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문화 속에 포함된 키워드 몇 개가 머릿속에 남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는 중국 SF 소설가 류츠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의 상대성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교수의 딸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외계인에게 우리 문명이 자정능력을 잃었으니 찾아오라는 답장을 보낸다. 상상 속의 이야기이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해왔고 어떠한 미래를 꿈꾸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다른 키워드는 ‘얄루’이다. IBK기업은행이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얄루, YALOO’ 전시를 열고 있다. 영어로 발음이 비슷한 다른 스펠링의 얄루(Yalu)는 압록강을 의미한다. 경기도미술관 앞 잔잔한 물 위로 꽃 모양의 조각상이 있었고, 화랑호수가 펼쳐져 있었으며,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념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미륵 소설가가 쓴 자전 작품 ‘압록강은 흐른다’도 떠올랐다.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이미륵 작가는 독일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작가로 성공했지만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50년 뮌헨에서 타계했다. ‘압록강은 흐른다’ 속 압록강은 따뜻하고 정겨운 고향이지만, 현재의 압록강은 깊은 고통이 더 많은 곳이지 않나.
중국과 대만, 한국, 북한, 일본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앞으로 어떤 행복한 미래를 지향해야 할까. 압록강을 건너서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그린 송중기 배우 주연의 드라마 ‘로기완’이 현재 모습임을 기억한다면, 우린 아직 슬픈 균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게 맞을 것이다.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이전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발발했던 한국전쟁에 중국이 북한의 편에서 적극적으로 참전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뿐만 아니라 다른 유엔 국가들과도 싸운 과거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당시 한국전쟁에는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에티오피아, 캐나다, 태국, 터키, 필리핀, 콜롬비아, 호주도 한국을 위해 땀과 피를 흘렸다.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바라봤을 때, 이 지역 공동체의 평화와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한국전쟁이 촉발된 과정에 대한 정치·외교적 평가가 국가마다 다르겠지만, 유엔 헌장에 기초한 윤리성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게 적합한 나침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엔 회원국이라고 하더라도, 국가별로 법과 문화적 차이를 갖고 있다. 정치·외교적 입장도 조금씩 다르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보다 효율적인 생산과 공정한 분배에 기초한 행복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다가 판다가 생각났다. 우리나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삼성물산 리조트 부문)에서 태어난 판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고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홍준표 대구광역시장도 판다를 더 들여오겠다고 했다. 판다는 무척 귀엽고 친근한 동물이다. 사람에게 끼치는 위협도 적다. 판다의 동물권과 중국,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비교했을 때 어떤 균열이 느껴졌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 대만에 사는 사람들도 자신의 처지가 판다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보편적 생명에 대한 가치 인정은 동양의 고유한 철학이며 사상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양 체제의 이식 과정 속에서 동양 고유의 가치를 살짝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내 방 책꽂이에서 더 꺼냈다.
‘생활선의 열쇠’라는 책이다. 이 책은 1933년부터 2013년까지 살았던 정혜법사가 집필한 책이다.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하북성불교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분이다. 생활선을 제창하며 생활 속에서 수행하고, 수행 속에서 생활하자는 기치를 내걸었다. 이 책에는 우리 개체 생명은 전체 세계이고, 개체 생명은 부처와 똑같이 존귀하고 장엄하다는 내용이 있다. 이상적인 무릉도원, 민주주의, 공유경제의 표현이지 않을까.
‘생활선의 열쇠’는 중앙대학교 도서관장이었던 이명한 교수(중앙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번역한 책이기도 하다. 이명한 교수는 국립대만대 철학연구소에서 석사, 중국 문화대 철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다. 대학에 다닐 때 이명한 교수와 친하게 지내며 보이차를 마시고, 선배들과 함께 한용운 시인, 이태준 작가 생가에도 방문했다. 공자의 전통학파로 ‘논어’ ‘맹자’ ‘대학’ 등도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학부 시절 마지막 애제자라는 추억도 떠올랐다.
동북아시아 내의 균열과 파열, 아픔이 인간과 판다, 부처 같은 보편적인 생명의 존귀함을 기준으로 봉합되길 기도한다.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판다, 부처라는 개념 그 자체의 표상과 상정, 그 기능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그런 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CNB뉴스=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