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부기자 |
2024.12.04 10:51:47
현대미술 작품 전시가 넘쳐나는 요즘, 무엇보다 눈여겨 봐야 할 전시는 고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이는 작가의 전시다. 작가에게 작품의 변화는 고통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진리의 길(ROAD)이기 때문이고, 감상자에겐 현대미술의 가치를 제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몇일 남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오는 8일까지 서울 용산에 위치한 '화이트스톤 갤러리(WHITESTONE GALLERY)'에서 진행하는 정해윤 작가의 솔로(SOLO) 전시를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그 전시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변화, 즉 작가가 "새로운 시리즈"를 발표하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정해윤의 "새로운 시리즈"는?
이번 전시의 주제와 소제목은 "평화를 살 수 있다면(IF YOU CAN BUY PEACE, 소제목 : ROAD)"이다. 작업도 전혀 새로운 재료인 '인조잔디'를 선택해, 자연을 재해석함으로 평화로운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정해윤 작가는 "이번 신작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존재가 존재감 있는 대상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고 그 평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라고 언급했다.
작업 방식과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흔한 소재를 찾기 위해 인조잔디를 선택함으로써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은유적으로 극대화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예술작품으로 거듭나는 일련의 행위들 즉 자연을 재해석한 평화로운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라 존재감 있는 특별한 대상, 유일무이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인간 관계'에서 '자연의 평화'로
아도르노의 미메시스 세계관
사회적 부정을 통한 "자연으로의 동화"
작품의 주제에서도 변화가 두드러졌다. 기존 '박새' 작업이 "사회적 인간 관계에 집중"한 작업이라면, 이번 새로운 시리즈는 '(사회가 아닌) 자연의 평화'로 광범위하게 그 경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변화의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정해윤 작가의 신작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도르노의 미메시스 세계관'이 오버랩된다. 루카치의 미메시스가 '사회적 모방'이라면 아도르노의 미메시스는 '인간과 자연이 화해'된 상태를 의미하는 더 원초적이고 광범위한 관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회의 부정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화해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는 아도르노의 세계관과 정해윤 작가의 이번 신작은 많이 닯아 있다.
정해윤의 新作이 주는 가치는?
사회적 부정에 근거한 자연의 동화
그렇다면 정해윤 작가의 이번 "새로운 시리즈"의 가치는 무엇일까? 기존 '박새' 작업이 루카치식 사회 안에서의 미메시스라면, 이번 '인조잔디' 작업은 사회를 넘어 자연으로 향하는 아도르노식 미메시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신작은 초월적 자연을 재현한, 사회와 동떨어진 모더니즘적 작품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의 사유를 통한, 그 "사회적 부정"에 근거한 "자연의 동화"가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것을 작가는 "평화"로 귀결되는 길(ROAD)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고통스런 예술의 길이 평화를 찾아가는 "자연과의 동화"라는 점이 이번 신작의 큰 가치다.
정해윤 작가는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길(ROAD)의 가치를 이처럼 표현했다.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이라는 주제 속에 소제목 Road (길)이 뜻하는 바는 희망을 찾아가는 용기있는 과정입니다. 어둡고 두려운 숲을 스스로 헤쳐 나갈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그것이 스스로 성숙되어 가는 과정이며 평화로운 지점에서 어느 순간 뒤돌아 보면 두렵기만 했던 그 길들이 아련하게 안도의 웃음짓게 되는 나의 소중한 노력의 발자취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네요."라고.
(CNB뉴스=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