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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저 같은 외국인에게 한국어의 재미 알려주고 싶었어요.”

한국 비속어 책 쓴 미국인 피터(Peter N. Lip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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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우인기자 |  2009.05.14 02:03:39

▲[사진=이우인 기자] ▲ 피터(Peter N. Liptak) 씨

“저기요. 죄송한데 앞에 자리가 좁아서 앉을 수가 없어요. 의자 좀 뒤로 빼주세요.”

이태원의 모 커피전문점.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손님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금발의 외국인. 이태원에 자주 방문하는 나에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을 보는 일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와우, 한국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나도 모르게 칭찬을 했더니, 가방 한 아름 넣어둔 책을 하나 꺼내 보인다. 책의 제목은 [AS MUCH AS A RAT S TAIL]. 우리말로 바꾸면 [쥐꼬리만큼]이란 다소 외국인이 쓰기에는 부자연스러운 비속어였다. 그의 가방 속에는 같은 책이 20권은 족히 들어 있었다. 책을 파는 외판원일까 생각하는 찰나, 그는 자신이 쓴 책이라고 소개하며 환하게 웃는다. “이거 정말 당신이 쓴 책이에요?”라고 놀라 물었더니, “다음 주에 미국과 국내 대형 서점에서 판매될거예요”라며 어깨를 들썩인다. 왠지 재밌는 외국인인 것 같다는 기자의 호기심이 발동해 명함을 내밀었다.

일주일 뒤, 우리는 이태원에서 또 다시 만났다. 이날은 우연히 만난 한국인과 외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이 외국인에게 흥미를 갖게 된 기자와 신출 작가의 인터뷰 자리였다.

그의 이름은 피터(Peter N. Liptak). 국적은 미국이다. 대학원을 다닐 무렵, 한국인과 결혼한 삼촌의 권유로 우연히 한국으로 온 지가 벌써 13년 반이라고 한다. 13년 반이라는 말에, 그가 한국어를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단 번에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체류 기간에 비해서는 실력이 많이 늘지 못했어요”라며 자신의 짧은 한국어 실력을 부끄러워한다.

1995년 한국에 처음 온 피터는 한 영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3개월 만에 그만둬야 했다. 강사에 대한 학원의 횡포가 심했다고 손사래를 치는 피터. 당시의 기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애초부터 한국에 관심도 없는데다 한국어 역시 한 마디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타국에서 이처럼 모진 일을 당할 때는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을 텐데, 피터는 한국에 남았다. 그는 이후 TV보조출연ㆍ광고 카피ㆍ영어 개인 과외 등 다양한 일을 찾아내며 한국 생활을 지속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한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까지 펴냈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인 [EXILE PRESS](www.exilepress.com) 역시 피터가 스스로 세웠다. 그는 한국 체류 13년 반 만에 작가 겸 CEO라는 명함을 달았다.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AS MUCH AS A RAT S TAIL]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어의 다양함과 재미를 알려주고 싶어 쓰게 됐다. 어째서 [쥐꼬리만큼]이란 제목을 쓰게 됐을까?

“한국어를 잘 몰랐을 때, 저와 같은 외국인과 택시를 탄 적이 있어요. 그런데,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외국인이 ‘쥐꼬리만큼’이란 말을 사용했어요. 그 말을 들은 기사는 외국인이 그런 말도 할 줄 아냐며 재미있어 했죠. 그때, 이런 비속어들이 한국인과 외국인의 사이를 좁혀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런 목적을 갖고 [쥐꼬리만큼]이란 비속어를 책의 제목으로 사용하게 됐죠.”

책 속에는 ‘당근’ ‘쥐꼬리만큼’ 등 다양한 우리나라의 비속어가 들어 있으며, 이에 알맞은 영어로 상황 설명과 함께 번역돼 있다. 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영어 비속어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피터. 내용은 비속어를 다뤘지만, 챕터가 바뀔 때마다 뜻 모를 영어 문장이 피터가 자작한 시(詩)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을 작가도 CEO도 아닌 ‘시인’이라고 소개할 만큼, 시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사람이었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시인은 가난의 상징이기도 하다. 피터는 시를 쓰기 위해, 돈을 벌고 책을 펴낸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시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그의 눈동자에 가득했다.

“더 풍부한 한국어를 공부해 사자성어, 속담 등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알리기 위한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책을 펴낸 작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한국어가 어렵다는 피터에게 앞으로의 각오를 들어봤다. 출판 업계가 어려운 요즘, 피터가 외국인 최초로 한국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킬 그날을 기대해 본다.

장소: 'TOM N TOMS' 이태원점/ 인터뷰 협조: 방송통신대 재학 중인 최지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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