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부기자 | 2024.11.28 10:39:42
사비나미술관에서 '붉은 산수'로 유명한 이세현 작가의 개인전이 "빛나고 흐르고 영원한 것"이라는 주제로 지난 27일 오픈했다. 2025년 1월 1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중요한 전시다. 이세현 작가의 작품이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26일 하루 먼저 작품과 작가를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미술관에서 오픈한 이번 전시는 이전 이세현 작가의 전시와 달랐다. 사실 유명한 작가일수록 변화가 두렵고 힘든 법이다. 그래서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작가가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현 작가는 과감하고 용감하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세현 작가의 작품을 작년(2023년) 독일 베를린 전시에서 만난 적이 있다. 해외에서 감상하는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는 거대한 작품 속에 한국의 아픈 역사가 흐르고 있어서 당시 필자에게 숭고한 느낌마져 주었다. 이세현 작가는 그의 대표 연작 '붉은 산수'에서 주로 분단 현실, 이념 갈등, 정치, 사회적 이슈를 개인적 서정과 경험을 담아 한 화면에 조합해 거대하고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불은 색이 주는 '금기', 한국전쟁과 분단 이후 금기의 색이었던 붉은 색과 그의 그림, 부정적일 수 있는 전쟁, 핵무기, DMZ , 휴전선 등은 그의 작품 속에서 강렬하게 서로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제 이세현 작가가 달라졌다. 그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실의 부정적 요소를 넘어 영원한 가치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너무 보편적이 되는 것이라고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순수 상상계가 아닌 탈상징계적 상상계
빛나고, 흐르고, 다시 영원한 것으로의 회귀
잠시 라캉의 이론을 빌려 본다면, 상상계 자체는 의미있는 순수한 작가의 세계이지만, 상징계를 거친 탈상징계적 상상계는 이전의 상상계와는 차원이 다르다.이세현 작가의 이번 전시 주제, '빛나고 흐르고 영원한 것'은 마치 상상계에서 탈상징계적 상상계로 넘어가는, 그의 작품 인생 전체의 네러티브를 보여주고 있다.
'빛나는 것'은 처음 그의 '존재'가 상상계적인 시작이었다면, '흐르는' 역사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상징계의 모습을 띄고 있다. 마치 투사처럼 치열하게 역사를 다뤄 본 이세현 작가가 다시 선택한 '영원한 것'은 이전의 '빛나는' 것과 다시 조우한다. 하지만 이세현 작가는 그 이전의 '빛나는' 존재의 그 이세현이 더는 아닌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영원한 것'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사비나미술관 전시가 의미있다.
이세현 작가와 커피를 마시면서 한 테이블에서 가까이 작가의 얼굴을 바라보니, 여전히 잘생긴 얼굴에 훤칠한 몸매를 갖고 있었지만, 예전과 다르게 강렬한 투지보다 작가의 연륜에서 나오는 깊이와 통찰력이 느껴졌다. 작품과 작가가 다를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달라졌다는 것인가?
이세현 작가는 25세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했다. 작가는 필자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님이 생전에 자유로워지고 싶으니 화장을 해달라고 말씀하셨다. 화장하는 장면을 바라보다가 (당시엔 가족들이 화장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풍습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너무 슬퍼서 잠깐 밖으로 나와 들판에 앉았다. 그때 가을 들꽃들이 들판 가득히 피어 있어서 어머님의 시신이 불타고 있는 고통스런 순간인데도 나도 모르게 꽃향기가 가득하여 아름답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작가에게 고향 거제도와 어머니는 상실의 고통과 그리움의 총체를 의미한다. 작품 속에서 고향은 존재의 시작과 정체성의 뿌리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생명의 시작과 끝은 연결하는 순환적 존재로 구현된다. 고향과 모성을 잃은 작가를 위로하는 대체물은 우주, 별, 고향의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다. 여기서도 이번 개인전의 주제 '빛나고 흐르고 영원한 것'과 다시 맞아 떨어진다.
이세현 작가는 과거에 그리던 '붉은 산수'의 이미지들을 자연 이미지로 덮어 가리고 있다. 덮고 가리는 작업이 그의 작품을 변화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꼭 봐야 하는 이세현 작가의 드로잉
붉은 산수 연작의 시작점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이세현 작가의 드로잉도 사비나미술관 4층에서 전시하고 있어서, 이번 전시가 더 의미있다. 30점의 연필 드로잉은 작가의 '붉은 산수' 연작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사비나미술관 학예사는 작가의 드로잉과 관련해 "연필 드로잉에 담긴 한국의 산과 들의 풍경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정서를 담아내며 자연과 인간의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존을 제시한다. 붉은 산수 연작의 시작점으로서 화면 구성과 자연의 정수를 탕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자연이 가진 생명력과 영속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현대문명에서 상실된 생명성과 평화를 회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드러낸다."라고 설명했다.
아티스트 토크, 12월 6일 오후 3시 열려
이세현 작가는 누구?
이세현 작가의 변화에 대해 실제 진실을 알고 싶다면,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방법이 가장 좋다. 오는 12월 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50명 선착순 사전예약 방식으로 심층토크가 진행될 예정이다. 장소는 사비나미술관 2층 전시장이다. 주제는 "이세현 작가와 붉은 산수의 변화된 작품 세계에 대한 심층 토크"다.
이세현 작가(B.1967)는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 첼시예술대학교 대학원을 마쳤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24년 독일 쾰른의 미하엘 호어바흐재단, 2023년 독일 베를린의 BERMEL VON LUXBURG GALLERY, 2020년 싱가폴과 서울의 더 컬럼스 갤러리, 2019년 노르웨이 베르겐 쿤스트 홀 314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CNB뉴스=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