들을 이끈 이들은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법률가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백과사전을 통해 프랑스 시민들을 계몽하였고 마침내 왕권을 무너뜨렸죠. 파리 시내에 사는 ‘성(城)안 사람’이란 뜻의 부르주아들은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했고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바로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 이런 도덕성을 갖춘 보수주의자, 특히 보수정치인이 있을까요.”

- 혹시라도 이회창 총재를 만나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습니까.

“아직도 궁금합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 ‘BBK 때문에 나오신 건 아니죠?’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셨는데 정치에 복귀한 진심이 뭔지, 또 왜 저희가 만든 정책들을 수용하질 않고 약속을 어겼는지 여전히 이해되지 않거든요. 물론 제가 먼저 만나자고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유인경 선임기자 |사진 김세구기자>

리스트
123
 
배너

섹션별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