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을 가진 도시는 번영의 중심이 된다.”
이 짧은 문장은 인류 문명사를 관통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진리다. 항만은 단순한 물류의 통로가 아니라 문명의 심장이자 확장의 혈관이었다. 육지의 문명이 땅 위에 울타리를 세웠다면, 해양문명은 바다를 통해 울타리를 넘어섰다. 그리고 언제나, 바다를 품은 도시는 문명을 낳고 번영을 이끌어 왔다.
기원전, 지중해의 페니키아인들은 티레와 시돈이라는 작은 도시항만을 거점으로 지중해 전역을 연결했다. 그들의 번영은 군사력보다 교역과 기술, 신뢰의 항만 네트워크로 세워졌다. 아테네는 피레우스 항을 통해 에게해를 지배하며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고, 로마는 항만을 통해 지중해 전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로 만들며 해양경제 중심을 하나로 통합했다.
베네치아는 금융·무역·문화의 교차점을 이루며 유럽의 질서를 주도했다. “바다를 잃는 것은 곧 국가를 잃는 것”이라는 베네치아 상인의 신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명적 진리다. 근대 이후에도 로테르담, 싱가포르 같은 도시는 ‘항만=국가 경쟁력’의 등식을 현실로 증명했다. 이 모든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단 하나다. 항만은 번영의 상징이자 문명의 기초 인프라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역사의 다음 장을 부산에서 다시 쓰려 하고 있다.
북극항로, 부산글로벌허브도시 실현의 연장선
얼마 전 읽은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의 저서 『대한민국, 마지막 기회가 온다』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는 “대한민국이 북극항로 거점항만을 가진 나라가 된다면 천년에 한 번 올 국가 번영의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 단언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부산과 동남권이 있다.
부산항은 이미 세계 2위 환적항으로 성장했으며, 북극항로 개척과 함께 신(新) 해양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 물류 도시임에도, 엄밀히 말해 부산은 아직 ‘글로벌 거점 항만도시(Global Hub Port City)’는 아니다.
거점항만이란 단순 환적지가 아니다. 기술과 금융, 산업과 문화가 융합되어 자본과 지식이 축적되고 재생산되는 도시를 의미한다.
즉, 사람과 아이디어가 머물고 성장하는 도시가 되어야 비로소 문명의 거점이 된다.
이런 점에서 부산시가 줄기차게 추진해온 ‘부산글로벌허브도시’ 전략은 21세기 해양문명 시대의 정답에 가장 근접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트라이포트 전략, 도시 대전환의 설계도
박형준 부산시장은 취임 이후 “항만·공항·내륙물류가 결합된 트라이포트(Tri-Port) 도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 왔다.
그는 “가덕신공항을 축으로 물류혁신이 완성되면 부산은 단순 환적항이 아니라 재제조·재생산이 가능한 글로벌 가치사슬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유입되는 자본은 부산을 동북아 금융 중심지로 끌어올리고, 그 위에서 산업·관광·문화가 함께 숨 쉬는 글로벌 복합도시가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구상이 실현될 때 부산은 북극항로 시대를 선도하며 세계 문명지도를 새로 그리는 주체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산업과 과학, 그리고 문명의 결합
21세기 도시경쟁력은 군사력이 아니라 데이터, 기술, 그리고 혁신 생태계가 결정한다.
부산은 지금 그 전환점 위에 있다. 스마트항만 실증, 해양모빌리티 테스트베드, 청정수소 항만 등 미래형 인프라가 속도감 있게 구축되고 있다.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BISTEP), 부산테크노파크, 지역대학과 연구기관들은 지산학(地産學) 융합 생태계를 확대하며 기술 기반 해양문명도시로의 전환을 견인하고 있다.
과거 베네치아가 금융과 무역으로 유럽 문명을 재편했다면, 부산은 기술과 혁신으로 동북아의 해양질서를 새로 쓰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해양문명 전략이다.
부산 메갈로폴리스: 남부권에서 대한민국 전체로
부산글로벌허브도시이자 북극항로 거점도시 부산의 비전은 ‘부산만 잘 살자’가 아니다.
동남권과 남부권 전체가 함께 도약하는 국가 균형발전의 새로운 축을 세우는 일이다. 인구 800만 명의 부울경 메가시티는 조선·기계·에너지·디지털 등 특화산업을 중심으로 남부경제 순환벨트를 형성하여 지역주도 혁신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이 모델이 완성되면 수도권 일극체제의 한계를 넘어 대한민국은 양축형 국가성장 모델로 진화할 수 있다. 이는 국가균형발전 전략인 4극3특 체제를 선도하는 길이기도 하다.즉 부산 메갈로폴리스는 부산 한 도시의 도전이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문명 전환의 실험이다.
부산에서 다시 뛰는 문명의 심장
21세기 인류 문명은 다시 바다로 향하고 있다. 바다는 새로운 에너지의 보고이며, 데이터의 길이자, 인류의 생태·기후·식량문제를 해결할 미래의 무대다. 그 중심에 부산이 있다. 부산은 산업과 항만, 과학과 인재,그리고 시민의 삶이 함께 맥박치는 문명의 심장 도시다.
그 심장은 북극항로의 바다 위에서도, 연구소의 실험실에서도, 그리고 시민의 일상 속에서도 뛰고 있다. ‘부산 메갈로폴리스’는 과거의 영토적 제국이 아니다. 지식과 기술, 문화와 연대가 흐르는 네트워크 제국, 21세기형 해양문명의 수도다.
항만을 가진 도시는 미래를 만들고, 문명을 가진 도시는 인류를 이끈다. 그리고 그 미래의 심장이 지금, 부산 메갈로폴리스에서 뛰고 있다. <김영부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