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의 호반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아트스페이스 호화가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궤적을 이끌어온 4인의 작가 최명영, 심문섭, 김춘수, 장승택과 함께 특별기획전 ‘시대공명’을 개최한다.
호반문화재단 측은 이번 전시가 오는 2월 2일부터 3월 17일까지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빌딩에 있는 아트스페이스 호화에서 개최되며, 회화, 조각 등 20여점의 작품을 전시한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작업 주제, 미학은 상이하지만 작품을 한 데 조망해 한국 현대미술사의 주요한 경향인 단색조 회화부터 이에 영향을 받은 추상미술의 정체성과 흐름을 되짚어본다. 시대를 관통하는 4인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시간의 중첩, 행위의 반복과 겹겹이 쌓아 올린 층위를 통해 깊은 공명을 선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서두를 여는 최명영(1941년 출생) 작가는 단색조 회화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미술단체인 오리진(Origin)과 아방가르드협회(AG)의 창립 멤버로 활약하며 흐름을 이끌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평면의 한계와 회화적 실존에 대해 탐구해왔다. 1970년대 이후부터 지속해 오고 있는 ‘평면조건(平面條件)’ 연작은 화면 위에 확장과 환원의 개념과 예술적 통찰을 담아 유한과 무한의 공간을 내재화했다.
심문섭(1943년) 작가는 한국 모더니즘의 조각의 선구자로 AG 운동을 함께 이끌었다. 197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조명받으며 전통 조각 개념에 반하는 반(反)조각을 주창하며 전위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그는 조각, 설치, 사진,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아우르며 물성과 시간성에 관한 작업 주제에 천착했다. 조각 작업에서 흙, 돌, 철, 나무와 같은 자연에 뿌리를 둔 재료들을 사용해 작가의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해, 인간과 자연간의 상호작용을 추구하는 태도를 지향해왔다. 2000년대 이후 몰입 중인 추상회화 연작 ‘제시(The Presentation)’에서도 일관된 태도로 끊임없이 생동하는 자연을 근간으로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1970년대 단색조 회화의 정신성을 따르면서 새로운 해석과 양식으로 계승하는 작가들도 만나본다. 김춘수(1957년) 작가는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자신의 회화 세계를 펼쳐나간다. 푸른빛을 머금은 ‘울트라-마린(Ultra-marine)’ 연작으로 자연의 빛을 머금은 청색을 겹겹이 쌓아 화면에 가득 채워내 그 시간과 신체적 행위를 담아낸다. 붓이나 나이프 등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물감을 직접 손가락에 묻혀 그리고 지워나가는 방식에서 형성된 그의 묘법은 신체적 행위를 통해 화면 속에서 자아와 세계, 그림을 하나로 모은다고 전했다.
장승택(1959년) 작가는 시간을 빛과 색채로 물질화시켜 겹의 회화로 초월성을 은유한다. 그는 에어 스프레이, 레진, 유리 등 비전통적인 재료를 활용해 실험적인 색면 추상 회화작업을 전개해왔다. 1m가 넘는 거대한 평붓을 일자로 내려긋고, 그 위에 여러 색을 무수히 쌓아낸다. 작가의 반복적인 움직임이 일궈낸 붓질의 궤적이 쌓여 색의 우연성과 시간성을 기록하고, 그의 내면세계에서 비롯된 감각과 정신의 실체를 색채로 객관화한다고 부연했다.
아트스페이스 호화 관계자는 “화면 위에 지나온 오랜 수행적 과정은 단단한 층위로 존재하며 그 안에서 끊임없는 변주를 통해 시각적 서사를 구축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추상미술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관통한 유기적인 흐름을 발견하고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의 변천을 느껴보며 회화적 울림과 떨림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